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씨네코치 Oct 12. 2023

초심자가 꼭 알아두어야 할 영화 독해의 정석

<기생충> 독해의 세 단계

영화를 날카롭게 분석하는 안목을 갖추러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독해를 잘하려면 어떤 방법을 거쳐야 할까요?


영화감독을 꿈꾸던 어린 시절에 저는 영화를 잘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영화를 잘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선배들이나 현업에 계신 분들께 여쭤봐도 책 많이 읽어라, 영화 많이 봐라 … 이런 막연한 말들만 돌아올 뿐이었고, 시중에 떠도는 평론가들의 말들에서는 실용적인 도움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혼자 공부하게 되더군요. 그래도 오랜 시간 혼자 공부하다 보니 정리된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지금 헤아려 보니 20년 가까이 되네요. 덕분에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도 하고 몇 해 전까지는 아마추어 제작자들을 지원하는 곳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저도 영화 독해에 정해진 방식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이제와 보니 아주 정석적인 방법이 있었습니다. 이때 독해讀解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독해의 한자말을 풀이하면 ‘읽어서 이해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독해란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읽어서 적극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입니다. 오늘은 영화를 읽어서 이해하는 방법, 그중에서도 가장 정석적인 방법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영화 독해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공학적 분석, 둘째 주제적 해석, 셋째 학문적 주석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독해가 가능하려면 영화예술에 관한 지식과 인문교양적 지식을 분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만 분리해서 볼 줄 알아도 영화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크게 달라집니다. <기생충>을 예시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기생충>을 호평하는 대다수의 평자들은 <기생충>이 계급 사회에 관한 냉소적 비평을 펼쳐보인 작품이라고 말합니다. <기생충>은 계급 사회에 관한 냉소적 비평을 펼쳐보인 작품이다. 그런데 <기생충>을 관람한 모든 사람들이 계급 사회 비평이라는 층위를 알아차렸을까요? 못 알아차린 분들도 분명히 계실 겁니다. 그렇다면 그 분들은 하나 같이 <기생충>을 흥미롭지 않게 보셨을까요? 아닐 겁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기생충>을 흥미진진하게 관람하셨을 겁니다. 봉준호 감독과 한진원 작가가 <기생충>에서 관객의 흥미를 자극하는 기술과 장치들을 능란하게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명백히 영화예술적 역량이지요.


반면 계급 사회에 관한 냉소적 비평은 어떤가요? 영화예술에 관한 지식에 바탕을 둘까요? 인문교양적 지식에 바탕을 둘까요? 이제 분리가 되시지요? 계급 사회 비평은 인문교양적 지식에 바탕을 둡니다. 그리고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기생충>은 계급 사회 비평의 층위를 알아차리지 못해도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생충>을 보면서 계급 사회 비평의 층위를 알아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생충>을 보기 전에 이미 계급 사회에 관한 담론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공부를 해서 알 수도 있지만 관련 경험이 있는 사람도 알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기생충>의 풍자에 불쾌감을 가진 분들도 꽤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이러한 분류를 바탕으로 영화 독해의 단계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공학적 분석입니다. 제가 조금 전에 영화예술에 관한 지식과 인문교양적 지식을 분리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러고 나면 <기생충>에서 봉준호 감독과 한진원 작가가 관객의 흥미를 자극하는 기술을 어떤 식으로 구사했는지 검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관객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에 관한 영화예술적 기술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공학적 분석은 작품의 구성 전략을 파악하는 작업입니다. 영화예술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작품의 설계 지도(청사진)를 따내는 것입니다. 사건 구도를 어떻게 설계했는지, 관객을 끌어들여야 하는 지점에서 플롯에서는 어떤 장치를 활용했고 데쿠파주는 어떤 방식으로 구성했는지 같은 것들을 검토하는 작업입니다.



