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래적으로 병을 갖고 태어나 3인칭의 여유를 알지 못한다. 나는 그저 '나는'이라는 1인칭 단수로 시작하는 글을 꾸역꾸역 적을 뿐이다. 겸재가 그린 산수화의 풍경은 나의 시야로 빨려 들어오지만, 나는 이러한 3인칭의 풍경을 감당하진 못한다.
그런 내가 1인칭의 시선에서 '우리'에 대해, 내가 있는 '공동체'를 대해 말해보려 무아지경 애를 쓰는 것은 애처롭다. 나는 답답한 마음을 달래러 전류리 포구로 자전거를 끌고 가 강물이 휘몰아치는 광경을 찬 바람을 쐬며 구경했다. 저쪽에서, 이쪽에서 물들이 만나서 부딪히고 깨지며 와글댔고, 그 사이로 날개를 퍼덕이는 철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역사를 공부하고, 정치를 공부하고, 행정을 공부하고, 인문학을 공부했지만, 이런 광경이 자아내는 유구한 자연을 누구도 가르쳐주진 못했다. 나는 자연이 가르쳐준 산천초목의 섭리만 진실이라 여긴다.
자전거의 기어를 이리저리 올렸다 내렸다하며 굽이치는 도로를 따라 돌아오다보니 저녁 노을이 진해졌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찜질방에서 읽을 책 한 권과 귀중품을 챙기고 집밖을 나섰다. 강을 따라 다시 길을 걸어가면 24시 사우나가 나온다. 직원은 이제 반가운지 몇마디 농담을 던진다. 어느새 밤이 찾아왔다.
옷을 갈아입고 찜질방으로 간다. 잠시 누워 평론집 한 챕터를 읽고, 황토방에 들어가 땀을 뺀다. 그리고 사우나에서 열탕과 냉탕을 10분 간격으로 오가며 생각을 정리한다. 얼마 남지 않은 잔고가 허락해주는 한 나는 사우나에 매일 들를 것이다.(정기권 안끊냐고들 묻는데, 참 이 사우나가 신기한 게 매일 찜질/사우나를 이용할 거면 일반 결제가 더 싸다.) 나는 여기서 병으로 찢어진 마음의 틈새를 약하고 예쁜 생명들을 보며 메꾼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내 상처의 흉터 위에 흘러 자꾸만 말을 건다.
나는 서울에서, 김포에서, 늘 같은 시간을 보냈다. 내 건강이 허락되는 한 힘껏 읽고 쓸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밤하늘엔 별빛이 푸르게 드러났다가 구름 때문에 어둠에 금세 잠겼다. 별빛은 내 눈으로 번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