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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Mar 17. 2019

무소유,,,아직 멀었다.

#006 여섯번째 이야기

우리 가족은 여행을 제외하고 일 년에 3-4번을 나라를 바꿔가며 살아왔었고, 1년전까지만해도 2번 나라를 바꿔가며 살아갔다. 일 년에 6개월만 일하는 나의 이탈리안 요리사 남편 덕에 일 년의 6개월은 꼬박 포르투갈의 따뜻한 남부 바닷가를 베이스캠프로 삼고 살아가고, 그 이후에는 여행 가는 기간을 빼면 이탈리아 밀라노 근교에 마련해둔 우리의 베이스 캠프로 돌아왔었다. 그렇게 스페인에서든 포르투갈에서든 매년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와서 지낸 지가 5년하고 반년이 지났다.


 그렇게 항상 여기저기서 사는 우리의 삶의 패턴은 절대 짐을 많이 늘려선 안된다. 스페인으로 오기 전만 해도 어릴 적부터 쓴 다이어리니, 사진들, 초등학교 때부터 그려온 스케치북 등을 쌓아놓고 자료로 적절히 잘도 사용하곤 했었으나, 스페인으로 오면서 나의 짐들은 이민 가방 하나와 작은 케리어 가방 하나, 그리고 나중에 배편으로 붙인 3박스가 전부였었다. 물론 그 뒤로 플라멩코 의상 제작에 필요한 천이라던가 재료들, 패턴들, 자료 책들이 점차적으로 늘어났으나 그래도 나의 짐은 14년간 세비야에서 살아온 나의 이탈리안 남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의 나의 남편의 신발은 내 것의 6배, 옷은 내 것의 족히 4배는 더 되었으며, 책들은 우리 집이 이층 집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사를 도와주기 위해 온 나의 친구들이 위층의 책장에 있던 책들을 좁은 달팽이식 계단으로 가지고 내려오며  “조르지오한테 보고픈 마음보다 책무게가 더 생각날 거라고 전해!”라며 땀을 뻘뻘 흘리며 책들을 내려와 줄 정도였었다. 그러던 나의 밀라노 출신 남편의 명품 옷들과 신발들은 우리 삶의 스타일에서 쓰잘데기 없는 부류에 속하게 되었고, 결국은 아는 지인에게 주거나 중고샵으로 넘어갔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살면서 삶이 단촐해지고, 아이들을 아기띠에 데리고 다니면 옷이 스타일을 만들어 주지는 않았다. 아빠의 기럭지와 아이의 귀여움으로 먹고 들어가니까. 또한, 아이들을 무릎 위에 앉혀서 아이스크림을 먹게 되거나 아이들과 함께 뒹굴며 놀려면, 좋은 옷이란 편하고 더러워져도 핏발 안 올려질 저렴한 옷들인 것이다. 그럼으로써 나의 남편의 말쑥하던 스타일도 더욱더 자연인에 가까워지고, 겉모습보다 내실에 더 신경 쓰는 멋쟁이가 되어갔다. 


하얀 셔츠를 걸치기를 좋아하던 이전 모습(왼쪽)과 둘째아이와 캐쥬얼 패션(오른쪽) 그래도 카메라는 포기하지 않는다.
귀걸이, 목걸이를 즐겨 하던 예전 모습(왼쪽)과 아이들과 함께하는 바닷가에서의 삶은 그리 많은 게 필요치 않아진다.(오른쪽)


