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펜하이머'
과학자들에게, 물리학자들에게 헌정하는 영화
어릴 때 수많은 발견과 연구의 업적을 이룬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항상 궁금했다.
저들은 자연의 법칙을 읽어낼 때 자신의 연구가 세상에 미칠 결말도 읽어냈을까.
그 결말이 자신들의 상상과 같았을까, 상상 그 이상이었을까, 아니면 상상도 못 했을까.
영화 오펜하이머는 어린 시절 궁금증을 일부 해갈시켜 주는 영화였다.
평생 머릿속을 오랫동안 헤집었던 빛의 향연을 폭발 속 불꽃으로, 눈앞에서 실제로 마주했던 순간, 자신의 연구가 성공이었음과 동시에 상상 이상의 파괴성을 깨닫는 그를 보는 것이 복잡 미묘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수많은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이론과 연구가 현실이 되는 순간을 직면했다. 사실 많은 과학자들이 바라는 순간이 자신의 발견이 증명되는 순간일 텐데, 저 자리에 있는 저 사람들은 그걸 이루던 그 순간 어떤 기분이었을지, 한 명씩 잡히는 시퀀스를 따라 내가 현장 속을 거닐며 보고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이렇게 스스로를 벌주면 세상이 알아줄 것 같냐던 키티의 마지막 말은 오펜하이머와 키티의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대사였다고 생각했다. 그의 침묵에 가장 답답해하지만 누구보다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던 사람, 그렇게 그 길을 끝까지 함께 해주는 사람. 결핍의 연대가 가지는 힘이 강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영화 속 전개는 무척이나 빠른데 그 와중에 시공간을 들락날락한다. 스트로스의 청문회가 흑백처리된 부분은 또 왜 이렇게 좋은지. 무엇보다 킬리언에게 이런 얼굴이 있었나 싶은, 헤어질 결심에서 박해일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을 킬리언에게서 느꼈다. 덕분에 걸음걸이 하나, 손짓 하나, 목소리까지 온전한 오펜하이머를 만날 수 있었다.
로버트는 얼마나 좋았을까.
영화를 보고 나면 이 문장이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로버트는 얼마나 좋았을까.
좋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