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my J Sep 10. 2023

홀로 섬살이 [26주 차]

섬 생활 절반을 보내며

한 달에 5주가 있는 달도 있고 해서인지 주로만 따지면 26주이니 벌써 6개월 하고도 2주가 더 지났다.

결국엔 떠나야 하는 아쉬운 마음에 입사일을 생각해 봤더니 딱 이번 주면 반년이 된다.



주위 사람들에겐 섬에 유배 와있다고 장난 삼아 얘기하긴 했지만,

그건 내가 이 섬에 귀양 왔으니 어서 나가고 싶다고 투덜댄 것이 아니라,

과거에 내게 있었던 일들이나 내 부족함, 잘못을 복기하고

반성하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뜻에서 자조적으로 한 말이다.

그리고 섬이라는 고립된 지리적 특성이 내 모든 상황을 차분히 다스려주기에 가장 적합했다.


그렇다면 남은 반년은?

1년이 지나도 이곳에 남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내년 내 회사에선 채용 계획이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직장인으로 살면서 7년을 쉬지 않고 해온 취준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올해 초, 회사에서 합격 통보를 받고서 하루 정도 고민을 했다.

시험을 치고 오긴 했는데… 진짜 제주 가서 살아?

그래, 가보자. 어디든 무슨 상관.


그렇게 입도하면서 했던 결심이,

제주살이 1년 동안은 내가 발 붙이고 있는 곳에만 집중하자,

다른 곳 채용 공고에 관심도 갖지 말자,

1년 일 다 하고 그때 생각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반년을 보내고 지나온 만큼이 딱 남으니

마음이 뒤숭숭하다.

공부를 더 해서 대학원을 갈 거면 지금부터 독학을 해야겠고

취업을 한대도 만료된 어학이나 각종 스펙을 갱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전기업계 연례행사가 있어 기자 선배들이 섬을 다녀갔다.

나는 이제 업계 사람도 아닌데, 제주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나를 꼬박꼬박 불러주셔서

고마운 마음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오랜만에 인사하는 이들은 나를 못 알아보겠다며, 반가움에 악수도 하고 역시나 스몰토크가 끊이지 않았다.

평생 들어본 적도 들어볼 수도 없는, "왜 이렇게 야위었어?"라는 말은 몇 번을 들었다.

그날따라 얼굴이 좀 창백해 보였나.

마음고생 깨나했다고 짐작하는 눈치였다.

나는 말을 아꼈다.



술자리도 이야기도 무르익고,

다시금 선배들과 내 취재 분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최근 동향을 들을 수 있어 기뻤다.

신도 났다.


한 선배는 비행기를 타러 가면서 내게 메시지를 남겼는데,

잘 지내는 것 같아 보기가 좋았다고 하셨다.

그 전날 저녁 숙소로 들어가면서도 내게 "잘 지내니 좋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사람들이 내 안위를 묻고,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 더 성의 있게 살아야겠다 싶었다.



복잡한 마음과 정리되지 않은 생각, 그리고 피곤한 몸이었지만

당장 이번 주 방송부터 끝내놓는 게 급선무였다.

이번 주 나갈 인물 코너 주인공은 음악가인 만큼 오디오를 만질 게 많았다.

그래서 시간도 더 걸렸고, 이제 막 꿈을 펼치려는 인물이라 성의 있게 편집해주고 싶었다.

촬영날 주인공의 가족과 친구도 협조를 적극적으로 해준 터라 왠지 마음이 더 갔다.



무사히 본방송을 주조정실에 넘기고 퇴근해 공항으로 들어서는데

전화 한 통이 왔다.

주인공 가족이었다. 잘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감동의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이럴 때 보람을 느낀다. 

거창한 뭔가를 만들어서 상을 받는 것보다 방송 잘 봤다는 말 한마디 피드백이 꾸준히 쌓였으면 좋겠다.


다음 주는 특집 촬영이 있어 온종일 외근인 날이 있고,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국외 출장으로 찍어 온 다큐 촬영본으로 한 편이라도 가편집을 끝내놔야 한다.


이런저런 재미난 시도를 내가 맡은 프로그램에서 다양하게 해보고 싶다.

그리고 제주 도처에 있는 여러 사람들과도 더더욱 가까이서 소통하고 싶다.




국외 출장 후 엄마는 내가 보고 싶으셨단다.

그래서 집에 들러간 지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주말에 집을 찾았다.

집에 오면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그냥 쉬기만 하지는 않는데,

이번엔 몸이 피곤했던지 오전에도 낮에도 오후에도 내리 잠을 잤다.

이게 휴식일까 싶었다.

물끄러미 내 침대를 봤다.

그래 맞지, 이게 휴식이구나 했다.


자취를 할 땐 시간이 남아도 충분히 쉬지는 않는다.

책상 앞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기든 술을 마시든 뭐라도 하면 했지,

자는 시간 외에 누워있지는 않는다.


잠이 부족한데 엑스트라샷 커피로, 민트맛 캔디로 정신을 깨운다.


내가 원하는 건 뭘까?

부모님 곁에도 있고 싶고

일도 부지런히 하고 싶다.


가늘고 긴 인생은 잘 상상이 안 된다.

굵고 짧게, 화려하게 불빛이 타올랐다 꺼지면 더 좋고.


오늘의 곡,

불빛을 꺼뜨리지 마 (Time to Shine) - H1-KEY(하이키)

https://www.youtube.com/watch?v=EnTjmYf2oZo



작가의 이전글 홀로 섬살이 [25주 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