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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서울로
모로 가도 서울만 갈 수 있다면
<1> 런던에서 서울로 _인천 상륙작전 2021. 1.22
by
프시케
Feb 4. 2021
:현재 상황
아이 셋을 혼자 데리고
런던 히드로에서 인천으로 가야 하는 상황
1. 비행기
직항은 이미 12월부터 막혔었고
세 개의 경유로 가 있다.
-프랑스 :
테러 위협 때문에 까다로운 면이 있고
최근 프랑스 경유해서 한국에 간 사람 자료가 없다 한다.
-두바이 :
밤 12시에 도착해서 3시간 넘게 대기했다가 경유해야 하나 삼 주 전에 이 경로로 간 사람이 있다.
-암스테르담 :
검사를 두 번 해야 한다.
타기 48시간 전 한번, 타기 직전 한번
가기 전 3일 내 검사를 통해 음성 판정을 받아야
비행기를 탈 수 있다.
월요일 출발을 위해
토요일에 공항에 가서 검사를 하기로 했다.
검사를 위해 오히려 집에만 있다가
집을 나서야 하는 부담.
그리고 한국에 가서 한 번 더 검사를.
25일 월요일 출발인데 아직도 발권을 못하고 있다.
하루 만에 사정이
바뀌고 나라마다 정책이 달라
매일 다시 살펴야 한다.
2. 집 정리
작년 내내 거의 집에서만 홈스쿨링까지 해가며
집을 요새로 삼아왔는데
1월은 계속 침입받는 느낌이었다.
집주인은 1월 내내 수시로 사람을 보냈다.
1월 말까지 계약이지만
1월 동안은 나의 집이 아니었다.
페인트칠하는 사람, 카펫을 가는 사람,
데커레이션을 하는 사람도 제각각 보내서
견적을 받겠다고 했다.
즉, 우리가 집을 망가뜨렸을 수 있으니
손해 사정을 미리 명확히 하겠다는 것인데
충분히 우리가 간 뒤에 할 수 있을 일을,
이제는 하루 확진자가 육천을 넘어
드디어 학교도 닫겠다는 이 시기에
굳이 다른 사람들을 보내서 견적을 받겠다니.
그들을 '최대한'을 원했다.
온라인 뷰잉을 하는 방식으로 세입자를 구하기도 한다는데, 집 사진, 영상 다 찍어두고도
뷰잉을 위해 스무 팀을 잡아놨다고 통보를 했다.
그 말은 스무 팀의 낯선 사람들이 이 집을 구경하러 올 동안 본래 이 집에 살고 있던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는데,
춥고 비 오는 날이 많은 날씨에 아이들은 데리고.
. 무엇보다 갈 데가 없었다.
집을 보여주기 위해 집을 치워두어야 하는 것도 물론 그들의 요구.
아이 셋이 하루 종일 나뒹구는 집이 깨끗할 리 없으니 치우고 지나간 자리에 당연히 흔적을 남기는 아이들을 단속시키며
잔소리를 하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나보다 영어가 자유롭지 않은 남편이 소통하고 중재하느라 애를 먹었다.
내가 25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이 집을 나가면
짐은 이삿짐센터에서 싸줄 것이고
이 모든 짐은 두 달 후에 받기로 되어있다.
아끼던 책들과 쓰다만 메모들이
과연 그대로 잘 올 것인가에 대한 불안이 있어서
메모들을 컴퓨터로 더 옮겨볼까도 싶었는데
며칠 전 꿈을 꿨다.
커다란 도서관 서랍에 나의 짐을 맡겨두며,
또 나의 남은 음식들은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정류장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갈 버스를 기다리는 꿈이었는데
이 꿈을 꾸며 홀가분했다.
정리가 안된 것은 안 되는 대로,
나눌 것, 버릴 것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아이들만 잘 챙겨서 오면
사실상 몸만 잘 챙겨 오면 그것으로 성공적이다.
3. 인사.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는 것
그 생각을 하면 가슴 한구석이 시큰하다.
근처에 사시는 몇 안 되는 한국 분들도 모두
너무 좋았고 헤어지는 것이 정말 아쉽다.
동네 친구인 C를 다시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프고 가장 마음이 힘든 것은 Jo 언니.
영국에 있는 동안 나를 챙겨주었던 언니를
작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언니의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미역국과 선물을 남기고 오고
또 며칠 전에 지나가며 선물을 남기고 온 것,
그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코비 드로 인해 장례식조차 할 수 없었는데
며칠 전 언니로부터 온 긴 메시지를 받고
나는 한 줄 읽고 숨이 안 쉬어지고
또 한 줄 읽고 숨이 안 쉬어지길 반복하며 마음이 어지러웠다.
언니의 여동생 가족이 모두 코비드로 아팠다고 했다.
언니의 여동생도 심각했고,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던 여동생의 약혼자도 심각했는데,
얼마나 심각했는지 앰뷸런스로 실려갔다고 했다.
(영국에서는 코비드로 아파도 정말로 죽을 만큼 위독한 상태가 아니면 앰뷸런스가 오지 않는다)
다행히 죽을 고비를 넘기고 회복 중이라고 하는데 그 시간이 얼마나 피 말리는 시간이었을지..
그 모든 것이 약혼자의 아들이 학교에서 걸려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게 한 가족이 모두 코비드에 걸렸고,
언니의 남편도,
BBC 뉴스룸의 저널리스트인 아들도
모두 직장 내에 코비드 확진자가 많아지면서 검사와 격리의 시간을 지나야 했고
또 언니의 둘째 아들과 여자 친구도, 단지 슈퍼에 다녀왔을 뿐인데 증상이 있어서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남편의 회사에서도 지난주에 3명의 확진자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또 회사에서 아픈 사람이 생겼는데, 그분과 이틀 전에 함께 회의를 했었고 목이 칼칼하기도 하니 집에 와서도 밖으로 나오지 않겠다고 아이들 단속을 해달라고 문자가 왔다.
몇 번 이런 일이 반복되자 아이들도 나름 긴장감을 감지한다. 둘째가 자려다가도 아빠가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잠꼬대처럼 마스크를 달라고 이야기한다.
남편은 또 코비 드로 인해 해외 근무 기간이 1년까지 연장이 될 수 있다고 해서 조마조마했었다.
연장되긴 했으나 그래도 6월이면 한국에 다시 올 수 있을 것이라고 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그 또한 상황이 불안정하여 여전히 확실한 발령을 못 받고 있다.
모든 것이 불안 위에 떠있다.
아침이면 작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모습을
먼저 일어난 둘째, 셋째와 함께 창문 너머로 내려다보곤 한다.
일일 확진자가 6천이 넘으면서 학교 개학일을 미루기로 결국 결정을 했지만 어린이집 다니는 연령의 아이들을 '위해서는' 학교 문을 열어두었다고 한다.
이것은 또 무슨 정책인가 싶지만
또 친구와 영상통화만 해도
신나서 온 집안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여러 가지 마음이 든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이 모든 기억이 추억이 되길
한국 가면 또 다른 이슈들이 몰려오겠지만
그 이슈들 또한 만만치 않겠지만
일단은 이곳을 예정대로 떠나는 것
모로 가든 인천으로만 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나의 작은 히어로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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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시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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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상담심리사 선안남 (프시케) 입니다.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든, '마음 받아쓰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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