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차가운 셔터 아래 보여진 신발 여러개.

은행원 일기

by 이쁜한개

오전 9시.


차가운 셔터가 드르르륵 올라간다.


올라가는 셔터 아래 보이는 신발 여러개.


차가운 셔터가 올라가기 전부터 사람들은 이미 대기중이다.


번호표에 대기표가 하나, 둘, 셋, 징징거리며 발행이 된다.


'그래, 오늘도 시작이구나.'



은행에서 일하는 나는 이렇게 매일을 시작한다.


차가운 돈, 냉정한 돈과 함께


나는 따뜻한 마음으로 온기를 불어넣어


돈 앞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은행원.



요즘 누가 은행에 방문하냐고 하지만


그건 우리같이 젊은 사람들이 온라인 속에서만 이야기 하는 소리다.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어르신들.


그리고 삶이 복잡하고 바쁜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이 오프라인속에서 은행이 필요한 사람들이 우리의 생각보다 더 많다.



아침부터 줄지어 오는 고객중에는 기다려야 하는 것을 이미 알고


일찍 와서 기다리려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숨이 턱턱 막힌다.


'오늘도 마음 다치치 않게 잘 해내어 보자.'




'인사부서에서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우리 지점의 신규직원의 인사발령 메일이다.


신규 입사자의 커리어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된 본사에서


경력이 더 높은 직원으로 교체하겠다는 의지의 본사 인사발령 메일이 도착했다.



3년차 신규직원이 한달전 우리 영업점으로 발령받았는데


역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교체된 이번 인사 발령.


너무 안타까우면서도 현실은 어쩔수 없는 이 상황이


너무 속상했다.


내가 조금 더 잘했어야 했나.



한달동안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정신없이 일만했던 3년차 신규직원은


이번 인사발령에 되려 "괜찮아요. 전 오히려 더 괜찮아요."라고 이야기 했다.


일이 너무 많고 바쁘니 버겁긴 했던 모양이다.


괜찮다고 해주니 내가 위로 받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선배로써 조금 더 잘 해주지 못한 미안함은 어쩔수가 없었다.




우리 영업점 VIP 중에 부부가 함께 오시는 나이 지긋한 분이 계신다.


VIP고객이라도 유난스럽지 않으시고


항상 번호 대기표를 뽑아 순번을 차분히 기다리신다.


1시간을 기다려도 은행에 오면 당연히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시는 분이다.


성품도 좋으시고 젠틀하시며


절대 큰소리 내지 않으시는 분.



얼마전 마감시간이 넘어서도 남편분 혼자 묵묵하게 기다리고 계시는것을 보고


죄송스러운 마음의 눈 인사를 드렸다.


반가워 하시며 말없이 순번을 기다리신 VIP 고객님.



그분이 마지막 손님이셨는데


시간은 이미 5시.


퇴근시간이 5시 30분인데 5시에 마지막 손님을 응대하려니


모든 직원들은 이미 지칠대로 지친상태.



입에 단내가 나도록 하루종일 이야기를 하고서도


아직도 이야기를 하고 있는 우리 직원들을 안쓰러워하셨다.



그날도 말없이 조용히 업무만 보고 귀가하신 VIP 고객님께


죄송스럽고 감사한 마음만 가득 담은채


우리 직원들은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고


깜깜한 늦은 밤이 되어 퇴근을 했다.



신규직원의 인사발령은 이 일이 일어난 바로 이틀뒤였다.


VIP 고객님이 본사에 전화를 해서


직원들이 너무 고생하고 힘들어 보인다고


조치를 취해주는 것이 좋을것 같다며 안타까워하셨다고 했다.




안타깝지만 자본주의의 현실과 대응하는 본사의 액션에


나는 실망을 할수밖에 없었다.


본사 입장에서는 뭔가 액션은 취해야 했고,


겨우 저 정도의 인사 발령으로 마무리를 하려고 했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또한 VIP 고객의 이야기라면 반응을 하게 될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당연한 자본주의의 현실이구나 싶으면서도


서글퍼지는 마음은 어쩔수가 없었다.


물론 남아있는 직원들에 대한 충분한 배려이기도 했지만


아쉬운 마음과 공허해지는 내 마음은 왜이렇게 실망감이 컸을까.



이후에도 크게 바뀌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차가운 셔터문이 올라갈 오전 9시이면


신발이 여러개 보이는것은 변하지 않았고


번호표가 하나, 둘, 셋, 징징거리며 발행되는 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저 나의 실망감과


안타까움이 조금 더 커졌을뿐.



이렇게 또 하루를 보낸다.



은행원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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