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어왕'
첫공을 보았지만 막공을 앞두고서야 쓰는 뒤늦은 후기
포스터를 보자마자 프리뷰로 예매했다. 포스터 가득 메운 이순재 배우의 강렬함을 마주하고 어떻게 예매를 안 할 수 있을까. 홀리 듯 예매하고서야 다른 배우들의 라인업을 확인할 만큼 그냥 '이순재'라는 이름만으로도 충분했다.
TV 속이 아닌 무대 위에서 본 건 두 번째였다. 연극 '앙리 할아버지와 나'의 앙리 할아버지로 무대 위 모습은 처음 봤다. 생생하게 전달되는 연기와 대사에 극에 몰입했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었기에 더더욱 공연에 대한 기대가 컸다.
첫공이라 그랬을까, 1부는 전체적으로 배우들이 많이 긴장한 듯했다.
앞부분 딸들에게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물어보며 자신의 권력을 나누어주는 신에서 배우들이 순서를 잊어버린 건지 극의 진행이 멈추고 정적이 흘렀다. 리어왕이 프랑스 왕을 찾는 대사를 여러 번 반복하시니 한 배우가 무대 밖으로 급하게 나갔고, 그다음 왕관을 던지는 신을 잊어버리셨는지 첫째 사위가 왕관을 벗는 제스처를 리어왕에게 보이며 다시 극이 진행되기도 했다. 첫공의 긴장감인가 보다, 싶었다. 원래 진행은 어떤 거였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사 전달력 부분은 개인적으로 확실히 아쉬웠다. 홀이 너무 커서 그런 건지 5열에 앉아서 봤는데도 배우들의 대사 소리가 작다고 느껴졌다. 소리를 치거나 애써 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 대사 구간에는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았고, 뭉개져서 들리기도 했다. 많은 대사량 때문인지 연기를 한다는 느낌보단 외운 걸 쏟아내는 느낌이 더 강하기도 했다. 극 중 상황에 몰입이 되어야 하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듣기 위한 부분에 집중하다 보니 몰입이 종종 깨졌다.
2부로 넘어가면서 확실히 배우들의 연기도 1부보다 여유로워진 듯 보였다. 2부는 극에 몰입해서 이야기를 따라갔다. 미쳐가는 왕의 광기와 미친 척하는 아들의 울분. 진실로 포장된 거짓의 말에 현혹된 이들에 의해 거짓과 진실 그 모든 것이 무너지는 과정을.
가장 인상 깊었던 배우는 켄트 백작 역을 맡은 박용수 배우였다. 끝까지 왕의 곁을 지켰던 충신으로 신을 넘어가는 과정에 관객들을 끌어들였다. 영화 '왕의 남자' 속 광대들 같은 그의 변장 어투는 처음엔 어색한 듯했지만 어느 순간 무거운 극에 활력이 되었고, 무엇보다 그의 대사는 귀에 콕콕 박혀서 극에 집중시키는 포인트가 되었다.
어린 시절, 책으로 접했던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드디어 원래의 형태로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극본으로 쓰인 이야기가 아닌가. 글자가 아닌 장면으로 만나는 셰익스피어는 직접적이고 강렬했지만, 한편으로 장막 사이 인물 사이 빈칸들을 채워 넣는 상상의 작업도 하게 만들었다. 책으로 볼 때는 각 인물에 나를 대입하며 봤던 기억이 있는데, 오히려 극으로 보니 제3자의 시선에서 전체를 관망하고 있었다. 원전이 아닌 소설 형태로 접했던 터라 더 그랬던 것 같다. 리어왕의 이야기는 기억에 남아있지만 글로스터 백작에 대한 이야기는 남아있지 않은 것도 그 영향이지 않을까.
듣고 싶은 말은 진심을 덮기 쉬웠고, 전해지는 말을 진실을 왜곡하기 쉬웠다. 잘못된 믿음은 진실을 걸러내는 귀를 없애버렸다. 진실의 침묵은 참혹한 비극을 가져왔다.
오래전 이야기임에도 여전히 리어왕도, 그의 세 딸도, 글로스터 백작과 두 아들도 세상에 넘쳐 난다.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 은 모두의 죽음으로 비극을 끝내지만 우리는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