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섬살이 [23주 차]

스며들고 있는 걸까요?

by Amy J

친구 커플이 왔다 갔다.

3박 4일 여정이 짧았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걸 보니 즐겁게 지낸 듯했다.

나는 이 예쁜 커플에게 바다든 계곡이든 좋으니 일단 물에 들어가라고 일러줬더랬다.

내 오랜 수영 메이트이자 나만큼 물을 좋아하는 친구이므로,

한여름에 제주를 찾는다면 무조건 물놀이다, 강조 또 강조를 했다.


내가 토요일 아침 비니 요가 특강을 듣고 나오니 이 커플이 요가원까지 딱 맞게 나를 데리러 왔다.

아직 흑돼지를 안 먹었다기에 이전에 먹어보고 맛도 서비스도 좋았던 고깃집으로 이들을 이끌었다.

10년 만에 투샷을 처음 보는 것이기도 했지만, 앞에서 내가 말은 안 했는데 둘의 모습이 참 안정돼 보였다.


벌써 10년이라고…?

이 둘이 이렇게 견고해질 동안 나는 어떻게 살았지?

흐릿한 여러 얼굴이 스쳐 지나갔고,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던 치열한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내년이든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려오지 않을까 넌지시 내다본다.

난 뭘 해줘야 하지, 사회를 봐줘야 하나 촬영을 해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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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강력 추천한 프릳츠 성산점에 다녀왔다며, 내 선물을 또 바리바리 사들고 왔다.

무슨 게스트가 호스트한테 선물을 이렇게 해.

진주 가서 술 한 잔 제대로 사야겠다.



제주가 이런 건지, 올여름이 유독 이런 건지

더위를 전혀 안 타는 나도 이 여름은 힘들다.


원두값이 부담돼서 생두를 사다가 집에서 볶기 시작했는데,

20분 이상을 불 앞 있다 보면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주방의 열기가 어마어마해서 당분간 셔터를 내렸다.


프릳츠 신커피도 매일 마셨더니 금세 동이 났고

볶아둔 원두는 똑 떨어진 지 오래고

아무래도 이젠 로스팅을 해야 할 때가 왔지 싶었다.

그래도 태풍이 지나간 뒤로 한풀 꺾인 게 느껴져서 더워지기 전에 아침 일찍 볶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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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가 따로 없는지라 프라이팬에서 깨 볶듯 볶는데,

고루 볶이지는 않고 부분적으로 타고 부분적으로는 덜 볶인다.

파핑이 두 차례 오고 나면 체프와 재로 온 주방이 뒤덮인다.

방앗간 꼬순내가 나고,

다 볶아 쿨링할 동안 주방을 청소하고 나면 나는 땀으로 흠뻑 젖어있다.


쿨링할 선풍기 하나 없어서 몇 번 프라이팬과 용기를 왔다 갔다 옮겼다가

냉장고에 집어넣어버렸다.

잠시 식히고 꺼내 향을 맡으니 벌써 풋내가 사라지고 원두 향이 난다.

산미가 달큼하게 살아날지 일주일 뒤를 기대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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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을 나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저마다 인사이트가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또래의 젊은이들을 보면 뭔가 더 예쁘다.

꿈이 있고 방향이 있고 일정 속력을 내기 위해 탄력을 받고 있는 게 보여서.

이번 촬영도 마찬가지였고 특히 울림이 컸다.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준비도 철저한 멋진 청년.

이미 촬영하면서 빅뱅 데뷔 전 연습생 시절 모습 다큐, '세상에 너를 소리쳐!' 축약본이 눈앞에 그려졌다.

방송은 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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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이 잠이 들지 않는 밤이 있다.

벌써 두어 달 됐다.

밤잠을 설치며 상념에 사로잡히다 두세 시간 남짓 자고는 아침 운동을 갔다.

