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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J Sep 24. 2023

홀로 섬살이 [28주 차]

제주 라이프, 이게 맞아…?

무슨 생각으로 지냈는지 모르겠다.

글로 풀어쓰기도 민망할 만큼, 지난 2주 정도를 무의미하게 흘려보냈다.

일은 하려고 편집실에도, 사무실 책상 앞에도 앉아있는데

뚜렷한 결과가 없어서 마음이 고됐다.

꼭 마음이 콩밭에 가있는 사람처럼 그 무엇도 진전이 없었다.


평생을 미루고 미루는 습관을 가진 채로 살다가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서는 요즘 표현으로 J 성향이 강해졌다.

일부러 나 자신을 그렇게 바꿨다.


집에선 피아노 뚜껑 한 번 열지 않다가,

피아노 학원에 가서야 내가 새로운 곡을 연습하고 있으면

불시에 선생님이 들어와 쳐보라고 하는 그런 긴박감이 회사에선 늘 들었다.



그래서 남들이 출근하지 않은 새벽에 주로 나는 회사에 갔다.

관리인 주사님이 새벽 순찰을 돌며 사무실 문을 열어주기도 전에,

미화원 주사님들이 이제 막 화장실 휴지통을 비워주기 시작할 시간에

나는 회사에 가 불을 켜고 환기를 하고

컴퓨터를 부팅하면서 여름에는 에어컨을, 겨울에는 히터를 틀며

사무실 온도를 조정했다.


특히 겨울, 봄까지도 해가 뜨려면 멀어서

모든 것이 가라앉은 시간 조용히 일을 하면 그렇게 잘 됐다.

그게 습관이 돼서 조근을 해버릇했고,

지금 직장에 와서도 새벽에 편집실에 가 일을 해놓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듣는 날도 있고

잠시 나가 아침 거리를 사 와 먹으면서 일하기도 했다.


그 새벽녘, 아직 캄캄한 어둠 속일 때

나는 머리도 다 말리지 않은 채 길을 나섰지만,

우리 엄마는 이미 나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나서 일을 하고 계시겠구나,

한겨울에도 땀을 내며 청소를 하고 계시겠지.

그 전에 아빠 드실 아침도 해놓고 집안일도 다 끝내고

어제 채 못 보고 잠든 연속극 재방송도 케이블로 보시고 말이다.


그 생각에 다다를 때즈음 아빠 생각도 잠시 한다.

우리 아빠는 우리 삼촌한테도 있는 희귀 증상이 있어서

절대 손이 시리면 안 되는 사람인데,

추운 날도 거르지 않고 운동장에 나가 환경 정화를 하신다.

그 차디찬 쇠 집게가 너무 밉다.

한 바퀴 순찰을 돌고는 미리 써놓은 일지를 행정실에 올려놓고 퇴근하시겠지.



시간과 공간이 다른 각자의 삶,

남들과 부대끼며 생활하지 않는 고요한 시간엔

셋이 전부인 우리 식구가 유난히도 떠오른다.

그러고 나면 동이 트고,

동료들이 별로 반갑지 않은 순서로 하나둘 출근한다.


잘해야지.

내가 잘해야지.

멀리까지 와서 생활하는데.


중심을 잡고서 마음도 다잡고.

요즘 또 밈(meme)화한 말 중 하나가

'이게 맞아…?'인데,

황당하거나 우스꽝스러운, 웃픈 상황에 자주 쓰는 말이 됐다.



이게 안 맞다.

나로 돌아와야 하는데, 정말 마음이 콩밭에 가있는 것 맞다.

미국 출장을 다녀온 다음 주부터인데,

출장 때문에 허파에 바람이 든 건 아니다.


당장 짧은 호흡으로 몰아치는 일은 없기도 하거니와,

내가 지금 맡은 일은 그동안 하던 일과는 또 다른 새로운 일이어서

익숙하게 해내기가 어렵기도 한, 그런 지지부진한 상황이어서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곳에 일을 하러 왔고,

아무리 그 배경이 우리나라 대표 관광지 제주라고 해서,

절대 즐기는 데 집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균형을 잘 갖추든,

그럴 자신이 없으면 초반처럼 정말 일이 전부인 양 살 것.


명절이 다가와서인가,

머물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서인가,

마음이 약해진다!

다잡자.

끝까지 완벽하게!


오늘의 곡,

<이제 우리 꿈에서만 만나> - 김연

https://www.youtube.com/watch?v=8hXjaeBdz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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