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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샷추가 May 16. 2022

카메라 앞에 섰지만, 방송에는 나오지 않은 날

[밟아도 밟히지마 ep.15] 

고용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프리랜서다. 물론 연차와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프리랜서의 삶이 훨씬 더 능률적이긴 하다. 프리랜서로서 나는 지금 내 삶에 너무나 만족하고 있고, 덕분에 일과 가정의 워라밸을 유지할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조직의 소속인 듯 소속 아닌, 그런 애매한 관계로 얽혀 있는 프리랜서의 경우 직원처럼 일은 하지만 당연히 복리후생은 없고 그 외 부당한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건당 받는 프리랜서는 정말 일한 만큼만 받는다. 몸값(?)에 따라 페이가 많이 달라지며 잘 나가는 프리랜서의 10분 분량의 노동 페이가 누군가의 하루 일당보다 많기도 하다.  시간 대비 받는 페이만 보면 프리랜서가 많이 받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고용 형태의 차이는 무시한 채 그 면만 보고는 그 사람은 일하는 것에 비해 많이 가져간다고 생각하는 조직원들도 종종 봤으니까.           



그 담당 피디도 그랬을까? 나의 연차가 쌓이자 하나둘 내가 담당해야 할 역할을 늘리기 시작했다. 처음 고용 조건은 방송 진행 담당에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가 담당 피디가 된 뒤 나는 난생처음 주요 기사를 뽑고 작성하는 일도 맡게 되었다. 이른 아침 생방송을 준비하면서 너무나 빠듯한 상황이긴 했지만 해야 할 일이라면 받아들였고 열심히 준비했다. 주요 기사는 함부로 뽑으면 안 되기에 기사 선정과 문구 작성에 대한 부담감은 있었을 뿐 일이 늘어난 것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었다.  그 뒤 다양한 시도와 역할에 대한 요구 또한 나는 기쁘게 받아들였다. 내 역량을 키울 기회라고 생각했으며 이곳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어려운 주제의 특별 대담 등을 진행하며 완벽에 가깝게 준비했다. 매일 나는 수험생처럼 공부했으며 방송을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다. 


           

문제는 내가 전혀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업무 배정이었다. 이전에 나는 주한 외국 대사와 영어로 대담방송을 한 적이 있다. 그 방송을 위해 난 매일같이 영어 과외를 받았으며 2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그 방송만을 준비했다. 타고난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나는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생방송 영어 대담방송을 마칠 수 있었다.           



문제의 그날, 담당 피디는 과거 나의 영어 방송을 이야기하며 앞으로 매일 외신기사를 번역해오라고 했다. 물론 방송에 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정신을 차렸다. 어리바리했다가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맡게 되어버릴 수 있는 기로에서 제대로 판단해야 했다. 내가 제일 중요하게 여긴 것은 정확성과 신속성이었다. 내 영어 실력이 매일 방송에 내보낼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인가? 무리였다. 영어 대담 하나를 준비할 때도 2주가 걸렸고 또한 대담 진행과 외신기사를 번역하는 일은 엄연히 다르다. 나는 진심으로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말씀드렸다.                



“방송으로 나가는 것이라 더 조심스럽습니다. 저는 그만한 실력이 되지 않습니다. 다른 일이라면 어려워도 노력할 수 있지만, 번역 일은 다른 문제입니다.”       

   

실제로 방송국엔 외신기사를 번역하는 외신캐스터가 있었다. 그런데 내게 외신캐스터 역할을 요구하는 그의 말을 나는 들어줄 수가 없었다. 일이 싫어서가 아닌 ‘못해서’였다. 애초에 프리랜서인 내게 예정된 업무 외에 할 의무는 없었으며 그리고 그것이 내 역량 밖의 문제일 때는 방송국에 기대되는 신뢰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솔직하게 말씀드려야 했다.           



대화가 통하지 않았던 우리는 생방송을 앞두고 스튜디오 밖에서 심한 고성이 오갔다. 그는 막무가내였으며 결국엔 내가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하게끔, 그렇게 상황이 돌아갔다. 그러고선 방송 10분 전, 그는 부조로 나는 스튜디오로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울그락불그락, 눈물을 참고 나는 꿋꿋하게 방송을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의 오프닝 멘트를 파트너 MC에게 주라는 디렉팅이 떨어졌다. 연차가 더 있기도 했고 오프닝과 첫 멘트는 항상 나의 몫이었는데, 담당 피디의 지시로 이제 들어온 상대 MC에게 그 역할이 돌아갔다.   


        

뿐만 아니었다. 대담 질문에서 내게 주어진 질문들이 방송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이유로 다 삭제되었다. 처음에 또는 중간에 있던 내 질문들은 대담 내용과 연관이 없다며 피디의 지시로 계속해서 삭제되고 상대 MC의 질문으로 바로 넘어갔다. 난 그렇게 카메라 앞에 섰지만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개편 전까지 한몇 주를 버텼던 것 같다. 담당 작가가 대신 미안함을 전하기도 했다.           






화가 났지만 난 그냥 했다. 그냥 앉아있는 것이 그날 나의 역할이라고 해도 나는 그러려니 했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난 똑같이 ‘못한다’고 할 것이다. 방송에 나와서 내 얼굴을 비추는 것보다, 내가 못하는 것을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 내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무능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보다 화면에 안 나오는 것이 훨씬 덜 굴욕적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그때 거절해서 참- 잘했다. 아픈 순간이었지만 날 또 그렇게 단단하게 만들어준 일이기도 하다. 괜찮다.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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