이렇게 피곤하나 저렇게 피곤하나 달라질 건 없어서 알람 소리에 예민한 몸을 이끌고

동이 트기 전 오늘 하루동안 필요한 모든 짐을 등 뒤에 바리바리 챙겨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갔다.


자다 일어나면 예외 없이 다리에 쥐가 나 신경이 쓰였다.

마그네슘이 모자라 그런가,

분명 잠이 모자라 회복이 더뎌 잔고장이 나는 걸 테지만,

불안할 때마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원래 내 사고 패턴대로 과학적으로 접근해본다.

근거, 원인을 찾고자 하면 맘은 편하다.


튼튼하게 살아왔고 내 몸 제어도 잘하는 편인데, 딱 하나 순환이 잘 되지 않는 몸인 건 걱정이 돼서

영양제 사느라 최근에 잘 안 하던 해외직구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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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정신인 게 초조해서 술에 기댈 때가 있다.

내 의지로 밤새 깨있을 수 있을 만큼 말똥말똥할 때,

정적이 감도는 내 잠자리가 어찌할 바를 모를 만큼 싫을 때.

이 여름밤이 꼭 그렇다.

특히나 열기와 습도, 바깥의 어지러운 소음을 견뎌내야 잠들 수 있는 이 공간은

사람이 휴식을 취하기에 좋은 곳은 아닌 듯하다.


자려고 애써 노력도 하지 않았지만, 불을 켜놓고 침대 맡에 기대 밤 두 시에서 세 시를 향해갈 무렵,

문득 그때가 생각났다.

학교를 나와 나를 둘러싼 아무런 울타리도 없이 덩그러니 세상에 놓였을 때.

그때 참 글을 많이 썼다.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끝물에 접어들고 트위터로 넘어가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싸이월드에서는 블로그 형식으로 C-log라는 페이지를 제공했더랬다.

거기다 이런저런 글을 참 많이 썼고 시간은 늘 새벽 서너 시였다.

그 시간에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고 그 시간엔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와 수다 떨듯이 글이 술술 써졌다.

그래서 잠깐 생겼다 히트 치지 못하고 사라진 C-log를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그때의 글이 아직 인터넷 어느 정보의 바다에 부유하고 있다면 꼭 다시 한번 꺼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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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회에 들어와 내가 그 속에 어울리기 위해 커뮤니티에 기웃댄다는 것이 아직도 영 마음이 안 간다.

목적이 있는 어울림이다 보니 인위적이기도 하고

단순히 귀찮기도 하고 그럴 시간에 일을 한 시간 더 하지, 하는 여러 가지 생각 때문에

일부러 노력하지 않았고 주저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나 스스로 이 좁은 사회에 속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


매주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는 일을 하니 새로운 인물을 발굴하는 게 늘 과제다.

그래서 그나마 가장 품이 덜 드는 공개시장(?) SNS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효과가 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핑계로 사람들과도 알아가고.


아침에 운동을 다니고, 동네에서 머리도 자르고, 중고시장 앱에서 과일도 사고,

또 어떻게든 내가 속한 곳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그래도 조금씩 이 동네 사람이 돼가는 걸 느낀다.

도민 소개로 새로운 사람을 알기도 하고, 그 새로운 사람은 내가 섭외했던 출연자들과 이미 아는 사이기도 한,

좁은 제주 사회를 경험하는 단계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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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준 상품권으로 대형마트에서 할인할 때 사온 양주를 스트레이트로 다섯 모금,

영 잠들 것 같지 않아 맥주를 냉장고에서 꺼내왔다.

작은 캔은 감질맛이 나 다 비운 후 큰 캔을 하나 더 땄다.

다 못 마시고 김 빠지게 둔 채 불 켜놓고 또 잠들겠지만.

생각나는 얼굴은 생각나는 대로 내버려 두자.


오늘의 곡,

듣고 있나요 - 케이시X조영수

https://youtu.be/_DF7UB4r8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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