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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Mar 10. 2019

누드비치에선 옷을 걸친 당신이 거추장스러워진다.

#005 다섯 번째 이야기

거의 20년 전 처음으로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독일의 뮌헨의 공원에 날씨가 좋으면 꽤 많은 이들이 누드로 드러누워 있는 곳이 있다고 전해 들었다. 물론 미대생이었으므로 누드 크로키를 그려온지라 누드에 대한 환상이나 생전 처음 보는 남자 누드는 아니기에 정신적 충격이라기보다 어린 나이에 갖는 호기심이 더 강했다고 볼 수 있다. 나와 나의 친구들의 이런 응큼한 호기심과는 달리, 멋지고 건장한 독일의 젊은 근육남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고 죄다 나이가 지긋이 들은 배가 불룩 나온 할아버지들 뿐이었다. 도시의 한 복판에 위치한 이 커다란 공원에 널린 나체주의자들을 바라볼 수 있다는 기대감과 호기심, 이들을 찾던 열띤 스릴이 아직도 내 기억 속에서 생생하다.


독일의 사우나 문화 또한 한국의 문화에 비교해보면, 무척이나 생경하다. 약 8년 전, 처음으로 남편과 함께 뮌헨에서 20년째 살고 있는 남편 여동생 가족들을 보러 갔을 때 사우나에 함께 간다는 것이, 그것도 남녀가 모두 누드로 같이 들어간다는 게 문화적 충격이 아닐 수 없었던 나였다. 처음 보는 남편의 여동생 가족과 함께 누드로 사우나에 간다고 상상을 하자, 낯간지렵고, 부끄럽고, 어색하여 가기 전부터 정신적, 마음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남편에게 누차 얘기했었던 나였었다. (결국 처음으로 여동생 가족들을 방문했을 때에는 수영장에 딸린 사우나 시설을 이용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었다.) 8년이 지난 지금은, 가족들이 함께 쓸 수 있도록 탈의실이 남녀의 구분 없이 비치되어 있는 독일인들의 문화가  합리적으로 보이고, 가끔 사우나에서 아랫도리를 가리는 수건을 풀어 뜨거운 기운을 흩어주기 위해 휘날리는 배 불뚝 나온 독일 할아버지도 낯 붉히지 않고 자리를 꾸욱 지키며 땀을 낼 수 있는 내공이 생겼다. 더욱이, 한국의 어느 수영장에서 남아 만 4세 이상은 수영장 여자 탈의실에 들어갈 수 없다는 황당한 수영장 규칙에 분노하는 여자가 되었다. (엄마랑 단 둘이 오는 남아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해에 나의 아들은 딱 만 4세 반이었고, 나는 남편 없이 아이 둘과 한국에 들어왔었다.)


처음으로 수영복을 모두 벗어던지고 바닷가에서 누드로 보낸 그 날, Porto Covo, Portugal


아직도 처음으로 수영복을 모두 벗어던지고 바닷가에서 누드로 보낸 그 날을 기억한다.


그때의 나는 첫째 아이를 임신한 지 6개월이 좀 넘었을 때였다. 우리는 남편의 스페인 바닷가 레스토랑의 여름 시즌을 끝내고 1달 휴가로 포르투갈로 떠났었다. Porto Covo라고 포르투갈의 남부 바닷가였는데, 생각보다 파도가 높아서 수영은 하기가 힘들었지만, 그 덕분인지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포르투갈의 바닷가는 하늘에서 바라보았을 때 꼭 초승달 모양처럼 해만의 형태를 띠는 곳이 많다. 수만 년의 세월 동안에 파도에 의해 돌들이 깎여 캐년의 형태를 띠는 절벽에 둘러싸여 숨겨져 있듯이 해안가가 만들어진다. 우리가 자리 잡은 곳에는 우리를 제외하고는 단 한 명의 사람도 없었고, 나의 이탈리안 남편과 나는 그날 처음으로 누드로 해변에서 하루를 보냈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태곳적 모습 그대로 있을 수 있는 자유로움과 평화로움, 꾸미지 않은 모습 그대로일 수 있는 이 감성과 따스한 태양과 드넑고 파아란 하늘, 조금은 차가운 바닷물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자니,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다. 그렇게 우리들은 조금씩 사람의 때를 없애가기 시작했다.


