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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is Ku Nov 01. 2021

파리 프롬나드, Paris Promenade

파리에서 산책하며 우울증 치료하기

삶에서 길을 잃고 잠시 Pause 상태로 지내다가 이대로 있다가는 그만 깊은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문득 떠올린 곳이 

파리, *파히 였습니다. ( 파리의 불어식 표현을 표기해봤습니다. )

Paris!





그저 정처 없이 그곳을 걷다가 오면 내 안의 저 깊은 우울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무작정 

티켓팅을 하고 처음엔 그저 며칠만 지내다 와야지 하는 생각으로 갔습니다만 그곳에 마침 예전에 함께 영화 작업했던 팀이 파리 로케이션 촬영 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혹시 도울 일 없을까 하는 생각에 두서없이 연락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그저 며칠만 있을까 하던 여정이 길어지면서 예정에 없던 마르세유 리옹도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일하며 여행하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헤보지 않은 일이니 혓바닥이 돋고 아파서 오래 할 수가 없는 일이라 파리로 돌아가면서 다시 여행자 모드로 돌아갔습니다.









먼저 파리 프롬나드의 메인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딱 한동네를 정하고 구글맵 하나에 의지해서 천천히 길을 걸었습니다.

데이터로 이리저리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WiFi 에 의존해서만 처음 길 나설 때 설정해 두고는 지도는 방향 

정도만 확인하고 가고자 하는 곳까지 가기를 며칠 반복했습니다. 


어느 날은 리퍼블릭끄, 어느 날은 마레 지구, 처음부터 관광명소보다는 그냥 머무는 곳에서 가까운 곳을 

점찍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가는 길에서 커피와 크루아상을 먹기도 하고 우연히 맘에 드는 카페가

생기면 한참을 보다가 들어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서점이 나오면 들어가서 둘러보고 프랑스책 말고 

어떤 게 있나 보기도 하고, 동네 사람들이 마트 가는 모습에 나도 따라가서 먹을 걸 사서 나와서 바게트 사서

샌드위치 만들어서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공원에서 먹기도 하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한참을 걷는 데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다리가 아프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목적지에만 하루에만 그 순간에만 집중하는 제가 보여서 깊은 우울이 여전히 따라다니는 와중에도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 게 느껴지고. 

" 아! 이제 내가 예전에 좋아했던 곳들을 가볼까? "생각도 들기 시작하고 파리에 있는 지인들도 만나볼까? 

하게 되는 순간이 자연스레 왔습니다.









미술관은 루브르, 오르세, 오랑주리, 로댕은 기본으로 가고. 오랜만에 왔으니 또 어디를 더 찾아 나설까? 


퐁피두센터는 물론 여러 번 가야지. 미테랑 도서관도, 시네마떼끄 가서 영화도 봐야지. 








마침 갔던 시기에 나스타샤 킨스키 주연의 [파리, 텍사스]가 재상영되고 있어서 그걸 보는 건 어떨까? 

내내 극장 앞을 지나면서 시간을 조율하다가 결국 보지 못하고 그 극장 앞을 참으로 여러 번 지나쳤는데 

두고두고 그때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라도 보고 올 것을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때 본 파리 텍사스 포스터가 

너무나 강렬해서 이미 본 영화지만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로 더 기억되는 작품을 파리에서 다시 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게 긴 인생의 여정에 자주 오지 않는 깊은 늪에서 정말 살려고 버티려고 파리라는 장소를 택했고

그 선택은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페이스북으로만 알고 지내던 프랑스인 친구와 만나고, 그 커플과 함께 에펠탑이 보이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대접받고 튈릴리 공원 근처에서 낮술_ 샴페인 마시는 여유도 누려보기도 하고 체류 기간 마지막 공항 가기 전에 오페라 근처에서 만난 거 역시 그분인데  떠날 즈음의 마침 그분 생신이라 여행 막바지라 정말 

작은 선물 하나를 전했는데, 그다음 해에도 여전히 잘 쓰고 있다면서 사진을 보내주거나 지금까지도 SNS를 통해서 서로의 사진을 즐기고 공유하며 연결되어 있어서 언젠가 그분이 부산에 오신다면 어디로 모셔야 하지? 생각해 볼 정도로 감사한 마음이 생기는 그런 관계가 생겼다는 것에 새삼 고마웠습니다.


 또, 프랑스인과 결혼한 동향 출신 여인 Y를 지인에게 소개받아 그녀가 지내는 곳에 가서 인사도 나누고 화방도 구경하고 (그녀의 부군은 파비앙 아담으로 마르세유에서 부산까지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파리 시내에서 화방을 운영 중이었다.) 지내는 동안의 생활에 대한 조언도 받고 했고 식사도 대접받았다.

파리에서 오래 유학한 친구도 만나 소르본 대학 근처를 한참 거닐기도 하면서 파리를 만끽했습니다.








처음 숙소로 정한 건 현지에서 유학 중인 첼리스트의 집에서 며칠을 지냈는데, 그녀와도 의기투합해서 브런치

먹으러 간다던지 동네에서 꽃을 산다든지하면서 로컬인처럼 며칠을 보내고 나니 마치 파리에 사는 듯한 기분마저 느낄 수 있었고 그녀의 소개로 알게 된 현지 친구들과도 어울리며 저 깊은 우울은 어딘가로 슬며시 

사라지고 있었지만, 그대로 사라질 얕은 감정이 아니기에 매일의 일상을 채워서 할만한 생산적 활동이 필요하던 바로 그때 오랜만에 온 파리에 조금 더 머물고자 하는 강한 의지로 앞서 언급한 영화팀에 뒤늦게 합류해 잠시 그 팀에서 생활했습니다.


