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파국화는
작은 단서 하나에
마음속 생각 기차가 폭주하고
그 기차의 폭주를 막지 못해서
가장 최악의 결론에 미리 도달해 가는 마음을 의미한다.
불안이 그 기차의 연료가 된다.
정말로 최악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는 이미 최악에 가 있곤 한다.
1.
모든 사람이 파국화를 한다.
파국화는 우리 마음을
언제나 응급 상황, 전쟁터로 만든다.
그냥 두면
그냥 지나갈 많은 일들에
흔들리며 아파하며 괴로워하며
순간순간이 아슬아슬하다.
응급실에서도 평온한 사람과
평온 속에서도 응급실을 걷는 사람,
우리는 그 두 사람을 가로지르며
세상을 산다.
생각 기차가 폭주하려 할 때
날아오는 불안의 조각을 그대로 연료로 쓰는가
그 조각을 버리고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냐
그 차이에 따라
우리의 세계는 다른 방향으로 간다.
파국 혹은 결국
1.
파국화에 쉽게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
불안에 취약한 사람에게는
그 반대의 전략으로 접근하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래서 나는 자주 파국의 반대편에서
결국의 해피엔딩을 이야기했다.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어요
결국 잘 될 것이니까
그냥 한 뼘 한 뼘 걷기만 하세요."
물론 정해진 결말이란 없었다.
하지만,
엔딩이 이미 정해진 이야기의
세부 줄거리를 촘촘히 짜가는 작가의 태도로
모든 것을 행복한 결말에 맞춰 마음을 정렬하는 것
이런 태도는 폭주하는 생각 열차를 멈추는 힘을 주었다
그러면 생각 열차는
다른 연료로 다른 방향으로 다른 속도로 흐르게 되었다.
불안이 큰 사람에게는
이런 단정의 목소리가 더 큰 도움이 되었다.
상담에서 확언이 필요한 때란
바로 이런 때였다
확언해도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오히려 더 많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과정을
전과 다르게 통과해냈다는 사실 하나로
이 경험을 소중히 여겼다.
다르게 갈 수 있다는 경험
불안이 아닌 비전을 연료로
계속 나아갈 수 있음을
'경험으로' 믿게 되는 것이었다.
아는 것과
경험으로 아는 것의 차이.
우리 삶은 언제나
파국과 해피엔딩 그 사이 어디쯤에 있으므로
최악이 걱정될 때에는
최선을 확언하는 것이 그렇게 도움이 되었다.
2.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에서도
미리 결론짓기는 중요했다.
아이들은 백지에서 시작하니,
아무것도 모르고
가르쳐줘도 잘 못하는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 당연했다.
출발점은 그러해도
결말은 해피엔딩,
지금의 시무룩한 얼굴에,
나중의 웃는 얼굴을 겹쳐서 놓으면
어두워졌던 마음의 먹구름 사이로
햇살이 내려왔다.
그리고 이런 결론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아이들은 정말로
자기 속도로 꾸준히
어떤 고지에 도달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3.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길이 사실상 막힌 것 같다.
직항의 길은 확실히 막혔는데
적어도 돌아서 가는 길은 열려 있다고 했다.
원래의 길이 막혀
차선의 길을 가야 한다고 해도,
역시 결론은 해피엔딩이다
어떻게 가든
무엇을 흘리고 가든
내 목표와 내 결론은
아이들을 데리고 무사 귀국이니까
그 목표가 해피엔딩이니까
엔딩은 미리 세워두고
그 결론 하나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다른 데에 마음을 흘릴 여유도 없다.
가장 중요한 목표, 내가 원하는 결론,
그것 하나면 된다.
4.
가는 길이 계속 첩첩산중일 때
예전에 시나리오 책들을 읽으면서 그리던
주인공의 의미에 대한 정의와 그 비전을 다시 그려본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 속 주인공 가운데
모든 것이 순조로운 삶을 사는 경우는 하나도 없었다.
주인공의 역경이 클수록
그의 주인 공성은 더 빛을 발한다.
중요한 건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가가 아니라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 일을 지나가는 가에 있었다.
세상의 모든 주인공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결함과 장점을 총동원하여
처음에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던 그 일을
결국 지나간다.
결국,이었다.
상담실에서도
영화치료 강의실에서도
이 말을 이따금씩 하곤 했는데
결국 이 말이 돌고 돌아 다시 내게로 온다.
나는 내가 한 말을 가장 먼저 듣는 사람이자
가장 끝까지 기억하는 사람
내가 짜 놓은 해피엔딩 속 주인공이다.
어찌 되었든 결국은 해피엔딩
파국의 전복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