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누가 뭐래도, 내 아이
아이를 키우는 일은 온 세상의 지적을 듣는 일
도서관에 갔다. 아이들을 풀어놓고 한숨 돌리고 있는데 둘째가 초콜릿이 먹고 싶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한참 달래다가 어쩔 수 없이 초콜릿 한 조각을 떼어주었다.
둘째는 의미 심장한 미소를 띠며 다시 아이들 사이에 합류했다.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한숨을 쉬고 있는데 옆에서 책을 정리하고 있던 여학생이 나에게 말을 건다. 가끔 도서관에 가면 봉사활동을 하는지 인사를 하던 학생이었다.
“아이에게 그렇게 단 것을 달라는 대로 주면 안 돼요.”
단호한 말투였다.
“제가 책에서 봤는데요.”
사촌동생을 돌봐주는 일을 정기적으로 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학생은 열성적인 육아 강연 더 할 태세였다.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좀 쉬다 가려했건만 쉬기가 어려웠다. 참 엄마의 자리란 온 세상이 손을 들어 지적하는 그런 자리구나 싶었다.
채린 씨가 생각났다.
집 밖은 위험해
그날 채린 씨는 먹지 않는 둘째 아이와 종일 사투를 벌이다가 너무 지쳤었다. 무거운 마음을 떨쳐내고자 아이를 데리고 산책이라도 하기로 마음먹었다. 집은 엉망이었고 얼마 안 있으면 첫째도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시간이 될 것이고, 몸은 뻐근했지만, 아이를 데리고 나가기로 해다.
아이에게 새 모자를 씌우고 먹지 않은 이유식을 쏟아낸 옷을 벗기고 새로운 옷을 입혔다.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하지만 막상 나간다고 해도 갈 곳이 별로 없었다. 집 앞 놀이터, 집 앞 마트, 집 앞 커피숍.
커피숍은 일단 먼저 제했다. 여러 조건들을 생각하면 아이와 함께 갈 곳이란 놀이터 혹은 마트로 좁혀졌다.
마트에 가기로 했다. 딱히 살 것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반짝이는 물건들, 장바구니를 들고 물건을 들여다보거나 물건을 팔고 있는 사람들의 활기, 그런 기운이 북적이는 곳에 있으면 마음을 내려놓고 가벼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도 눈빛을 반짝이며 그녀에게 덜 매달렸다.
부드러운 빵이 매대에 바로 올려지는 것을 보니 갑자기 허기가 졌다. 빵을 사고 마트 의자에 앉았다. 아기가 그녀의 손에 쥐어진 빵을 달라고 손짓을 하기 시작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빵을 조금 떼어줬더니 잘 받아먹는다.
마음에 안도감이 밀려온다. 나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우유가 아닌 다른 뭔가 먹였다는 안도감이었다. 오늘은 적어도 우유 이외에 아기가 먹기 시작한 음식이 늘었다는 희망. 안도와 희망의 마음이 퍼지며, 그녀는 아기와 그렇게 빵을 나눠 먹고 있었다
그런 그들 곁에 누가 다가왔다. 화사한 등산복 차림의 아줌마였다. 그녀는 아기를 한번 내려다보더니 이내 물어 왔다.
“아유. 예뻐라. 몇 개월이에요?”
“이제 10개월이에요.”
“아. 그때가 좋지. 제일 예쁠 때야.”
아줌마는 빠른 손놀림으로 가방 정리를 하더니 자리를 뜨기 전 아기 귀에 가까이 다가가 속삭이듯, 하지만 엄마의 눈을 바라보며 분명히, 이야기한다.
“너네 엄마는 뭐가 급해서 별로 좋지도 않은 걸 아기한테 먹인다니?”
그리고는 자신이 아주 재치 있는 농담을 했다는 듯, 만족스럽게 웃으며 자리를 떴다.
그녀는 갑자기 먹고 있던 빵의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웃는 얼굴로 침을 뱉는다’는 표현의 참 의미를 실감하게 된 것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뺨을 맞은 느낌, 안아주러 다가온 사람인 줄 알았던 사람에게 칼을 맞은 느낌이었다. 무심하고 무신경하고 그러면서도 깊숙이 마음의 폐부를 찌르는 함부로의 말들.
그녀는 빵을 더 달라고 손짓하는 아기에게 빵을 조금 더 떼어주고는 나머지 빵을 마트 앞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렇게 다시 유모차를 끌고 절뚝이며 집으로 향했다. 산책조차 이렇게 더 큰 마음의 부상을 입고 돌아오는 위험한 행보가 되고 만다는 사실에 고개를 흔들며 마음을 절뚝이며 그렇게 집으로 다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사면에서 옥죄어 오는 듯 갑갑했던 집이 이제는 세상으로부터 그녀와 아기를 보호하는 안전 기지가 된듯했다.
