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잉넛을 쓰며
유년 시절은 행복하고 또 행복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다! 어떻게 그 기억을 사랑하고 소중히 간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기억은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어 영혼을 고양시켰으며 무엇보다 큰 기쁨의 원천이었다.
톨스토이, 유년시절
1. 내면 풍경이 리얼리즘이 될 때
러시아 제국의 귀족 자제인 니콜렌카는 어느 봄날 사냥을 나갔다가 참나무숲 한가운데 고립된다. 이때 니콜렌카의 태도가 무척 흥미로운데, 그는 풍경을 관찰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다른 무리와 떨어진 니콜렌카는 차분히 이성을 되찾고 계획을 설계하지 않는다. 니콜렌카는 자신에게 찾아오는 긴장감, 불편한 감정에 집중한다. 그리고 문득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본다. 니콜렌카의 시선을 서술하는 작가의 문장은 다소 주관적이고 꿈의 잔여같다. 서정성이 극대화되는 서술은 세밀하게 이어가다 팔랑거리는 ‘노랑 나비’를 마주친 순간 깨진다.
톨스토이의 데뷔작이자 자전소설인 유년시절의 한 장면에 대해 젊은 강사 선생님은 이게 ‘내면 풍경의 리얼리즘’이라고 강의가 진행되는 16주 내내 강조하고 또 강조하셨다. 나는 도서관으로 물러나 톨스토이 삼부작(유년, 소년, 청년시절)을 뒤적이며 혼자 되뇌였다. 그게 뭣이 중헌디! 비평가는 작가의 내면을 알아내야 한다,가 중요한 거라고 지레짐작했지만, 대학 수료를 앞뒀을 때, 다시 마주친 유년시절의 다른 한 장면은 내 머리를 쾅하고 쳤다.
"다음 날 늦은 저녁 나는 엄마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본능적으로 생겨나는 공포심을 떨치고 조용히 문을 열어 발 뒤꿈치를 들고 응접실로 걸어 들어갔다. (...) 나는 엄마의 얼굴을 보려고 의자 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거기에는 창백하고 누르스름하고 투명한 물체가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것이 엄마의 얼굴이라고 믿을 수 없어서 더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얼굴에서 익숙할 뿐 아니라 사랑스러운 모습들을 조금씩 발견해 낼 수 있었다. 그 물체가 엄마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두려움에 떨었다. 그런데 왜 감은 두 눈이 그렇게 움푹 파여 있는 걸까? 왜 무서울 만큼 창백한 한쪽 뺨의 훤히 들여다보일 듯한 피부 아래에 거무스름한 반점이 생긴 걸까? 왜 얼굴 전체가 그렇게 엄숙하고 냉랭한 걸까? 입술은 왜 그렇게 창백하고 입매는 왜 그토록 아름답고 장엄하면서 천상의 편안함을 표현하고 있는 걸까? 그것을 보니 등줄기와 머리에 차갑게 소름이 돋았다."(톨스토이, 유년시절)
“어머니의 시체를 바라보는 어린 니콜렌카의 시선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한 시체에 대한 자세한 묘사에 멈추지 않고 흔히 지나쳤던 시체의 모습에서 자아내는 톨스토이의 예민한 예술성이다. 쉬클롭스키가 ‘낯설게 하기’ 기법으로 설명했듯 그것은 우리가 배우고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일상을 그저 지나쳐 왔던 주변 사물과 대상들에 대한 자동화된 인식을 깨뜨리고 새로운 인식을 니콜렌카의 내면에 불어넣어줬던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 이후 겪는 할머니가 죽어가는 과정 - 죽기 한 달 전, 죽기 직전 등의 표현에서 드러난다 - 을 응시하며 한 인물의 내면에서 꽃피는 도덕성과 개체적 자율성 그리고 죽어가는 유년시절을 우리는 마주하게 된다.”(형식주의자1 - 쉬클롭스키에 대하여, 내가 예전에 쓴 글)
작가의 작품에서 ‘내면 풍경’에 리얼리즘 사조를 이름 붙여 길어올리려 했던 건 작가 한 사람이 중요해서도 아니고, 거기에 숨는 비평가의 안위가 중요했던 것도 아니었다. 서영채 문학평론가에 따르면 무수히 많은 편린이 모자이크를 이뤄 위계화된 정전(Canon)들의 체계가 있을 자리에 불안에 시달리는 영혼이 있다는 걸 발견할 뿐이었다.
그만큼 당대(當代)의 틀 안에서 벗어나기 힘든 우리기에, 예술작품을 비평하든, 사회문화 현상을 비평하든, 자본 중심의 가치 판단의 기준에 갇히지 않기 위해 , 우리를 규율하는 체제 논리를 극복하기 위한 흔적을 찾는 게 어떤 임무였던 셈이다.