파리 시내에서 렌트카를 타고 리옹을 거쳐서 마르세유에 영화 촬영하는데 헬퍼로 동참했지만, 너무 늦게 합류해서 예전에 하던 조감독 일을 해볼 수는 없었고 가끔 여유를 부려서 마르세유 곳곳에서 촬영할 때의 거리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그곳의 거리의 모습. 예정에 없던 도시였기에 그리고 다른 스태프들과 함께 해서 보이게 되는 다른 풍경에 낯설기도 하고 좋았습니다. 애초에 스태프로 이곳에 온 게 아니기에 그리고 아직 

제대로 파리를 보지 않았다고. 좀 더 즐기고 싶은 여러 곳이 있었기에 그 일은 마르세이유에서 일단락하고 

파리로 돌아와서는 혼자만의 또 다른 강행군이 시작되었고 그 와중에 부산의 지인이 파리로 오셔서 함께 

랜드마크 중심으로 다니는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배낭여행 왔을 때 간 베르사유 궁전 도 다시 둘러보고, 알려지지 않은 파리 근교의 외곽의 성과 정원을 비롯하여 에펠탑, 개선문, 라데팡스 심지어 혼자라면 타지 않았을 유람선도 타고 챙겨간 와인을 마시며 

바라보는 센 강과 파리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혼자서 주로 여행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서 먹는 것, 가는 곳, 보는 것 아주 사소한 루틴도 조금씩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일행이 생기면서 예정에 없던 모네의 지베르니, 에타르타, 르아브르, 몽솅 미셀까지 다녀온 것입니다.

무박으로는 도저히 갈만한 거리라 여기지 않았지만 어쩌다 그렇게 아무 준비 없이 가보자 하여 갔던 여정이라 그렇게 흘러서 프랑스의 가보고 싶었던 곳들 몇 군데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가게 된 것이다. 혼자서 막연히 가볼까 하던 지베르니 조차도 혼자라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갔을 터인데 마침 온 지인이 렌트카를 하면서 

그래 기왕이면 조금 더 멀리 가보자 하여 가보려 맘에 두었던 곳들을 그렇게 둘러보게 된 것인데

정말 보고자 하는 곳들을 효율적으로 보고 싶고 가고 싶은 곳 위주로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렇게 함께 갔는데 결과적으로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파리에서 여러 도시들을 둘러보면서 몽셍 미셀까지 가서 선셋을 

보고 야경도 보았지만 머무를 준비 없이 간 터라 ( 몽쉥 미셀 수도원이 너무 맘에 들어서 잠시 머무를까 의논을 하긴 했었지만 ) 

무박으로 다시 파리로 돌아오다 보니 야간에는 저 역시 운전에 동참했는데... 졸음과 싸우느라 너무 속력을

내면서 다닌 덕에 이후에 귀국해서 알게 된 속도위반 과징금 티켓은 기대치 않은 결과물이었네요.



암튼 지인과 이런저런 곳도 둘러보고 이미 지인이 오기 전에 갔던 곳들도 며칠 머무는 일행의 스케줄에도 꽤 영향을 받아서 지인이 귀국하기 전까지 내내 일정을 함께 했고, 심지어 있는 동안 꽤 늘어난 짐을 하나 부탁하는 민폐를 끼치기도 했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짐이 공항에서 분실되어서 지인이 도착해서는 집으로 가져가지 않고 나중에 항공사 측에서 바로 집으로 보내주는 서비스를 받게 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지인에게 수고를 덜하게 한 부분으로서는 다행인 부분이라 여겨졌던 신기한 일로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지인이 돌아가고도 며칠을 한참 더 파리에 남았던 나날은 그동안 가보지 못한 곳들 둘러보기로 합니다.


하루 종일 머물고 싶은 미술관에서 시간 보내기, 영화 작업은 끝까지 참여하지 못했지만 친하게 지냈던 이의 홈파티에 초대받아서 파리 근교로 누군가의 집에 가서 함께 저녁 식사와 와인을 마신 일, 돌아보면 계획을 

그리 짜려고 해도 가능하지 않았을 일들이 일어난 파리 체류의 기간이었습니다. 





단지 며칠 머물면서 수행의 기분으로 걷기 위해서 택한 곳이 파리였다고 하면

누군가는 왜 굳이 더럽고 관광객으로 가득 차 있는 그곳을 하고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단지 걷기 위해서라면 산티아고 순례자길 이라던가? 다른 곳들도 많았겠지만 삶의 전환점에서 맥없이 지친 저에게 그저 우울에서 작은 구원을 스스로에게 선사하고 싶었고, 그때 떠오른 곳이 파리였고.

그 선택은 완벽했습니다.


나의 성향과 스타일을 너무나 잘 알기에 단지 순례길을 걷는 것만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어떤 문화와 예술에의 갈구 또한 해갈하고 싶은 깊은 갈증을 미리 알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여전히 내 안에서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질문들이 있었지만,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살면서도 내내 

가지고 가야 할 것들이고 그저 , 산티아고 같은 끝까지 걷기만 곳으로 갔다고 한들 그 질문에 대한 명백한 

해답을 가지고 오지는 못했을 것을 알기에. 


나에게 필요한 건 일상에서 조금 떨어져서 나 자신을 볼 필요가 있었고, 그 시간들이 그저 여행하고 사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잠시나마 일을 하면서 그리고 틈틈이 여행과 루틴의 경계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런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나는 과연 다시 파리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나라의 다른 도시를 선택할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매번 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처한 처해진 상황에서 거기에 맞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동물이고 

저 역시 거기서 크게 벗어난 인물은 아니기에...


지금 다시 선택의 기로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다시 떠날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그곳은 파리가 될지 어디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나이스는 여전히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동참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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