둘째 단계는 주제적 해석입니다. 주제적 해석은 테마나 모티프를 읽어내 장면의 의미, 작품 전체의 주제, 감독의 연출 의도 등을 파악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생충> 독해에서 계급 사회에 관한 비평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제적 해석은 공학적 분석 이후의 단계입니다. 공학적 분석을 거쳐서 주제적 해석까지 마치고 나면 작품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공학적 분석으로 작품의 설계와 관련된 객관적인 데이터를 마련한 다음, 영화 외적인 사전 지식을 동원해서, 공학적 분석을 통한 객관적 데이터로부터 작품의 심층적 맥락을 잡아내는 것입니다. 영화예술적 지식뿐만 아니라 영화 외적 지식이 동원되는 작업이므로 공학적 분석보다는 난이도가 높은 작업입니다.



이때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영화 독해 과정에서 대개의 경우 공학적 분석을 건너뛰고 바로 주제적 해석으로 들어가곤 하는데요.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인상 비평입니다. 그 결과 허무맹랑한 해석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따라서 엄밀한 주제적 해석에는 반드시 공학적 분석이 요구됩니다.


셋째 단계는 학문적 주석입니다. 학문적 주석은 주제적 해석의 다음 단계입니다. 주제적 해석을 하는 가운데 잡아낸 모티프나 주제 개념을 학문적 계보의 차원에서 검토하는 작업입니다. 말이 조금 어렵지요? 조금 더 와닿게 이야기하자면 주제적 해석을 학문적으로 재검토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로 아카데미에서 전문 연구자들이 수행하는 작업입니다. <기생충>을 예시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기생충>이 계급 사회 비평을 인류 역사상 최초로 펼쳐보인 작품이 아니라는 것은 다들 잘 아실 겁니다. 계급 사회 비평과 관련해서 <기생충>에 선행하는 텍스트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중 <기생충>에서 직접 차용한 경우도 있겠지요. 실제로 조지 오웰의 냄새 모티프를 끌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히치콕의 모티프도 주요하게 쓰입니다. 특히 분열(더블)의 모티프가 눈에 띕니다. 자, 이제 우리는 이러한 고전 예술 작품들과의 관계망 안에서 <기생충>이 어디 쯤 있는지 가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생충>이 히치콕의 작품이나 조지 오웰의 작품과 어떻게 닮았고 어떻게 다른지, 무엇이 새로운지 등도 따져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이와 관련한 주요 선행 연구들을 검토해야 합니다. 여기까지 마치고 나면 학문적 주석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까마득하지요? 그래서 학문적 주석은 전문가들의 영역입니다. 영화감독들이나 작가들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다가올 수도 있는데 완고한 예술가들은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이런 정도의 검토를 수행합니다. 제가 보기에 봉준호 감독이 한국의 웬만한 평론가들보다 히치콕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습니다.


영화 독해의 세 단계 중 여러분은 어느 단계까지 할 수 있으신가요? 영화 보는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분도 계실 거고, 셋째 단계까지 욕심이 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혹은 내가 직접하는 건 힘드니 누가 대신 해줬으면 좋겠다거나 누가 가르쳐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는 분도 계실 겁니다.


전문 연구자가 아니라면 둘째 단계를 할 줄 아는 것도 꽤나 준수한 겁니다. 저는 첫째 단계는 한 번쯤 직접 해보시는 걸 권합니다. 그렇게 대여섯 편 정도 해보면 영화 보는 눈이 많이 달라지실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 지망생 그리고 평론가 지망생이라면 반드시 익혀야 합니다. 이 작업은 기본기 훈련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들 앞에서 기타 연주를 한 곡 할래도 기초 개념 숙지와 무수한 연습이 요구되지 않습니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을 뿐이지 영화에도 그런 기본기와 필수 연습 사항과 훈련 방식들이 있습니다. 공학적 분석은 그러한 것들을 익히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공학적 분석과 주제적 해석의 차이가 여전히 막연하게 다가오시는 분들은 저희 채널 첫 영상에서 <토이스토리4> 분석/해석 예시를 보십시오. 그리고 <시민 케인> 해설 시리즈는 학문적 주석에 가까운 독해입니다. 저희 채널에서는 공학적 분석의 예시를 보여드리려고 하는데요. 일전에 예고 드린 것처럼 <기생충>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사르트르가 역대 최고의 영화를 혹평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