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기절

나는 절대 엄마가 원했던 그런 딸은 되지 못할 것이었다

by 프시케

이런 날이 있었다.




그날은 당시 교감선생님이셨던 아빠가 다른 학교 선생님이 한턱 크게 쏘는 자리에 다녀왔다가 평소보다 늦게 집에 돌아오신 날이었다.



갈비 냄새 풀풀 풍기며 돌아오신 아빠를 맞이하며 엄마는 무슨 일로 그분이 비싼 대접을 했느냐고 물었었다. 아빠가 말씀하셨다.





“*** 선생님네 큰 딸네미가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네.”





나는 그 얘기를 별수롭지 않게 들었는데 아빠의 외투를 받아주시던 엄마가 갑자기 기절하셨다.



놀란 나는 엄마를 안고 소파에 앉았는데 한참 멍하게 다른 세상에 다녀온 듯하던 엄마가 한참 후에야 정신이 돌아오셨는지 중얼거리셨다.





"너도 어렸을 때는 변호사가 되겠다고 했었는데. 항상 공부도 잘하기에 그럴 줄 알았는데 “





그 생각을 마음에 일렁이는 순간, 엄마는 갑자기 온 세상이 까마득하며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더라고 하셨다. 의식과 의지로 막아오던 생각을 뚫고 무의식과 진심이 밖으로 나타난 순간이었다. 그 순간 엄마는, 엄마가 나에게 원하는 것과 엄마가 나에게 원하면서도 말하지 않은 것 사이에서 분열되었던 것 같다.











나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말을 한 기억도 없지만 또 엄마가 나에게 그 기억을 얘기하거나 강조하지 않으니 엄마가 그 말을 그토록 소중히 기억하고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무심코 한 말로 꿈을 꾸고 희망을 품으며 기뻐하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음을, 그것이 완벽히 타인의 설렘이자 희망이자 기쁨임을 그날엔 받아들이셔야 했던 것 같다. 그 진통에 기절을 하신 것 같았다.







정신이 돌아온 엄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다시 엄마 특유의 부지런한 활력을 되찾고 주방으로 가서 앞치마를 입고 반찬을 볶고 계셨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의 엄마가, 그 누구보다 욕심 많은 엄마가, 나를 키우며, 펼쳤다 접은 기대들, 띄웠다가 지운 욕심들, 하려다 하지 않은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가늠해보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백수였다. 그냥 백수도 아니라 대학, 대학원 등록금과 교환학생 비용도 많이 까먹고 인턴 월급 90만 원 받는 일을 딱 3개월 하고 그만두고 난 후 심신이 지쳐있던 백수.



표현이 없는 아빠까지 나서서 서울대 합격보다 더 기쁜 일이라고 하셨던 서울교대 합격 통지서는 무효화하고 문학 공부하겠다고 등록금 비싼 사립대학에 갔다가 그 대학을 이런저런 방황 끝에 졸업했다(학점을 4.3점 만점에 2.15점 받아놓고 반타작한 거라고 농담하기도 했고, 학기 중에 힘들다고 등록금도 못 돌려받고 중간에 휴학한 적도 있었다.)



그래 놓고는 상담심리 공부를 하겠다며 대학원을 다녔고(그때까지 엄마는 '상담심리'라는 단어 조차 들어본 적도 말해본 적도 없는 상태였다) 대학원을 나와서는 인권이라는 추상적인 가치들을 나열하며 성폭력 가정폭력 상담소에서 일하다가 그것도 3개월밖에 못 채우고 심신이 지쳐있었다. 그래 놓고도 앞으로 제대로 상담을 하려면 무급 수련생의 길을 더 걸어야겠다며 인턴 상담심리사 과정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야말로 앞길이 막막한 청춘이었다. 그때 나에게는 어딘가에 투고할 습작 노트 조차도 없었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언제나 이상만 좇고, 언제나 대책 없이 충동적이고 근거 없는 열정에 스스로 먼저 데고 마는 나를 보면서도, 엄마는 오히려 나에게 낙담이나 포기에 해당하는 말은 한마디로 하지 않으셨다.



엄마는 그냥 끝까지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믿고 계셨던 것 같다. 하지만 또 그러면서도 엄마가 원하는 내 모습, 겉으로 보기에 반짝반짝 빛나고 안정적인 길, 그래서 다른 누군가에게 얘기를 했을 때 부연 설명을 여러 번 덧붙여도 되지 않을 만큼 안정적인 길을 가길 원하셨다. 그런데 항상 엄마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의외의 선택만 계속했을 때, 그러면서 확실히 드러나는 소득이나 효율이 없었을 때, 생산성과 효율성, 분명한 목표의식을 향해 달려왔고 그럴 수밖에 없었을 엄마는 얼마나 기가 막혔을지 가늠이 안된다.





엄마는 그 마음을 숨기는 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셨던 것 같다.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쓴 덕분에 딸인 나를 속일 수 있었고, (엄마는 진로도 결혼도 출산도 항상 나의 의외의 선택을 하는 나에게 언제나 결국'뭐 너 선택이니까 네가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지.'라고 하셨다.) 탐탁지 않은 마음을 그렇게 속일 수 있었겠지만, 진심은 의외의 계기로 나타나 엄마의 무릎을 꺾고 숨을 막히게 했던 것 같다.





나는 엄마의 사랑과 인내, 믿음과 헌신을 그렇게 알았다. 엄마는 끝까지 나를 믿고 있었고 그러는 동시에 그 믿음의 모습이 반드시 엄마의 기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무릎이 꺾이며 기절을 해가면서도 받아들이셨다.







부모님이 모두 일찍 돌아가셔서 안전과 안정이라는 것이 중요했던 엄마가 안전과 안정 대신 '그저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마음이 끌려서'라고 밖에 설명할 수밖에 없는 모호하고 복잡한 선택을 계속하는 딸에게 '해봐라. 응원해'라고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그 사실로 엄마를 존경한다.




내 뜻대로 되는 게 없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러 온 존재들이 자식이라는데, 그런 자식을 셋 키우며( 이 역시 엄마의 반대를 물리치고 한 일이었다. 엄마는 하나도 많다고 하셨었다) 나도 매일 조금씩 기절하며 엄마의 기절을 다시 받아 안는다.






"딸~ 여기봐라" 엄마랑 찍은 사진은 없고 엄마가 찍은 사진만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