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밟아도 밟히지마 ep.11]
“이 일이 제게 안 맞는 것 같아요.”
주변으로부터 종종 듣는 고민이다. 입사 후 적응에 대한 스트레스다. 일이든 조직이든 모든 면에서 자신을 맞추기가 어렵다고 호소한다. 그때 내가 가장 먼저 묻는 말은 ‘얼마나 지났을까요?’ 지낸 기간에 대한 질문이다. 보통 한 달이거나, 길면 석 달을 지내온 사람들의 고충이다.
“당연히 그럴 때이긴 해요. 저는 입사한 지 일주일 동안은 울면서 다녔고, 길게는 6개월이 되었을 때도 여전히 낯설었어요.”
자신이 바라 온 무언가, 쉽게 말해 '꿈'이라는 것은 자신이 처한 현실보다 높은 곳에 있다고 믿는다. 그 높은 곳에 올라가기만 하면 나의 상황은 훨씬 좋아질 것이며 고생 끝 행복 시작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꿈만 이루어지면 나의 지질한 현실은 드디어 막을 내리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리.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합격 통보를 받고 입사 ‘전’까지만 정말이지 너무나 행복했고 설렜다. 그 뒤는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나는 첫 취업뿐 아니라, 이직을 할 때마다 새로운 곳을 갈 때마다 이 부(不) 적응기를 지독하게 앓았다.
물론 모두 다 내가 간절히 들어가고 싶었던 곳이었다. 입사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고 나의 가능성과 실력을 인정받아 당당히 합격해서 들어간 곳이었다. 그런데 모두 불편한 것 투성이었다. 수많은 지원자 가운데 나의 최종 점수가 가장 높았겠지만 입사 후 나는 밑바닥 점수를 받은 기분이었다.
“아니 왜 이렇게 화면에서 안 예쁜 거야?!”
“많이 아쉬운데... 연습은 제대로 하는 거야?!”
지원자 중에는 가장 최상이었을지 몰라도 실제 방송에 투입되기에는 모든 면에서 부족했던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내가 도대체 어떻게 붙은 거지?’ 합격하면 다 끝날 줄 알았는데, 합격 후 주위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조여왔다.
“그걸 제가 왜 해요? 저는 하기 싫어요. 내 일도 아닌데.”
타 부서에 업무 요청을 할 때 일종의 기선제압이었는지 정색하던 그 사람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도 몰랐다. 내 욕심과 그들의 견제 속에선 계속 엇박자가 났다. 그들은 웃고 있는데 나는 웃지 못했고 그들은 대화란 걸 하고 있는데 나는 끼어들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도 못해 입 한 번 열지를 못했다.
한 직장에선 입사 후 일주일 동안은 출근 전 아침마다 울었다. 가기 싫어서 어린애처럼 울었다. 사람들이 불편했고 그 가운데 있는 '나의 참을 수 없는 어색함'이 싫어서 속이 많이 상했다. 전 직장이 그리웠고 이전의 동료들이 그리웠다. 이직은 괜히 한 것 같았다. 매번 그랬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이런 나의 부(不) 적응기를 고백할 기회가 오면 다들 놀란다. 놀라는 반응의 첫 번째는 그렇게 희망한 곳에 들어갔는데 왜 적응을 못 했냐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전혀 힘든 티를 안 내서 몰랐다는 의아함이다.
원하는 곳에 입사했지만 들어가자마자 매일 좌절의 연속이었던 이유는 꿈의 이동 방향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었다. 꿈을 이루면 높은 곳 어딘가 꿈이 있던 자리로 내가 올라가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꿈이 현실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꿈이 현실로 쿵-떨어지는 것이다. 꿈이 현실로 오니 매일같이 마주해야 하는 것들은 똑같았다. 그 꿈 주위에 있는 사람들, 환경, 근무 조건, 회사 분위기 등은 취업을 준비했던 지난한 현실에서 겪었던 ‘그렇고 그런 갈등’과 똑같았다. 내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꿈이 현실로 내려온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조건부 행복'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갖지 않았을 텐데. 그럼 입사 후에 찾아온 나의 괴리감에 그리 힘들게 당황하지 않았을 텐데.
그렇지만 다행히 나의 부(不) 적응기를 들키지 않고 잘 넘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반복되는 상황 속에 힌트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초반은 무조건 힘들다. 그리고 3개월에 다시 한번 고비가 오고 6개월에 한 번 더 올 수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 중 하나다. 초반은 무조건 힘들다. 중간에 괜찮아지기도 하는데 그래도 방심하지 말자. 6개월에 또 힘들 수 있다. 하지만 결국엔 다 괜찮아지더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일이 서툴러도, 사람들이 불편해도 ‘아직 난 3개월 차잖아.’ ‘아직 난 1년도 안 됐어.’ 하며 나를 위로할 줄 알게 되었다. 실제로 초반에 그렇게 적응 못 했던 나는 항상 퇴사할 때가 되면 아쉬워서, 헤어지기가 너무 아쉬워서 오열하고 만다. 그리고 전 직장들(?)의 선배들과 친구들과는 퇴사 후에도 사이가 끈끈하다. 계속해서 안부를 전하며 그리움을 전하며 그때 참 좋았지 하고 웃는다. 매번 그곳을 떠나왔어도 끊어진 인연이 없다.
얼마 전 10년 전 일했던 방송국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선배들하고 이야기하다 네 이야기가 나왔는데 네 칭찬들을 하네. 정말 회사생활은 잘했던 것 같다’며 10년 전의 나를 기억해주셨다. 선배뿐 아니라 난 오랜 지인들에게 기억에 남는 사람이라고 종종 연락을 받는다. 정말 감사할 뿐이다.
사실 나는 지독한 부적응자이며 이 일을 계속해도 되는 건지 매일같이 드는 의구심에 나를 못살게 구는 사람이었는데, 이런 나도 항상 끝이 좋았다는 건 희망적이다. 시작이 서툴러도 마무리는 완벽할 수 있다.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도 나의 진심을 알게 된다면 가장 마지막까지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꿈이 현실로 쿵-떨어질 때 당황하지 말고 여유를 갖자. 매일 일상을 잘 살아왔던 것처럼 그렇게 또 잘 살아내면 낸다. 낯선 환경은 곧 익숙해지고 그때 그 시절 참 좋았다 하는 나의 추억이 될 수도 있으니까.
천천히 이 부(不) 적응기가 잘 지나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