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콥스키
일상은 무시무시하다. 일상은 고귀한 영혼을 천박한 비곗덩어리로 잠식시킨다. 일상적 인간들은 옹기종기 모여 쑥덕댄다. 저 인간은 목적이 없어. 저 인간은 비전이 없어. 저 인간은 돈이 없어. 저 인간은 한숨을 너무 많이 쉬어. 일상은 계율을 만들고, 생을 낡고 진부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분명하다. 이건 모독이다. 우리 일상은 산문이다. 이때, 사랑을 속삭이고, 여인이 나온 방 안에서 굉음이 들려온다. 탕!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1893~1930), 러시아 문학을 읽는 독자라면 이름만으로도 울림을 주는 시인. 그는 불타는 눈빛으로 자신감이 넘쳤던 젊은 예술가였고,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 이후 “세 번의 체포와 독방 구금”를 버틴 투쟁적 인간이었다. 그가 예술가로 활동하던 18년간 러시아는 격동의 시기를 살아내고 있었다. 묘한 그로테스크한 시대상, 우수에 찬 혁명, 흔들리는 대상과 세계 속에서 그는 깊이 사랑하고 증오했다. 그의 시는 ‘청년 전위의 초상’(이장욱)이었다.
마야콥스키의 시를 입.체.적.으로 읽으려면 그의 삶을 엿볼 필요가 있다.(감사하게도 이미 멋지게 번역되고 묶인 놀라운 그의 시선집이 존재한다. 꼭 구매해서 읽어보기를) 모스크바 회화·조각·건축 학교에 편입하고 스무 살이 된 1912년 마야콥스키는 페테르부르크에서 전시회에 그림도 출품하고, 카페 <길 잃은 개>에서 자작시를 낭송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마야콥스키가 시인으로 탄생하는데 동급생 친구 다비드 부를류크(D.Burliuk)의 영향이 컸다. 그들은 미래주의 문예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모스크바 언어학회(그 유명한 로만 야콥슨!) 등의 형식주의 이론가들과 시와 시 이론에 대해 교류하며 자신의 창작을 발전시킨다. 한편으로 혁명의 물결은 제정 러시아가 막기에 너무나 거대했고, 그렇게 보였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성공시킨 레닌의 신정부에서 입체파(Cubism) 미래주의 시인들은 당국의 정책적 격려를 받았다.
종말론적 공간으로 그려지는 도시(「도시 대지옥」)와 부르주아 시대의 혁명가로서 사회적 혁명과 예술적 혁명을 하나로 이루려고 했던 마야콥스키의 시(「바지 입은 구름」)를 읽다 보면, 그는 정말로 ‘혁명의 시인’(스탈린...의 복권 후 붙여진) 같다. 혁명 후에 선전·선동 시와 국가 주도의 포스터 작업과 광고 작업에 몰두하기도 했지만, 그는 불안한 예술가의 영혼을 지닌 혁명가였다. 소비에트 러시아 시기 입체에서 공산주의 미래주의로 이름을 바꾼 미래주의 시인들은 점차 당국의 외면을 받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차츰 떠오르며 문단에서도 밀려나기 시작했다. ·『꼼뮨 예술』, 『레프』(예술 좌익 전선LEF, 1923)을 연이어 창간하고, 마지막으로 『신예술 좌익 전선』(1927) 창간을 시도했으나 1년 뒤 폐간된다. 당도, 독자(인민)도 미래주의의 편이 아니었다. 꿈꾸던 혁명 후에 찾아온 절망과 외부의 압력, 예술가로서 회의와 좌절이 그를 옥죄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창작 20주년 기념 전시회에 출연할 때까지 시 낭송회와 강연회를 가지고, 해외여행도 꾸준히 다닌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섬세하고도 여린 내면을 엿볼 수도 있는데, 그의 시 전반에 흐르는 사랑과 서정성이 우릴 간지럽힌다. 그건 상징이나 메타포가 아니다. 그에게 시는 밀폐된 언어학적 실험실이 아니었고, 산문적 일상 세계와 끊임없이 대결해야 하는 시적 화자의 극대화된 고통이라는 구체적 현실에 발을 딛고 있었다. 그의 형식이 무엇이든 간에, 코드가 무엇이든 간에 시인의 존재론적 위기와 불안한 심리 상태가 작품에서 자주 노출되었다. 예술 혁명가로서 마야콥스키가 다른 시인 예세닌의 자살 이후 그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냉소했던 걸 떠올리면 그의 죽음은 많은 의문을 남기지만, 그는 분명 ‘인간으로 살았고 시인으로 죽었다.“(마리나 츠베타에바) 마지막 목격자였던 연인 베로니카 폴론스카야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가 작업실을 나가기 전 들었던 그의 말은 어딘가 의미심장하다.
“혼자 가, 날 위해서라도 평화롭기를, 전화할게.”
그는 인간이었고, 시인이었다. 마지막 공개적인 자리에서 낭송한 장대하고도, 완성하지 못한 유언시 「목청을 다하여」에서 ‘나 역시 / 당신들에게 로맨스를 / 지어 줄 수 있었건만 / 그것이 돈벌이도 되고 / 매력적인 일이니. / 하지만 나는 / 스스로를 / 누르고 / 내 노래가 흘러나오는 / 목구멍에 / 올라섰다.’ 라고 노래하듯, 그는 더 이상 목청을 다하여 노래할 수 없는 시대와 존재의 비극을 인식하고 있었다. 탕- 그 고독은 무엇을 향한 총성이었을까. 그의 죽음이 문학사적으로 아방가르드 예술의 영광과 좌절을 보여주지만, 그의 내면은 삶의 단면을 미학적으로 보여준다. ‘장님이 되어가는 자의 / 하나 남은 마지막 눈처럼 나는 고독하오.’(「나」)
그는 일상성과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그는 침묵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시는 그의 예언처럼 영원히 남았다. 일상으로 규율할 수 없는 증명 불가능한 삶을 시적 상태를 실천한 시인이었고, 시인으로 죽었다. 그리고 우리 삶 앞에서 다시 강철의 무지개처럼 혁명을 일으킨다. 저기 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힘차게 들려온다. 만국의 인민이여, 귀를 기울여라.
나는 일어나
비틀비틀 악보를 지나,
두려움에 몸을 굽힌 악보대를 지나 기어갔고,
무슨 까닭인지 외쳤다.
“맙소사!”
나무 목에 매달리며 말했다.
“바이올린아, 알고 있니?
우리는 지독히도 닮았어.
나 역시
외쳐 본들
아무것도 증명할 수가 없어!”
「바이올린과 약간의 신경과민」(조규연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