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 역시 결국은 스러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조금 부족하다

by 사유하는 엔지니어


막막한 어둠 속에 남겨졌을 때, 흔히 낮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이 문장을 읊조리곤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고통의 유통기한을 믿으며 현재의 괴로움을 견뎌내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자, 어쩌면 이 상황이 얼른 휘발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회피의 주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문장이 가진 본래의 서늘한 무게를 다시금 되새겨보려 한다. 흔히 위로의 말로 소비되는 이 경구는 사실, 위로보다는 준엄한 경고에 가깝기 때문이다.


탈무드에서 전해지는 다윗 왕의 일화를 보면, 왕은 보석 세공사에게 '승리의 순간 자만하지 않게 할 글귀'를 명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온 나라가 환호하며, 왕의 권세가 하늘을 찌를 듯한 그 찬란한 정점에서 다윗은 스스로를 경계하길 원했다. 그때 솔로몬 왕자가 제안한 문구가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다.


이 이야기가 주는 울림은 고난의 극복이 아니다. 오히려 '정상에 섰을 때 내려올 길을 보는 법'에 가깝다.


사람들은 일이 잘 풀릴 때, 마치 그 행운과 성공이 영원히 곁에 머물 특권인 양 착각한다. 겸손은 형식적인 태도가 되고, 어느덧 마음 한구석에는 오만함이 싹트기 시작한다. '능력이니 당연하다'는 생각, '이 영광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이 눈을 가린다. 바로 그 순간, 가장 위험해진다.


그래서 '지나가리라'라는 말 대신, '스러지리라'라는 단어를 마음속에 새기기로 했다.


'지나간다'는 말은 왠지 내 옆을 스쳐 가는 타자(他者) 같은 느낌을 주지만, '스러지다'는 다르다. 형체나 기운이 서서히 희미해져 없어지는 것. 쥐고 있는 이 뜨거운 성공의 열기도,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이 화려한 조명도, 시간이 흐르면 안개처럼 스러져 흔적조차 남지 않을 것임을 직시하게 만든다.


성공의 순간에 "이 일 역시 결국은 스러지리라"라고 되뇌는 것은 허무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현재를 가장 정직하게 마주하는 태도다.


지금 누리는 것들이 영원하지 않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례하지 않을 수 있고, 내일 닥쳐올 변화에 의연할 수 있다. 스러질 것을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의 성취를 감사히 여기되, 결코 그것에 영혼을 의탁하지 않는 평정심. 그것이 추구하는 진정한 강인함이다.


삶은 끊임없는 비움과 채움의 연속이다. 고통이 스러진 자리에 기쁨이 채워지고, 다시 그 기쁨이 스러진 자리에 성찰이 남는다.


오늘도 무언가 뜻대로 풀려 무심코 입꼬리가 올라갈 때, 혹은 남들의 찬사에 살짝 턱이 들릴 때 이 문장을 꺼내 본다.


"이 일 역시 결국은 스러지리라."


이 서늘한 문장 하나가 오만의 늪에서 건져 올리고, 다시금 겸허한 대지 위에 바로 서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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