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프타운 여행기 1 - Old biscuit Mill, 테이블마운틴
모든 것은 바람 때문이었다.
10월의 케이프 타운에는 세찬 바람이 휘몰아쳤다. 높은 보캅(Bo-kaap) 거리에 위치한 숙소 주변에서는 큰 바람이 불어오면 성인 남자가 전진해나가기도 힘들었다. 기껏 예약해 간 테이블 마운틴 케이블카 표는 무용지물이 될 판이었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운행을 하지 않아서 운이 좋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늘 그렇듯 내가 그 불운의 여행객이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기세 좋은 바람 소리 속에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운행을 확인했지만 역시나 운행을 하지 않는단다.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최대한 마지막까지 기다려보자, 정 안되면, 돌아가기 전날 두발로라도 올라가자'는 오기가 생겼다. 아무리 불운이어도 테이블 마운틴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바람이 헤쳐놓은 여행 계획은 날려버리고, 마음과 발길 닿는 곳으로 더 홀가분하게 비어있는 시간을 채우는 여행을 했다. 롱 스트릿 밤거리를 다른 여행자들과 함께 누비고, 인적 없는 해변도 찾아가 보고.
그러다 하루는 The Old Biscuit Mill이라는 오래된 시장을 가보고 싶었다. 눈길, 손길을 사로잡는 공예품들과 와인바, 세계 각종 음식 잔치가 열리는 푸드마켓, 북적이는 사람들보다 더 활기찬 곳. 전혀 모르고 찾아간 곳인데, 토요일에만 푸드마켓이 열린단다. 바람은 예상치 못한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주차 팁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면, 조끼를 입고 주차를 안내해주는 분들이 계신다. 그분들의 안내로 길에 주차를 하고 소정의 주차비(20 랜드 - 여기가 좀 비쌌다)를 지불하면 된다. 꼭, 어디에 주차를 했는지 골목을 기억해두는 것이 좋다.
이걸 살까, 저걸 살까, 어떤 것을 먹어볼까를 한참을 고민하다 빠져나왔다. 만약 일정대로였다면 방문하지 못했을 거란 생각을 가지고 돌아가는 길은 기분이 좋아서인지 바람도 잦아든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러나 기대는 없이 케이블카 운행을 확인해보니, 정확히 '운행 중'이란다. 걸어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 절반과 결국 이 행운을 거머쥐는구나라는 넘치는 희열을 진정시키며 테이블마운틴으로 달려갔다.
*테이블마운틴 티켓 팁
인터넷으로 예약이 가능하다. 날짜 및 시간/ 왕복 또는 편도 예약이 가능하다. 예약 후, 티켓을 인쇄하면 예약한 날짜부터 1주일간 사용이 가능 날짜가 기입되기 때문에, 1주일 안에 길이 열린다면 예약한 티켓을 사용할 수 있다.
역시나,
희소식을 들은 모든 사람들의 줄이 늘어져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지루하다거나 찡그리는 표정 없다. 줄이 얼마나 길던 상관없었다. 이 자리를 허락받은 우리가 얼마나 행운의 여행객인지 알기 때문이다. 저녁 비행기로 돌아가는 사람, 이제 막 케이프타운에 도착하자마 뛰어온 사람, 각자의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감사하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한 시간 반 정도 기다렸을까, 케이블카 입구 앞의 무리에 들고 나서야 마음이 안심이 됐다.
허무할 만큼 금세 올라간 정상은 아래서 보았던 것처럼, 그 이름처럼, 반듯하게 펼쳐져있었다. 가장자리 끝을 따라 걸으며 케이프타운의 전경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테이블 마운틴이 간직한 아름다움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고, 기억하고 싶어서 '지구에게 주는 선물', '세계 7대 자연경관'과 같은 말들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식상하고, 진부한 관광명소일 수도 있지만, 역시 테이블 마운틴에 오른다는 것은 케이프타운 여행의 화룡 정점이다. 테이블 마운틴에 올라 케이프타운을 내려다보며 감상에 젖는 것이야 말로 내가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허락받은 행운의 여행자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토요일 잠시 열렸던 행운은 일요일이 되고, 월요일이 되도 열릴 가망성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 나는 얼마나 큰 행운을 누렸던지. 허나 만약 바람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도 뚫고 갈 수 있는 용기와 체력이 있다는 것 또한 얼마나 멋진 일이란 말인가. 그러니 결국 어떻게든 테이블마운틴은 꼭 가야만 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