그러나 사적•공적 영역을 횡단하는 일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게 전문 작가든, 평범한 시민이든, 글과 미술과 음악과 사진과 영상과 영화 등을 하는 개개인의 시선 - 내면 풍경이 빚어내는 - 이 하나의 리얼리즘으로 받아들여지고 여겨질 때, 그것들이 서로 연대하고, 세상과 연결될 때 비로소 예술이 공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터.
2. 병적 인간, 병든 세상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길 법도 하다. 마음이 아픈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은 올바르고, 합리적인가? 용기내 고백하면, 나는 이러한 질문에 오랫동안 아파했다. 내가 정신질환을 가졌다는 언설을 반복하는 것은 내가 그동안 사람들과 대화하고, 정책을 공부하고, 문학을 공부하고, 문화비평을 훈련하고, 신문기자로 활동했던 모든 것에 의심 부호를 붙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건 나 자신을 부정해야 하는 괴로운 여정이었다.
내가 했던 사랑의 말, 내가 했던 가파른 비판의 언어, 내가 고양됐던 순간, 기쁘고 슬펐던 순간, 다소 일상적인 모든 게 그저 병의 증상들의 나열에 불과하다면? 나는 그렇게 생각이 휘말리는 순간 나의 모든 걸 재검토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점점 골방에 들어가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바라본 세상은 회색빛이었고, 나와 같이 병들어 있었다.
그건 위험한 생각이지만 마음 한구석이 응어리진 그땐 감정이 삐죽 튀어나올 틈도 허락할 수 없었다. 그것이 거꾸로 나의 삶을 망가뜨렸고, 난생 처음 구원을 욕망하게 되었다. 그 구원이란, 나도 공적 책무를 갖고 싶다는 것 - 그것이 글쓰기를 통해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것.
왜 하필 글쓰기였나. 원초적 욕망은 자기 표현의 욕구지만, 내가 바라보는 이 병든 세상도 삶의 한 파편으로서 당신들과 연결될 수 있고, 또 하나의 진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야 내가 죽어 대체되는 인간이더라도, 적어도 나는 사실을 말했다는 거니까. 내가 사실을 직시할 줄 알았다는 걸 아는 순간, 이십대내내 내가 보고 느끼고 말해온 모든 걸 다시금 부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문장 위에서 방황하던 시간만큼 숲을 헤메는 이들에게 다정한 손을 내밀어도 괜찮은 사람이 될 테니까. 그렇게 나의 글이 자폐적 상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으니까. 글쓰기는 내가 살아내기 위한 서사 전략이었다.
3. 최전선의 솔저(soldier), 비평의 책무
나는 내면 풍경을 그리는 병적 인간이었을 뿐이다. 크라잉넛에 대한 글은 그렇게 쓰여졌다. 세계에 응답하는 정동, 주체로 실존하게끔 만드는 서정, 세계와 주체를 끌어안으려는 시도인 윤리, 그리고 청춘에 대하여. 다소 병적 인간인 나의 시선이 많이 개입되어 있었지만, 크라잉넛의 몇몇 곡과 이시구로의 작품 뒤에 숨어서 말해지지 못한 말들 앞에 전선을 긋고 싸움을 도모했다. 얼굴을 밖으로 내밀다 빼며 숨가쁘게 문장을 밀고 나갔다.
누가 읽겠느냐. 가슴 아픈 말이다. 나도 안다. 누가 읽어주겠는가. 친구들은 앞다퉈서 ChatGPT로 감상문을 써서 보내더라. 챗지피티가 내 첫 독자가 되어준 셈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 진중하게 생각하련다. 병든 나의 ‘내면 풍경’이 리얼리즘의 차원으로 올린다고 가정할 때, ‘병든 세계’는 하나의 사실이 된다. 나는 리얼리즘이라는 자기 승인을 통해 사실에 대한 성실한 기록자가 된다. 우리는 포스트코로나(COVID-19) 이후 질병, 젠더, 세대, 정체성, 돌봄, 장애 등 소외약자를 만들어내는 소인들을 정치-자본권력의 결탁이 압제하려는 시도를 목격하지 않았던가. 최선의 기록이야 말로 정당한 역사를 만든다.
약자가 선은 아니다. 소외는 경쟁사회의 일상적 특징 중 하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인간은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다소 보수적인), 이들에 대해 공동체가 충분히 고민하고 끌어 안아야 한다는 믿음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방금 내가 열거한 - 질병, 젠더, 세대, 정체성, 돌봄, 장애 등 세계를 민감한 촉수로 감각하는 목소리들 - 은 나의 최전선이다. 우리의 최전선이다. 비평가의 최전선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비평가에 대한 소식을 접한 적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크고 작은 전투에서 이정표를 남길 것이다. 그것이 비평의 책무니까. 문화비평의 공적 역할이니까. 나를 인정하고, 다정한 손길을 내밀 줄 알 때, 우린 완벽하지 않지만 근사(近似)치의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