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던 홀로그램 스티커를 검은 크래용으로

by 꽃기린

온통 새하얀 빛으로 가득했다. 무대 위에서 관객석을 바라보면 희뿌연 빛 뒤에 누군가 어른어른 있지만, 정확히 누구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강력한 빛은 무대를 부술 기세로 강하게 쏟아졌고, 그 아래 노래를 부르는 내가 서 있었다.


엄마는 노래를 못하는 나를 KBS합창단 오디션으로 이끌었다. 나는 마법의 성을 한 달 동안 연습했다. 나는 왜 이 노래를 잘 불러야 하는지 모른 채 같은 노래를 매일 같이 연습했다. 노래를 부르는 것도 힘든데, 밝게 웃는 표정을 지어야 한다고 엄마는 조언했다.


‘믿을 수 있나요. 나의 꿈속에서 나는 마법에 빠진 공주란걸.’


오디션에서 노래를 틀리지 않았지만, 긴장한 탓에 방긋방긋 웃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평소 기량을 뽐냈고, 실수도 없었다는 거에 만족했던 것 같다. 엄마는 다른 친구들이 노래를 너무 잘해서 걱정이라고 했다. 걱정과 다르게 나는 합격했다. 나중에 심사하셨던 단장님께서 노래 실력은 보통이었는데 방긋방긋 웃어서 합격이었다고 말해주셨다. 결국 나는 '노래'가 아니라 표정으로 합격의 문턱을 넘었던 것이다.


해마다 합창단은 정기연주회를 열었고, 그때마다 단원들의 가족들이 홀을 가득 채웠다. 어린 나에게 무대란 것은 늘 흥분되고 긴장되는 공간이었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동안 관객 모두 나만 보고 있진 않았음에도 나는 밤하늘의 빛을 내는 별이 된 것 같았다. 어린 마음에도 우쭐했던 적이 많았다. 아마도 강력하게 쏟아지는 무대 위의 조명이 비현실적이라 그 착각 속에 오래 서 있을 수 있었던 거 아닐까.


그렇지만 그 빛이 사라지는 무대의 어두움이 있었다. 무대 위의 빛나는 순간을 위해 매 주말이면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줄이고 합창 연습에 매진해야 했다. 나는 특별히 높은음을 잘 내거나, 낮은음에서 울림이 있는 목소리를 갖지 않았다. 나는 소프라노도 알토도 아닌 합창단에서는 조연인 메조 파트였다. 그러다 보니, 주 멜로디는 내가 연습해야 할 음들이 아니었다. 아는 노래를 연습할 때면, 주 멜로디에 보조적인 화음을 넣는 메조이므로 익숙한 멜로디를 이겨내야만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워낙 음치인 나는 음을 체득하는데 다른 친구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거쳐야 했다. 잘하지 못하는 것을 잘 해내야 할 때 오는 두려움을 처음 느꼈던 시간이었다. 노래를 못하는 데도 잘하는 척하며, 다른 단원 친구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해 노력했었던 시간이었다. 내가 음을 틀리면, 주변에 메조 파트와 합창단원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에 당시의 나는 절대음감이고 싶었다. 정확한 음을 잘 찾지 못하고 자꾸 틀리면, 내 양 옆의 단원 친구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 노래를 잘하고 싶은 마음 보다 합창단 친구와 어울리고 싶은 마음에, 더욱 열심히 연습했다.


이런 고된 연습의 시간에 비하연, 무대 위의 빛나는 순간은 사실 아주 짧은 찰나였다. 다이어리 한편의 붙여진 홀로그램 스티커처럼 반짝거리지만 아주 작은 모양새였다. 연습의 시간도 고되었지만,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나’에 대한 나쁜 소문들이 학교에 퍼졌다.


‘쟤 KBS 합창단이라고 자기가 예쁜 줄, 잘난 줄 안대’


주말에 친구들이 놀러 가자는 것을 거절하면서, 친구들에게 KBS합창단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연습일정과 겹쳐서 어쩔 수 없는 거절을 한 것이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합창단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노래 연습에 매진했고, 연습에 빠지지 않는 모범생이 되었던 것뿐인데 시기와 질투가 담긴 시선을 견뎌내야 했다. 나 스스로 예쁘다고 한 적이 없는데, 학교 친구들은 나의 외모 비하를 하기 시작했다.


‘엄청 못생겼어! 예쁘지도 않은 게 빽 써서 들어갔겠지’


그들의 오해로 만든 성에 나는 갇혀버렸다. 당시 내가 선택한 해결 방법은 그저 ‘웃자’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른 채 친구들이 상식적이지 않은 부탁을 해도 웃고 무리해서 들어줬다. 나는 학교 안에서 더 약하고, 더 괴롭히기 쉬운 친구가 되어 갔다.


주변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를 꿈꾸고, 사랑받길 원하던 어린아이는 점점 더 말 수도 줄어들고, 조용해졌다.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평가된 말도 안 되는 검은 크래용이 내게 칠해졌다. 그래서 남들 눈에 띄기 싫었다. 깜깜한 어둠 속 꽁꽁 숨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반짝이던 홀로그램 스티커는 까만 크레용으로 완전히 뒤덮였다.


이런 어린 시절을 회고해 보면, 반짝거리는 홀로그램 스티커가 나인지, 까맣게 타들어간 크레용이 나인지 헷갈린다. 나는 홀로그램 스티커처럼 밝은 사람이었을까. 검정 크레파스처럼 어두운 사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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