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칸트주의자?
19세기 제정 러시아의 문학계를 지배했던 제왕으로 비평가 벨린스키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벨린스키는 러시아문학의 근본 토대로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신랄한 비판적 지향성을 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런 가운데 한 젊은 극단 혁명 서클 출신의 청년이 벨린스키의 눈에 들어 등단을 하게 된다. 그의 이름은 도스토옙스키, 서간체로 쓰인 데뷔작 <가난한 사람들>(1845)은 ‘새로운 고골’이라는 찬사와 함께 그를 문단에 등장시켰다. 그리고 도스토옙스키가 두 번째로 쓴 작품이 바로 <분신>(1845)이다.
<분신>은 칸트가 나누었던 현대성의 곤혹스러운 지점을 대화주의로 해결하려고 했던 바흐친의 시도로 읽힐 수 있다.(실제로 바흐친은 이 작품을 다뤘다.) <분신>의 간략한 줄거리는 이렇다. 하급 관리 골랴드낀이 자신의 과대망상과 편집증을 겪다 분신 제2의 골랴드낀이 보이게 되면서 심리적으로 붕괴되는 과정을 그린 심리 드라마다. 결국 골랴드낀은 분신에게 조롱을 당하고 정신병원으로 끌려가며 소설은 막을 내린다. 당시 단조로운 구성과 인물, 미숙한 문체로 대중의 외면을 받은 작품이지만, 도스토옙스키를 살아낸 현대의 우리는 그러한 구성과 문체에 우리는 주목하게 됐다. <분신>은 ‘시간에 늦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뭐 어떻단 말인가?’ 등 골랴드낀 내면의 독백체로 서술되는데, 오히려 내면의 독백은 타인의 반응에 민감한 주체의 형상과 내적 대화를 이루며 분열되고 비일관적 자아를 그려낸다. 고정된 좌표지향을 가져야 한다고 믿었던 벨린스키는 이 작품을 다소 우회해 냉혹하게 평가했지만, <분신>의 심리주의와 내적 대화는 인간 영혼에 내밀하게 깃들어있는 유동적 서사성을 끌어올리고, 소통을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골랴드낀을 믿어주지 않는 주변의 모습은 결국 소통과 교감이 본질적으로 내면을 떠날 수 없고,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해준다.
그렇다면 칸트의 현대성이란 무엇인가. 칸트는 그 유명한 3대 비판서(순수, 실천, 판단력비판)를 세상에 내놓고, 현대 문화를 세 개의 영역으로 나누었다. 칸트의 선언 앞에서 자연 인식 영역으로 ‘과학’이, 심미적 판단 영역으로 ‘예술’이, 도덕적 행위 영역으로 ‘윤리’로 현대성은 강고하게 분할된다. 그러나 청년 바흐친은 이러한 ‘현대의 분열’에 의구심을 품었다. 바흐친이 보기에 도덕적 행위 영역인 ‘윤리’가 ‘삶’과 동일시될 수 없었다. ‘삶’과 ‘윤리’가 동일하다면 ‘의무가 의무 자체로서 우리 앞에 생경하게 제시될 때, 그것은 구체적인 삶의 굴곡들을 무시하는 형식적 원리가 되고 강제의 족쇄로 우리를 구속할 것이기 때문’이었다.(민중과 그로테스크의 문화정치학, 최진석, 59pg)
현대의 분열을 타개하기 위해 바흐친은 시선을 저 하늘 위 초월적 도덕법칙에서 ‘개성’이라는 개별적이고 구체적 현실로 끌어내린다. 바흐친이 보기에 ‘개성’은 ‘책임’이었다. ‘삶과 세계에 대한 주체의 응답적 행위가 개성을 만들고, 그것이 곧 책임’이 되었기 때문이다.(같은 책, 67pg) 이제 바흐친의 눈앞에는 무한히 열린 선택의 과정이 놓이게 됐다. 좌냐 우냐, 비 오는 날에 막걸리냐 소주냐, 빈대떡이냐, 피자냐,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그러니 일상은 비일관적인 것이었고, 일관되고 단일한 자아라는 것도 하나의 가상에 불과했다. ‘삶은 균열된 자아의 비일관적이고 분열된 이미지를 봉합하거나 투과하는 방식으로 되비쳐진다.’(같은 책, 68pg)
나는 다시 묻는다. 도스토옙스키의 분열된 자아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도스토옙스키의 이러한 분열된 자아의 대화, 즉 정서적 리얼리즘(emotional realism)은 유토피아로 상정되는 전통적 체제, 기존의 정형화된 질서에 대한 질문을 가능케 한다. 그의 소설적 실험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칸트로 인해 발생된 현대의 분열(삶/윤리)의 틈에서 무한히 생성되는 사유를 뿜어낸다. 삶과 윤리가 대화를 통해 상호 응답하고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이 사회에 패러다임과 신태그마를 구축하고, 도그마가 된 현실적 양상을 다시 해체하는 과정이 비종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가 <분신>에서 직조해 낸 분열된 자의식과 내적 독백은 후기 작품인 <악령>에서도 등장한다. 지식인이라고 운운하는 협잡꾼에게 거울로 실체를 보여주는 한편 너무나도 높은 지향좌표를 가진, 북극성과 같이 요원한 이상향을 그리는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을 그린다. 그러면서 도스토옙스키는 존재의 본질적 의미의 추구, 지향해가야 할 가치 좌표설정, 실제적 구현, 그 방법, 그리고 그 과정은 만만치 않지만 그 길만이 존재의 근본적 존재 이유와 목적을 실현해 가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작가가 인식한 잔혹한 리얼리티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존재는 자신을 외로운 섬으로 인식하고, 자신의 분신만이 유일한 대화 상대가 되어 대화의식은 대자적 관계에서만 발생한다. 허깨비인가, 리얼리티인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정신분석을 제시한 프로이트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