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서술기법을 중심으로
퍽! 유탄이 군인의 가슴에 박힌다. 군인은 쓰러지고 그의 시선엔 높은 하늘만 있다. 군인의 이름은, 안드레이 니콜라예비치 볼콘스키 공작.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이미 죽음을 직감했다.
톨스토이는 안드레이가 죽어가는 과정을 세 단계로 그린다. [사랑의 원리에 대한 고민] - [나타샤와 재회]<생명으로서 사랑에 대한 깨달음> - [죽음의 공포 극복]. 죽기 직전에 파블라(Fabula)에 흐르는 문체는 안드레이에 대한 냉정한 거리 두기와 자세한 내면 심리 서술이 교차되어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슈젵(Subject)를 이룬다. ‘그의 병은 육체의 순리대로 진행’되지만, 나타샤를 향해 사랑을 고백하는 안드레이의 목소리가 등장하고, 삶과 죽음에 대한 집요한 성찰이 이어진다.
톨스토이의 소설은 대체로 독백(Monolog) 구성으로 이해되곤 하지만, <전쟁과 평화> 속 안드레이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러한 이해에 갸우뚱하게 된다. 톨스토이는 세 개의 서술기법을 동원해 안드레이 묘사에 심혈을 기울인다. 죽음 이후 육체적 현상에 대한 서술(‘영혼이 남긴 육신의 마지막 경련’)은 낯설게 하기의 전형으로 보이지만, 삶과 죽음의 괴리에서 진정하게 산다는 게 무엇인지, 사랑을 실천하는 건 무엇인지, 고민하는 떨림으로 내면의 심리적 전이가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또, 인물의 내면과 타인의 시선을 대비하며 삶이라는 입방체를 극적으로 직조하는데, 시점의 분절과 변화는 진짜 나다운 삶이란?라고 묻는 괴로운 질문의 단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는 현실에서 누워 있는 그 방에 부상당하지 않은 건강한 몸으로 누워 있는 꿈을 꾸었다. 하찮고 무신경한 온갖 많은 인간들이 안드레이 공작 앞에 나타난다. 그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불필요한 무언가에 대해 논쟁한다. 그들은 어딘가로 떠날 채비를 한다. 안드레이 공작은 이 모든 것이 하찮고 자신에게는 지극히 중요한 다른 고민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 내 내지만 여전히 그들을 놀래면서 어떤 공허하고도 재치 있는 말들만 계속 늘어놓는다. (...)
그것이 그곳으로부터 한 번 더 힘껏 밀어붙였다. 최후의 자연적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두 개의 문짝이 소리 없이 열렸다. 그것이 들어왔고, 그것은 죽음이다. 그리고 안드레이 공작은 죽었다.
그러나 임종하는 바로 그 순간 안드레이 공작은 자신이 자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냈고, 임종하는 그 순간 안간힘을 다해 눈을 떴다.(...)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4』, 연진희, 민음사, 2020, 130
죽음을 인식하고, 사랑을 깨달은 순간, 안드레이가 살아내고 죽어가는 삶을 위한 여정은 그렇게 끝이 난다. 다소 선형적이고 교훈적이지만, 동시에 순환적이다. 안드레이의 삶은 역사라는 선형성에 갇혀 있지만, 그의 내면은 나선형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 좌표를 해체했다. 그리고 전복되는 그의 생각은 죽음으로 종결되는 듯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나타샤와 피에르, 플라톤 카라타예프 등이 추구하는 지향가치가 현실적 상황에서의 존재방식과 일치하는지 지켜보는 일은 이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하다. 『전쟁과 평화』는 당대 제정 러시아 시기 자신의 패러다임을 통합축(신태그마)으로 만들려는 인텔리겐치아의 리얼리티와 영혼성이 교차된 시공간을 그린다. 그곳은 유토피아일까? 인텔리겐챠가 자유의지로 계속 열린 정신으로 추구해 가는 과정 속의 향유는 아닐까? 결론을 내렸던 톨스토이는 이 작품과 『안나 카레니나』를 저술하고 다시 사상적·종교적 회의를 느껴 새로운 가치지향을 구축해 나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