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노을엔 순간의 치유가 있는 듯해요
"세상이 너무 싫어도
노을 올라오는 거 보면
어여 가서 찍어야 해."
세상의 변화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있다.
'관찰'이 스트레스가 아닌 사람들 말이다.
거기서 느끼는 재미가 쏠쏠한가 보다.
더구나 그 관찰 대상이 아름답다면 - 자연에서 느끼는 경외감 같은 - 더욱 흥미가 돋을 테고 말이다.
내게 하늘이 얼마나 예쁜지를 알려준 사람이 있다.
역시나 세상을 관전하는 묘미를 일찌감치 깨우친 분이었는데,
세상에 고난이랄지 갈등이랄지, 그런 힘겨운 단어는 떠올리지도 않는 부류의 사람 같아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이의 입에서 '세상이 싫어도'라는 말이 나와 한 차례 놀랐고
그럼에도 고운 하늘은 눈에 담아야 한다는 설교 아닌 설교를 듣고 뜻밖의 발상에 또 한 번 놀랐다.
이것이 살아갈 힘인가, 하고 머리를 띵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그 가뿐함이 그 사람의 능력 같아 보이는 순간이었다.
주중에는 여전히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할 일을 미루고 미루다 마지막에 초인적인 임기응변을 발휘해 해치우고는
역시 나는 순발력이 좋다며 뿌듯해하는 무계획형이지만,
업무만큼은 그렇게 대책 없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알기에 미리미리 해두는 편이다.
그런데 점점 꾀가 나서 효율성이 떨어지니 업무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어버렸다.
그래서 평일에 다 끝낼 일도 질질 끌었다가 주말에 회사에 (몰래) 나와 해내고는
또 뿌듯한 주말을 보냈다며 위안을 삼는 날들이 계속됐다.
멀티태스킹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편이다.
PD의 업무가 늘 그렇다. 이 직업을 잘 모르는 사람이 생각해도 그럴 것이다.
각기 다른 업무들을 동시에 하기도,
같은 일이지만 이번주 회차와 다음 주 회차를 동시에 진행시키기도 하니 말이다.
다행히 꼼꼼함이 있고 내 기억력을 믿지 않기에 할 일은 잘 기록해 두는 편이다.
피아노 학원에서 연습 횟수를 표시하기 위해 사과에 빗금을 긋듯이,
할 일 목록에서 수행한 일을 체크해 가는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여느 때처럼 해가 뜨기 직전 출근을 하면서
하늘이 드높은 것도, 하늘을 수놓은 뭉게구름이 환상적이란 것도,
해가 뜨고 있으면 구름 색이 파스텔을 문지른 듯 예뻐진다는 것도 알게 됐다.
장안의 화제인 어싱,
맨발 걷기를 지난주 처음 도전했다.
근처 수목원까지는 평소처럼 신발을 신고 가서
진입로부터는 신발과 양말을 한 손에 쥐고 맨발로 걸어 들어갔다.
비 온 뒤라 마침 촉촉하고 찬 느낌도 좋았고 발이 덜 아팠다.
그런데 흙길로 접어들자 솔잎들이 가득해서 바늘 쏟은 바닥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바늘을 닮은 탓에 솔잎은 영어로 pine leaves라 부르지 않고
pine needles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느낌을 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실제로 발바닥 전체로 자극을 받아들이니 생경했다.
자극 효과는 탁월했다.
발바닥에 오장육부가 다 들어있다더니, 소화도 잘 되고 몸도 가뿐해졌다.
한 번만에 극적인 효과를 얻다니.
꾸준히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더 적절한 코스를 발견해야겠다는 사명감도 생겼다.
일출도, 일몰도 많이 본 한 주였다.
일출 시간 출근하고, 일몰 시간 퇴근을 해서인 듯하다.
역시 야근보다는 조근이지 싶다.
그리고, 이번 주의 사소한 결심이 내겐 잠깐잠깐 충전의 시간이 돼줬다.
아무리 세상이 버거워도 지는 해가 하늘을 물들이면 고개 들어 예쁜 빛깔을 감상할 것.
오늘의 곡,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은> - 김세정X이무진 (23:57~)
https://youtu.be/CaqUvi4KpWk?feature=shared&t=1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