수만 년의 세월 동안에 파도에 의해 돌들이 깎여 캐년의 형태를 띠는 절벽에 둘러싸인 포르투갈 바닷가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아직까지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인 바닷가들이 남아있는 몇 안 되는 나라이다. 스페인에서 살 때부터 바로 옆 나라이기에 쉽게 자동차를 끌고 찾아갈 수 있어서, 우리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여름휴가철이 시작되기 전이나 끝나고 나서의 한가한 시기인 5월~6월이나 9월~10월에 즐겨 갔었다. 남편은 새로운 곳을 찾아내는 모험심이 강한 성격이라, 여행할 때에는 하루에도 아침과 오후를 다른 바닷가에서 지내기도 한다. 또한, 5년 전 포르투갈에 레스토랑들을 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정말 많은 바닷가들을 찾아내었다. 그중에 몇 군데 바닷가를 선호하는 곳이 있는데, 그중에 가장 좋아하는 바닷가는 누드비치이다. 대부분 그 바닷가에 오는 사람들은 누드로 지낸다. 이곳은 그 유명한 구글 맵에서 조차도 나와있지 않기에, 아는 사람들만이 오는 곳이라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또한, 이 곳에 도착하기 위해서 지나가는 주변 풍경은 올 때마다 감동하게 된다. 토스카나처럼 언덕들이 이어지고, 봄에는 색색의 꽃들이 피고 푸른빛의 풀들이 바람에 살랑 거린다. 파아란 하늘과 따스한 햇살, 이보다도 더 평화로운 파라다이스가 있을 수 있을까? 이 곳에 도착하면, 그 흔한 카페 하나도 없다. 캠핑카들이나 커다란 카미온을 집처럼 계조 해서 살아가는 여행자들이나 히피들도 꽤 많이 보인다.


벤에서 내리면 숨 막힐만치 멋진 바다 경관이 보이는 곳에서  자고 있는 우리 가족들, Odeceixe, Portugal


우리는 보통 남편의 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밤에 우리 벤을 미리 침대로 만들어 놓고, 자는 아이들을 자동차에 태우고 그곳으로 향한다. 밤에 도착하면, 불빛 하나 없는 그곳의 하늘은 별들이 말 그대로 쏟아져 내린다. 10대 정도의 벤이나 캠핑카들이 이곳에 모여 함께 밤을 보내도 누구 하나 한밤중에 시끄럽게 구는 경우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고요한 바닷소리만이 들릴뿐이다.


이른 아침 눈을 뜨면, 우리는 준비해 온 아침식사를 가지고 바닷가로 간다. 뜨는 해를 보며 요가나 명상에 잠기기도 하고,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은 아침식사를 하며 이미 놀 준비를 한다. 햇살이 따스해지며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옷을 벗어던진다.




아이들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자유롭게 바다에서 뛰어놀 수 있는 곳
어른들도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도 삐뚠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태곳적 모습으로 있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곳
오히려 수영복을 걸치고 있는 당신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곳
꾸미지 않은, 생긴 모습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곳
이곳이 진정한 파라다이스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 방종에 가까운 자유에서 얼마나 정신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대학시절 친구들 넷이서 함께 사진 작업을 했었다. 일명 패러디 작업이었는데, 원작을 우리들의 시선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마네 Edouard Manet의 작품인 "풀밭 위의 점심식사 Le Déjeuner sur l'herbe"에서처럼, 예전의 모든 작품들에서  남자 누드는 단 한 명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원작의 여자 누드를 남자 누드로 바꾸고, 이 남자 누드를 항하여 서로 각자의 방식으로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었다. 여자 누드의 자리에 남자 누드를 대치함으로써 받아들여지는 시각적, 심리적 불편함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미대 시절에도, 보통 누드 크로키 시간에서조차, 여자 누드모델이 들어오면 별소리가 없다가도, 남자 누드모델이 들어오면, 여러 가지 이유를 대고 나가버리는 남자 동기들이 꽤 있었다.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마네 Edouard Manet의 작품인 "풀밭 위의 점심식사 Le Déjeuner sur l'herbe"와 패러디 공동 작업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의 이런 페미니스트적 목소리가 고정된 문화적 관념을 깨는 투쟁을 하고 있다고 착각했었다. 진정한 페미니스트는 여자와 남자가 평등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며 싸우는 게 아니라, 여자와 남자가 가진 신체적, 정신적 부분들을 서로 인정하고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며, 남자나 여자로 구분하지 않고 한 인간의 본연으로 돌아오는 것이라는 걸 15년이나 지나고서야 깨달았다. 나와 당신이 옷 한옭 안 걸치고 서로의 눈을 어느 필터도 없이 진솔히 바라볼 수 있을 때, 거기서 부터 우리는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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