그녀는 왜 내가 아이가 어린이집에 일찍 가는 것을 싫어했을까
채린 씨의 이야기는 다시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육아 검열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육아를 하는 시간만큼 쌓여간다.
셋째가 태어난 지 50일 무렵, 나는 남편을 먼저 영국으로 보내고, 세 아이와 매일 씨름 중이었다. 첫째와 둘째를 맡겼던 어린이집 원장님과 통화를 하다가 결국에는 5개월에 접어든 셋째도 영국에 가기 전까지 어린이집에 맡기기로 했다. 그렇게 셋째를 보내기로 한 첫날,
첫째는 유치원 차량에 보내고 둘째와 셋째를 어린이집 차량에 실려 보내고 터덜터덜 엘리베이터를 탔다. 복잡하고 착잡하고 무겁고 멍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는 이미 이웃에 살던 어떤 분이 계셨다. 그녀는 나의 빈 유모차를 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어머, 아기는요?”
“아.. 어린이집에..”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
“아니.. 보내버렸다고요? 100일, 이제 지난 거 아니에요? 참나.”
100일이 아니라 5개월이라고 한들, 무슨 소용인가. 나는 그렇게 무방비 상태로 훌쩍 찔렸다.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거기, 차 태워 가는 어린이집 아니었어요?”
전에도 그녀는 근처의 어린이집을 두고 차를 태워서 가는 어린이집에 내가 둘째를 보낸다는 사실을 못마땅해하는 말을 하긴 했었다. 또 첫째가 한국 나이로 6살이 되고야 ‘뒤늦게’ 유치원 보낼 생각을 하는 나를 무지하다고 평가하는 조언을 해주기도 했었다.
그녀와의 대화는 항상 이렇게 뭔가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씁쓸한 감각으로 끝나곤 했기에 나는 대화를 오래 하지 않으려 하거나 그녀가 시야에서 보이면 마음의 가드를 올렸지만 어쩔 수 없이 거의 매일 마주하는 사이가 된 이웃이고 또 이렇게 무방비로 만나게 되기 쉬웠다.
“허 참나”
그녀는 뭔가 더 말하고 싶지만 참는 눈치였고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하고 싶지도 않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불편하고 긴 침묵을 견딘 끝에 집에 도착한 나는 소파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이제 빨리 준비하고 나가서 아기도 맡긴 만큼 빨리 할 일을 하고 데리러 가야 하는데, 마음이 푹 아래로 꺼졌다.
아프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낀 것 화가 아닌 슬픔과 아픔이었다. 그러면서 또 생각한 것은 그녀가 말은 뾰족하지만 나름의 돌봄과 베풂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동네 엄마들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하고 정보를 주는 사람이었고 자기 나름의 돌봄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악의가 없음은 분명했다.
아이 셋을 키우며 타인의 육아 방식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평가는 여러 번 겪어왔기에 크게 동요하지 않으며 살아왔었지만 그래도 그날 나는 취약한 날이었다. 말보다는 표정에 함축된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라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비난에 마음을 다쳤다. (때로는 내뱉은 말보다 내뱉으려다 삼키며 보이는 표정과 몸짓이 우리를 더 아프게 한다.)
한참 멍하게 있다가 문득 정신이 들었다. 이제는 정말 나가야 할 시간. 이대로 슬퍼하고 아파하기엔 나에게는 세 아이의 하루가 걸려있었다. 나는 다만, 그녀의 마지막 이야기에 다른 이야기를 더 추가하고 싶었다. 그녀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내 이야기를 바꾸고 싶었다.
눈 앞에 보이는 동화책 몇 권을 추려서 다시 일어났다. 그녀에게 주기로 마음먹고 그 집으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답이 없었다. 이상했다. 조금 전에 들어갔을 텐데 한번 더 눌러도 답이 없었다. 한참 서서 기다렸다가 다시 집으로 갔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하지만 하지 못했던 말을 생각했다.
‘저 잘 모르시잖아요. 각자 사정은 다를 수 있잖아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 아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지만 오히려 차악을 선택해야 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더 많은 것, 역시 아이를 키우시기에 잘 아시잖아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 사정과 결핍, 정보에 맞춘 육아 방식 아래 최선을 지향하지만 언제나 최선에서 항상 어딘지 모자랄 수밖에 없는 어떤 의혹, 어떤 불안, 어떤 비난, 어떤 평가를 감당하게 된다. 하지만 잘 모르면서,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들은 할 것도 아니지만 들을 것도 아니다. 어찌 되었든 그들의 아이가 아닌 내 아이니까. 또 육아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그때는 5개월이었던 그 작은 아이가 세돌이 지나고 지금 내 곁에서 나와 꼭 같은 눈웃음을 짓는 모습을 바라본다.
내 아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이 두 쪽이 난다고 해도, 내 아이,
# 최근 육아와 모성에 대한 사회에세이 <엄마를 위한 동그라미>를 출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