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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J Jun 18. 2023

홀로 섬살이 [13-14주 차]

여전히 어쩔 줄 모르겠지만 주말 하루는 쉬어가며

자주는 아니더라도 주에 한 번은 지난 한 주를 톺아보며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자 했는데

한 주 건너뛰었더니 금세 글 쓰는 머리가 작동을 안 하는 것 같다.


사람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가 있다.

어떤 말을 해도 어떤 글을 써도, 이때는 무슨 표현을 꺼내 봐도 적절하지 못한 것 같다. 

지난 주가 그랬고, 이번 주까지도 그런 것 같아서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냈는지조차 쓰기가 망설여진다.


지난 금요일에는 처음으로 휴가를 썼다.

만나면 반가운, 하지만 마음이 아리기도 한 이들을 만나고 왔고

몸은 무척 고단했지만 마음은 또 한없이 풀어져버리는 주말이었다.

가끔, 아니 자주 떠올리는 만큼 더 연락도 자주 하고 잘할 걸, 하는 반성이 뒤따랐다.


이번 주는 주말까지 엿새 연속 근무였다.

행사가 있을 땐 주말까지도 회사에 나가는 일이 다반사고,

주로 행사장으로 외근을 나가 오래도록 서있으니 피로도가 엄청나다.

그리고 그보다도 NG가 나면 안 되는 긴박한 생방송 현장이므로 신경이 곤두선다.

역시나 이번에도 처음 해보는 것들까지도 착착 해내는 선배들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있었다.



평소 하던 과중 업무에, 지난주 휴가 때 생긴 여독에, 이번 주 주말 근무까지,

모든 일과가 끝나고 어젯밤 내 공간에 들어오고 나니,

피로를 무언가로 보상받고 싶었나 보다.

이런저런 재료들로 하이볼을 만들어 연거푸 세 잔을 마시고는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만의 알람 없는 기상인지.

늦잠을 자고 일어나 뭘 할지 모르겠는 진공 상태가 또 찾아와서 무작정 요리를 시작했다.

오래됐지만 냉장고의 낮은 온도 덕에 아직 멀쩡한 당근, 새송이버섯, 양파, 사과, 방울토마토가 일단 있었고,

채소를 깍둑썰기보다 잘게 썰어서 센 불에 물과 끓이기 시작했다.

다이어트용 마녀 수프든 아니면 대용량 카레든 뭐든 해 먹자 싶었다.

그래도 채수 내듯 무작정 끓인 걸 그냥 먹을 순 없어 카레로 결정했는데, 결정적으로 카레 가루가 없었다.

시간도 남아돌겠다,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마트로 향했다.

무더울 정도는 아니어도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날 만큼 여름이 다가온 듯했다.


로메인을 한 팩 집어 들고는 성큼성큼 식품 코너 안쪽으로 걸어가봤다.

카레 가루, 카레용 등심을 사고 눈길이 한 곳을 향했다.


새로운 맛이 나왔다는 보드카를 시음하고 있기에 빈 속에 한 모금 마셔 보고 고민할 겨를 없이,

 "한 병 주세요."

하고는 자몽향 보드카와 함께 증정용 마티니 잔 두 개를 챙겨 받아왔다.


보통 마트에 갈 때는 걸어가고 돌아올 때는 짐이 무거우니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데

오늘은 등에 멘 가방에 산 것들을 쑤셔 넣으니 그럭저럭 다 들어갔다.

근처 은행 ATM에 들러 입금도 할 겸 걸어서 돌아왔다.


채소는 다 끓여놨으니 고기만 볶아 카레 가루와 함께 섞으면 그만이었다.

기름에 고기를 볶다가 혹시나 잡내가 날까 해서 카레 가루를 같이 넣고 볶았는데

부지런히 저어주지 않았더니 일부가 새카맣게 타 버렸다.

들어내서 식힌 다음 가위로 잘라내고 다시 카레에 퐁당 섞어줬다.


뭘 할지 모르겠는 일요일 여가 시간엔 무작정 요리를.

 

찬 밥을 말아 반 공기 뚝딱 하면서 유일하게 챙겨보는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를 봤다.

그리고 방울토마토와 사과를 실험적으로 넣어봤는데 아주 감칠맛이 뛰어나

사온 보드카를 개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로 나왔다는 앱솔루트 보드카 패션프루트. 마티니 잔도 받았다. 나중엔 다 짐이 되겠지만.


자몽 향이 이전에 나온 적이 없었던가?

이전에 뭔가를 일찌감치 사 마셔보고는 어피치만큼 맛이 뛰어나지 않아 실망했던 기억이 있는데.

향이 좋았다. 그런데 얼음이 충분히 녹기 전에 마시니 독한 감이 있어서 남아있던 토닉을 섞어 마셨다.

토요일에는 즐기지 못했으니 일요일엔 낮에 즐겨놔야 월요일을 위해 회복할 시간이 있을 것.


보드카를 세 잔 정도 마시니 식욕이 더해졌다.

식빵을 구웠다.


카레 끓인 데다 그대로 구웠더니 그을음이 좀 생겼다. 그래도 맛있었다.


위장을 한 번 버린 뒤론 소화 기능이 영 좋지 못한 걸 알면서도

또 계산 없이 예전 같은 줄 알고 과식을 해버린다.

그래, 소화만 잘하자. 오늘 치팅데이라 하지 뭐.

 

취기도 올랐겠다, 배도 불러 체온도 올랐겠다, 팔자에 없던 낮잠을 잤다.

두세 시간 정도 잤는데 그동안 전화를 못 받았더니 엄마가 걱정을 했나 보다.

저녁에 깨서 걸었더니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내 목소리가 안 좋다 했다.


역시나 그렇다.

난 이곳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집 가까이 있고 싶다는 생각을 텅 빈 주말, 그것도 반쪽짜리 주말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에도 해본다.


피로는 덜 풀렸지만, 하루 정도는 이렇게 쉬어가주는 것도 필요하겠다 싶다.

내일부터 또 7월 한 달간은 쉴 새 없이 매주 방송이고, 코너 찍어내는 기계가 돼야 한다.


또 좀 이른 감이 없잖아 있지만 스포를 하자면,

8월에는 해외 촬영을 갈 듯하다.

쓰읍, 영어 공부 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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