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네 번째 이야기
내게 어울리는 옷과 내가 좋아하는 옷의 차이처럼, 내게 어울리는 사람과 내가 끌리는 사람 사이의 간극 속에서 많은 혼란과 아픔, 시차를 거친다. 그러다가 이 둘이가 운이 좋아 일치했을 때 우린 인생의 동반자를 만났다고들 한다.
같은 이유로 반복적으로 이별을 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선호하고 찾는 사람이 나라는 사람과는 맞지 않다는 것일진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나에게 맞지 않는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파악하면, 내게 맞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더 좋게도 더 나쁘게도 보지 않고 나를 멀리서 관조하듯 볼 수 있을 때, 그리고 나의 부족한 면 조차도 인정하고 수긍할 때 비로소 나를 알아가고, 내게 필요한 사람이 어떤 이인지 알 수 있게 된다. 흔히들 말하길, 난 엄마처럼은 안 살 거야라든가, 아빠 같은 사람은 안 만날래 같은 속내 말은 오히려 그와 같은 이상향을 무의식 중에 찾게 된다. 아니면 살아오면서 보아온 역할 모델상이 우리의 부모님들이기에 이 역할 모델에서 그다지 많이 벗어나지 못한다고도 할 수 있다.
나 또한 항상 내게 어울리는 사람보다, 내가 선호하는, 매력적이라 생각되는 이를 찾아다녔고, 이들은 하나같이 어떻게 보면 변덕쟁이, 바람둥이, 이기적인 예술가이거나 소위 나쁜 남자들이었다. 이런 남자들에게는 잡힐 것 같은데 잡히지 않는 이 아슬아슬한 묘미와 결국은 내게로 올 거라는 약간은 도전적인 마음이 더욱더 이들을 매력적으로 만들어준다. 하지만 사랑은 게임이 아니다. 사랑은 서로가 주고받는 진실한 마음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모든 자존감을 내리고, 대체 나라는 게 뭔데 하는 심정으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과 만나보았다. 하지만 운 나쁘게도 착하디 착한 그는 나와 만날수록 서로의 부정적인 면만 더 발달시키곤 했다. 그는 더 착하고 더 어리석어졌으며, 나는 점점 더 못된 여자가 되어갔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맞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가 참지 못하고 화가 나게 만드는 그의 못마땅한 면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별것이 아닐 수가 있는데, 하필 나와 함께여서 불꽃이 튀기고, 시끄러웠다. 내게는 결코 가볍게 넘기기 힘든 부분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여러 남자들을 만나면서 내린 결정이 자체 원봉 쇠퇴라고나 할까? 내게 맞는 사람은 외계인일 수밖에 없나 봐,,, 진정한 사랑이란 없는 거야. 그냥 영화에서나, 책에서나 나오는 것이거나, 내게는 오지 않을 행운같은 것으로만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면, 함께 있어도 더 외로웠기에, 차라리 혼자인 게 낫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쓰디쓴 사랑 뒤에 믿어지지 않을 만치 따사롭고 달콤한 사람이 내 인생에 찾아왔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다가온 사랑을 믿을 수가 없어서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미리부터 불안해하기도 했었다. 사랑의 저울질이라던가, 밀고 당기기란 것도 없었다. 그저 사랑을 퍼주면 그 사랑이 두배가 되어서 돌아올 뿐이었다. 내가 사랑한다고 얘기했을 때, 보통 다른 이들처럼 게임이나 내기에서 이긴 것 마냥 더 이상은 달성해야 할 목표가 없는 것처럼, 그렇게 그는 떠나가 버리지 않았다. 내겐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그는 나의 가장 가까운 옆자리에서 나의 손을 잡고 걸어간다. 물론 그 이후, 잉꼬부부라고 소문이 났다고 해서 우리가 싸우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우리의 장점이자 공통점은 말다툼을 할지언정 1~2시간이 넘어가지 않는 게 보통이고, 뒤끝이 없다는 것이다. 특유의 뜨거운 다혈질의 이탈리안 피를 가진지라 가끔 화가 나면 할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거나 지극히도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이유를 대며 자신의 말도 안 되는 이론을 강요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좀 시간이 지나, 보통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이 되면, 먼저 다가와 자신이 잘못했다고 진솔하게 얘기하거나, 우는 척을 하든, 웃긴 얼굴을 만들든, 결국 나를 웃기게 만들어서 화해하게끔 만들어내는 유머러스함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었다. 내게 필요했던 것이! 내게 없는 이 유머러스함!
그의 이 유머러스함은 내 인생에서 비어져 있는 퍼즐 조각 같은 것이었다. 그가 내 삶에 들어왔을 때, 살아가면서 유머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아이들과 지낼 때에도, 보통 때라면 저 정도면 화가 날만도 할 텐데, 대단한 인내심과 유머러스함으로 가볍게 넘겨서 결국은 아이와 웃으며 화해하는 그를 경이로운 모습으로 바라본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햇살이 따스하게 비치거나 선선한 산들바람이 부는 길을 걷기도 하지만, 때론 세차게 소나기가 쏟아지거나 예상치 못한 강태풍이 불어온다거나 뼛속까지 얼려버릴만치 추운 길을 걸어가기도 한다. 우리 또한 이렇게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고, 그 지겹고도 길었던 힘든 시간 속에서 나의 이 유머러스한 남자는 유머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고 우리 가족 안에 작지만 따스한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항상 옆에서 지켜주었다.
내 삶 속에 그는 유머러스함과 긍정적 마인드, 따스하고 한결같은 사랑을 가져다주었다. 아직도 처음 만났을 때처럼 뜨거운 눈길로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 내가 엄마이기를 자처하게 만든 사람. 그와 동시에 내가 여자이기를 계속 요구하는 이 남자. 들에 핀 꽃들을 꺾어 한 다발의 예쁜 꽃다발을 만들어 특별한 날이어서 주는 게 아니라 그냥 내게 주고 싶어 가지고 오는 이 남자를 나는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