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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J Sep 18. 2023

홀로 섬살이 [27주 차]

제주의 하늘은 왜...?

일주일 내내 비가 온다는 소식을 어디선가 들었는데,

하늘 거의 안 보는 내가 매일 틈틈이 구름을 올려다볼 만큼

날씨가 가늠이 안 됐다.



그런데 날씨에 워낙 둔감하고 하늘이 도통 어떤 상태인지 관심 없기는 해도,

휴대폰 갤러리를 열어보면 온통 하늘 사진이기는 하다.

그걸 어느 날 깨닫고는 스스로 의아했다.

비 오는 하늘일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일지 올려다보는 게 아니라

나는 하늘을 한 폭의 그림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특히 오페라 색을 좋아한다.

형광빛이 도는 분홍색인데, 어릴 때 그림 그리면서 수채화 물감 36색에 있는 걸 보고 처음 알게 됐다.



제주는 참 하늘이 원망스럽다.

정신없는 출근길에도, 느지막이 걷는 퇴근길에도

하늘이 높고 넓고, 구름이 아름답게 수 놓여 있다.

나도 모르게 가을 타듯이 우수에 젖어버린다.

어쩜 저렇게 폭신폭신한 양탄자 같은지!


하여간 내내 비가 오겠다던 예보와 달리

비가 올 듯하다 안 오고 습하기만 하고,

어느 날은 또 한여름처럼 쨍쨍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고

날씨 때문에 힘든 한 주였기도 했다.


낮에는 병아리처럼 눈이 감기고

밤에는 쉬이 잠을 못 이뤄 연일 컨디션이 좋지 못했다.

환절기가 와서라는 걸 독감 접종 문자를 받고서야 알았다.



한 주의 시작, 월요일에는 야외에서 온종일 촬영이 있었다.


생방송이 아닌 녹화여서 긴장은 덜했지만,

7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달리며 진행되는 일정은

멀미도 피로감도 감당하기 쉽지가 않았다.


7시간 촬영본이 2시간 분량으로 방송이 돼 나왔을 때,

달리던 차 안에서 쉼 없이 이어지던 현장 상황이 떠올랐고

여러 사람들과 긴 호흡의 방송을 만드는 것,

과연 이렇게 하는 거구나, 또 하나 배우기도 했다.


천장이 뚫린 차여서 그날은 하늘 구경 한 번 실컷 했다.


또 하나의 긴 호흡,

국외 출장을 다녀온 후 부지런히 편집을 할 줄 알았는데,

30분짜리 두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다큐멘터리가 영 부담이 됐던 걸까.

진도가 더뎌 부침을 겪고 있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일에 효율이 없고

체력만 축내는 것 같은 시간이 요즘 들어 많다.

쉴 땐 잘 쉬어주고, 일할 땐 집중해서 해야 하는데

오래 앉아있어야 아이디어가 샘솟으니까, 하고 합리화를 하면서

정말 앉아있기만 할 때가 많다.


9월엔 잠도 한두 시간 늘었고 요가도 꾸준히 다니면서

몸 상태가 안정이 되는가 싶더니

가을을 앞두고 맥을 못 추겠다.

역시 나는 여름 아기라 더위는 덥고 땀난다뿐이지 별 타격이 없는데

추위가 오려고 하면 계절이 바뀌기 전에 몸부터 벌써 아프다.



제주는 행사가 많다.

어쩌면 행사가 많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여느 도 규모의 행사 전체만큼을 한눈에 보는 격일 테니 말이다.



2023 제주청년주간 중에 콘서트가 있었다.

여러 가수를 초청했는데, 토요일에 비오가 온다는 소식을 당일 알았다.

마침 나는 회사에 있었고, 서두르면 갈 수 있는 상황이어서

급히 버스를 타고 한라체육관을 향했다.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비가 와서 실내로 변경된 것에 비하면 준비가 잘 돼있었다.


내가 낮이고 밤이고 무한반복을 한 달 넘게 하는 곡이 있는데,

마침 비오가 그 곡도 불러줘서

공연 감상 중에 원래 휴대폰 드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꼭 개인 소장하며 듣고 싶어서 동영상 촬영을 했다.


팬 생각 많이 하고, 신청곡도 많이 들려주고, 호응이 적어도 배려있게 무대를 이끌어가는 모습에

젊은 친구가 아주 무대 매너가 돼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뭣보다 실물이 훨씬 나았다!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 그리고 그 활동을 응원하고 기회가 된다면 실물을 가까이서 보는 것,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 좋았다.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SNS에 팬들과의 소통방이 있는데 초대받아 소식을 접하고 있다.

괜히 내적 친밀감이 생겨서 메시지도 보내 보고,

포털사이트에 검색도 해봤다.

오래간만에 기분 전환을 했다.



요즘 기후가 그런 건지 제주만 그런 건지,

왜 소낙비가 장대비로 쏟아져내리는지.

우산이 없을 땐 무방비 상태로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를 고스란히 맞는다.

마음이 답답할 때가 많아서, 어떨 땐 비를 맞아 시원하다는 기분도 든다.


오늘의 곡,

Summer (Feat. BE'O) - Paul Blanco

https://youtu.be/EpeokNluPOo?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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