스페인에서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갈 때처럼 우리는 5년 반의 이탈리아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이번에는 포르투갈로 베이스캠프를 두기로 결정 내렸다. 이로써 근 5년 반의 이탈리아 생활의 짐들을 모두 정리해야 했다.  커다란 짐들인 소파나 냉장고, 세탁기, 난로 등은 눈감고 놔두고 왔다. 물론 나중에 필요할 때 모두 가지고 올 물건들이지만, 물건에 대한 집착은 버리기로 했다. 장난감들도 여느 다른 집 아이들에 비하면 10/1 정도라고 할 만치 빈약하다. 하지만 많이 사들인들, 언제나  새로운 장난감을 원하는 게 아이의 심리. 오히려 좀 어설프고 서툴러도 직접 만들기를 할 수 있는 재료들을 비치해 두는데 더 신경을 썼다. 또한, 보통 밖에서 5-7시간을 매일같이 숲에서, 바다에서 뛰어 놀기에, 정작 집에서 노는 시간은 적어 그리 많은 게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게 책이지 않을까 싶다. 어린 나이에 전자북으로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고, 직접 책장을 넘김으로써 또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이 환상적인 체험을 아이가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으니까. 게다가 워낙 첫째 아이는 책을 좋아하니, 내가 극성떠는 엄마가 될 수밖에... 한국에 들어갈 때면 박스로 보내거나 비행기 짐가방에 가득가득 넣어서 오곤 했으니.... 다른 건 몰라도 한국의 책 값은 유럽에 비하면 정말 착한 가격인 데다가, 중고로 구입하면 가다가 돈 줍는 것보다도 더 기분이 좋으니.  


짐싸느라 아수라장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캐리어에서 책들을 다시 꺼내서 보고있는 아이들. Milan, Italy


6개월 전 이탈리아에 다시 돌아왔을 때, 여러 가지 일이 복잡하게 꼬여서 예전에 살던 집에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되고 그럼으로써 그 집에 놔두고 온 모든 짐에서 돈 되는 물건들은 도둑맞고, 생활에 없으면 불편할 물건들과 아이들의 책들과 몇몇 장난감들만 건져 왔었다. 그렇게 가져오기를 기다리며 보낸 열흘 동안 우리는 포르투갈에서 가져온 짐들 또한 풀 수가 없어서 친구네 집에 짐 가방들을 모두 맡겨두고 작은 캐리어 가방 2개만 가지고 지내며 기다렸었다. 그렇게 지내며 느낀 것은 그렇게도 꾸역꾸역 이탈리아에 쟁겨두었던 물건들도, 없다고 해서 못 사는 건 아니구나,,, 포르투갈에서부터 가져온 여러 가지 짐들이 없어도 이렇게 충분히 살아갈 수 있구나,,,,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우리 가족은 마음만 먹으면 배낭 2개에 옷가지들을 챙기고도 몇 달은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5년 반을 살아온 이탈리아의 짐들을 정리하고 떠나려니, 구하기 힘든 한국 책들과 이제부터 구하려면 좀 불편해질 이탈리안 책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서, 물려준 둘째 딸을 위한 옷들도 안 챙길 수가 없었고, 엄마가 물려주신 32년 된 한국, 일본 찻잔 세트들, 사진 앨범들, 플라멩코 의상과 사진 작업, 그림 작업 등의 포트폴리오들, 은행 계좌나 중요한 서류들.... 버리고 갈 수 없는 것들이 먼저 짐 가방으로 들어갔다. 


우리 트란스포머 그린 벤을 그리고 있는 만 3살이던 첫째 아들, Zahara de los atunes, Cadiz, Spain


우리 트란스포머 그린 벤을 너무 믿고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정작 떠나기 전날 밤 짐들을 넣는데 짐이 가득 차서 뒷 유리창이 안 보일 정도가 되자, 남편이 경악을 했다. 마지막 순간에 좀 빼보기도 했지만 우리의 낡은 그린 벤이 무사히 포르투갈까지 갈 수 있을지 3일간 조마조마했었다. 남편이 혹시라도 차가 멈춰 버리면 중요 서류들이 들어있는 가방만 꺼내고 그냥 다 버리고 갈 것이라고 진심으로 어름장을 펴놨기 때문이다. 그 3일 동안 마음이 조마조마하기도 하고, 진정 무소유란 개념을 실천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실감했었다. 아이 둘과 편하게 비행기로 떠나면서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음부터 어디 갈 때에는 작은 가방 2개에 다 넣을게! 용서해줘!”라고 문자를 보냈었었다. 그런데 참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고, 남편이 그린 벤과 함께 무사히 포르투갈에 도착하자, 마지막 순간에 놔두고 온 물건들 중 몇 가지가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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