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단하기] 청년이 청춘이 될 때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을 기억하며

by An

*친구에게 건네어받은 노래를 듣다가 급하게 썼다. 나는 음악 전공자가 아니므로 양해 바란다. 김소월의 「왕십리」 , 「절룩거리네」 , 「축배」 , 「나의 노래」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라고 공부하였다. 애인을 찾으러, 현장을 톺아보기 위해서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뿌리를 두기도 했지만, 내 토속적 정서와 액센트는 서울에 깊게 박혀있다. 내 고향 서울은 대한민국의 정치수도기도 하다. 그런 맥락에서 서울은 행정과 금융과 정치가 어우러져 유장한 역사의 샘을 만들어내는 원천으로도 읽히나 삶의 터전으로서 서울은 세대론으로 묶이는 청년의 꿈이 쏠리는 공간이며, 입시와 취업의 실패를 맛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터전으로서 시공간의 의미를 부여받은 서울은 젊고 푸르다.


가히 서울은 끊임없이 약동하는 청춘의 그것과 닮아 있다고 할 수 있겠으나 2025년을 살아가는 청년 세대에게 더 이상 서울은 ‘서울 드림’의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는 듯하다. 걷잡을 수 없는 집값 상승과 소위 ‘구직 한파’와 계급론 따위의 언설들은 2030 세대에겐 기우가 아니라 지루한 장마로 환원된다. 이건 선진국이란 프로파간다가 위로해 줄 수 없는 사태며, 정파성에 골몰하는 기성세대가 해설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소월은 ‘往十里’(1923)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비는

올지라도 한닷새 왓스면죠치.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로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往十里) 비가 오네.


웬걸, 저새야

울냐거든

往十里 건너가서 울어나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天安)에삼거리 실버들도

촉촉이저젓서 느러젓다데.

비가와도 한 닷새 왓스면죠치.

구름도 山마루에 걸녀서 운다.


김용직 편저, 『김소월 전집』,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 157쪽


故황현산 문학평론가는 이 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시인이 진정으로 비극으로 여기는 것은 쉼도 끝도 없이 비가 오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것이 벌써 습관이 되고 자연이 되어 산 것들의 모든 기운이 ‘나른하고 촉촉하게’ 거기 젖어 적응하고 있다는 것이며, 오늘 십 리를 걸어간다 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그 정황이 내일 다시 ”往十里“할 의지를 막아버린다는 것이다. 식민지의 비극은 아마 그러하리라.”(황현산, 『잘 표현된 불행』, 난다, 2023, 770쪽) 잠시 비약하자.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청년에게 김소월의 내면을 대치하면 무기력해 보이는 어떠한 고통을 짐작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광풍이 불어닥친 후 사회경제적 논리는 어느새 인습으로 바뀌었고, 인습은 내재화되어 절룩거리는 청년의 마음을 식민화시킨다. 거대한 경제담론 앞에 청년은 굴종한다. 길을 걷다 뒤를 돌아본 한 청년은 이렇게 소리친다. “나도 꿈 많던 사람이었어!”


빛이 들지 않는 지하방에서 꿈을 놓지 않았던 한 청년이 ‘우리도 역전만루홈런을 칠 수 있어’ 라고 갑작스레 말을 건넨다면 그 말은 무위일까 유용한 조언일까. 고전 경제학의 대전제를 두고 보았을 때 그의 언어는 그 자체로 무위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우리는 이미 그 청년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지하방에서 기타를 치던 청년은 그의 아픔을 세상 속으로 녹이면서, 때로 자조하면서, 자연 현실과 마음의 현실을 오가면서 또 다른 청년에게 달빛요정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8년간 6장의 앨범을 부지런히 내다가 뇌출혈로 세상과 작별한 그의 이름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가수 이진원이다.(1973~2010)


그는 ‘나른하고 촉촉하게’ 젖어 습관처럼 실패를 곱씹는 청년에게 술을 한 잔 건넨다. 그리고 청중을 바라보고 외친다. “축배를 들어라”(축배, 전투형 달빛요정 - Prototype A, 2010) 그 노랫말의 지시대상은 단지 부러지고 스러져간 청년을 향한 게 아니다. 이진원이 고백했듯 노래는 ‘나’(이진원 본인)를 위한 응원가이기도 했다. 함께 모여 축배를 들고 노래할 때, 나를 긍정할 때, 꿈이 공유될 때, 비로소 십 리를 가도 가도 비가 오던 청년에게 시적 상태를 부여하고, 청춘이라는 존재 상태로 회귀시킨다.


그러나 결국 삶의 숨결이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시발점을 두고 있다. 연봉 1200만원, 월 100만원도 허덕이며 벌던 이진원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냈던 앨범 수록곡 「절룩거리네」(Infield Fly, 2003)에는 자조와 비애가 그의 정서적 육체로부터 성실하게 방직되면서도(‘보석처럼 빛나던 아름다웠던 그대/이제 난 그때보다 더/무능하고 비열한 사람이 되었다네’) 불행의 자리를 잊지 않고 단단하게 전망한다.(‘절룩거리네/하나도 안 힘들어/그저 가슴 아플 뿐인걸/아주 가끔씩 절룩거리네’) 개인의 서사에서 타자는 보편성을 발견하고, 청년은 자기 이야기를 발견하고, 말하여지지 못한 상처가 대신 이야기 되었다는 발견을 하게 된다. 이진원의 노래는 계속해서 청년의 자동화된 인식으로 깊은 어둠으로 감춰지던 ‘나’의 상처를 여기에 나도 있어!(‘세상도 나를 원치 않아/세상이 왜 날 원하겠어/미친 게 아니라면’)라고 발견하게 만들어 시적 상태로 환원시킨다. 억압된 산문의 세계에서 시의 자리로 올라온 청년은 청춘이 되었다. 이진원은 음악을 통해 본인과 앞으로 그 세대로 밀려 들어올 미래의 후인에게 청춘의 자리를 내어준다.


