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단하기] 김수영, 거대한 뿌리

거대한 뿌리에 대한 감상

by An

歷史(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歷史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追憶(추억)이

있는 한 人間(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김수영, 거대한 뿌리 中


김수영의 역사의식은 날카롭다. 그가 “시인의 스승은 현실”이라고 했던가. 김수영은 식민 조국을 살아냈고, 해방 정국을 보았고, 미군정 치하에서, 참혹한 전쟁 속에서(북한군 의용군으로 징집됐다가 탈출해 거제수용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친미•반공•애국의 이데올로기 앞에서, 4•19를 경험했고, 죽었다. 1968년 6월에 죽은 김수영이 프랑스 5월 혁명의 물결이 세계적 항거로 번져가는 걸 보았으면 그의 서늘한 사회의식은 또 어떻게 시가 되었을까.



김수영의 시는 크로노토프(시공성 or 시공간 입방체)를 이룬다. 혼란이 지속되던 당대에 대한 해부학적 실험은 그만의 짐이 아니었다. 그는 ‘온몸으로 밀고 나간다.’ 그것에 대해 많은 평론가와 학자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헌사를 남겼다. 그의 시가 신비화가 되던(그건 직무유기지만), 지나치게 형이하학으로 끌어내리던(그건 코드에 가두려는 반동) 현실의 낙후성을 견디고 썩어 빠진 전통 속에서 뒹굴면서 인내해야 했던 시인의 존재론적 위기와 사유의 비루함 사이에서 끊임없이 시가 생성되었다는 점이다. 현실과 역사와 전통과 민중과 권력자들의 헤게모니 투쟁을 강렬하게 그렸지만, 등가적이었을 뿐, 위계를 부여하지 않았다.



김수영의 언어는 거칠지만 재빠르다. 그러나 그는 틈을 주지 않고 칼을 뽑아 찌른다. “남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가도 이북 친구들 앞에서 앉음새를 고친다. 김병욱이란 시인은 일제 치하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이며 대학을 다닌 4년 동안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 기도 하다. 그의 일본여자식 자세를 보며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고 시의 머리말에 배치한다. 인지과정의 역순 구성을 통해 고백하는 시인의 저 말은 단지 혼란했던 해방 후 조국상에 대한 곤혹스러움을 드러내는 게 아니다. 김수영은 1964년 지금, 당대의 정형화되고 도그마의 권좌를 지키는 인텔리를 향해 무지의 언설로 유효타를 날린다.



시 ‘거대한 뿌리’는 패러다임(계열축)은 신태그마(Syntagma, 통합축)의 투쟁이다. 1960년대 4•19의 좌절을 마주한 시인은 비통했겠지만, 그는 절망을 딛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버드 비숍여사의 시선으로 새롭게 경험되는 가부장제라는 조선의 유장한 전통(‘천하를 호령하던 민비는 한 번도 장안외출을 하지 못했다고……’)과 민중의 꿈, 불완전한 민주주의(신태그마)가 여전히 권력자의 도구, ‘애국’과 ‘반공’이라는 패러다임에 강하게 저지되고 있을 때, 시인은 깨닫는다. ‘버드 비숍여사를 안 뒤로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김수영은 이제 모든 고통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민중의 삶 속에서 역사를 바라볼 때 진정한 동력을 발견할 수 있다고 창안한다. ‘歷史(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歷史라도 좋다’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種苗商,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無識쟁이, 이 無數한 反動이 좋다’



뛰어난 시인은 코드에 갇히지 않는다. 대신 그는 자신의 시학을 주창한다. ‘온몸의 시학’을 고안한다. 시인은 제 발을 딛는 토양의 흙을 깊이 응시한다. 시인은 자신을 힐난하면서도 그곳에 믿음이 가능하다는 걸 발견한다. 그래서 그 시학은 단단하다. 역사의 천사가 거센 폭풍에 떠밀릴지라도 거대한 뿌리로 박혀 있을 테니.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 第三人道橋의 물 속에 박은 鐵筋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怪奇映畵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想像을 못하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김수영, 거대한 뿌리 마지막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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