청춘이 시의 자리로 올라왔다는 말은 인간의 척도로 판별하기 어려운 절망 앞에 ”포기하지 않음의 기술적, 윤리적 상태“(황현산)에 이르렀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국민소득 3만 불 시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청춘은 기성사회가 ‘낙오자’이거나 ‘패배자’라는 인장을 찍은 것에 절망의 수사학으로 대처하지 않는다. 이제 청춘은 두 눈을 부릅뜨고 세상을 응시한다. 그리고 두 주먹을 올려 입을 연다. ’덤벼라 건방진 세상아/이제는 더 참을 수가 없다/붙어보자 피하지 않겠다/덤벼라 세상아‘(나의 노래, Goodbye Aluminium, 2008)


이진원은 끊임없이 자기를 노래한다. 앨범 소개에는 그가 어떻게 음악을 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이 앨범은 능력 없이 열망만 가득했던 실력 없는 뮤지션이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현실을 인식하고 자신이 패배자이며 낙오자임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린 앨범이다. 다행히 달빛요정은 연봉 1000만원에 만족하며 은퇴결심을 일단 거두었지만 음악을 향한 정말 순수했던 열정은 이 앨범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 (…) 누가 달빛요정을 이렇게 만들었나, 전업 뮤지션으로 연봉 1200이 그렇게 허황된 꿈이었단 말인가. 찬란히 빛나는 문명의 21세기, 국민소득 2만 불의 대한민국에서 주변인으로 도태된 달빛요정이 노래하는 상대적 박탈감.”


이 대목에 대해 혹자는 가난한 예술가의 초상이다,라고 평가했지만 나는 경제논리에 의한 호명법을 거부하련다. ‘초상’은 박동하는 예술가의 심적 토양을 지워버리고, ‘가난한’이라는 납작한 좌표 평면은 예술가가 자신이 보았던 게 이 세상의 것이 될 수 있다는 단단한 믿음의 맥박을 끊어버린다. 22살에 왕십리를 쓴 젊은 김소월이 식민지인의 비극을 절제된 내면 풍경으로 그리고, 이진원이 시장논리로 점거된 젊은 예술가의 자조에 화성과 리듬과 박자로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한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현실과 애무하듯이 싸우는 저 시와 노래는 삶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너’와 같은 사람들에게 ‘삶의 주인’이 되겠다고 선언하고, ‘사랑은 내게 없어‘라고 말하면서도 ‘이젠 날 사랑하겠어/당당해지겠어‘라며 고유한 존재로서 자신을 승인한다. 라캉은 ‘나‘는 대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하며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진단했으니 이것은 과학자와 이론가들의 분석으로 설명되는 유가 아니다.


이진원의 노래가 기억되고, 아름답게 여겨지는 까닭은 그가 쓰고 작곡한 음악이 미학적으로 충실하다거나 위악적이어서가 아니다. 현실의 최전선에서 그는 언어 너머의 세계를 꿈꿨고, 그러면서도 현실을 잊지 않았다. 그가 꿈꾼 그곳은 예술가가 연봉 1200만원은 받는 세상이었다. 이건 메타포가 아니다. 열심히 달려온 청년이 바란 건 대단한 성공이나 성취만을 욕망했던 게 아니다. 경험을 쌓으려고 갖은 프로젝트와 활동을 하고, 경력을 만드려고 최저시급이나 주는 인턴, 계약직을 전전하고, 그마저도 못하여 아르바이트를 뛰다가 무기력에 빠져 쉬는 건 청년이 허황된 꿈을 꿔서가 아니다. 그건 단지 ‘잘 살고 싶다’라는 인간의 본질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정답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한국 사회의 경쟁은 너무 치열하고 떨어진 사람에게 ‘낙오자‘ 정도로만 이름 부르고 있지는 않던가. 달빛요정인 낙오자를 외면하고, 당신도 역전만루홈런을 칠 수 있으니 당당히 세상과 맞서보자고 용기 내라는 말이 부재한 현재, 이것은 한국 사회의 잊어버린 덕목이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 그는 짧게 노래했고, 많은 앨범을 판매하진 않았지만, 영원한 청춘의 음악으로 남았다.


청년 이진원, 달빛요정 이진원, 당신은 만루에 선 타석에 역전홈런을 치고 내려왔다. 그는 그러한 사실을 인정할까. 본인이 본인을 응원하기 만든 노래가 세상을 힘내게 해 줬다는 의도를 넘어섰다는 사실에 그는 크게 놀랄 게 분명한다. 영원한 음악을 선물한 그에게, 영원히 감사하다고 다짐하며 기도한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음악을 오랜만에 듣게 해 준 K군에게 이 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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