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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Mar 29. 2019

유럽의 꽃 청춘들에게 사로잡히다!

#007 일곱 번째 이야기

바다 뒤로 모래 언덕들이 형성되어 사막과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Almograve, Alentejo, Portugal


우리 가족들의 바다로 가기 위한 산책길은, 모래 언덕들(Dunas)과 풀과 꽃들이 있는 곳으로 첫째 아들 율이  무작정 올라가면서 루트가 달라졌다. 우리는 바다를 등지고 점점 더 높은 모래 언덕을 오르고 내리고. 엉덩이로 미끄럼 타고 내려가거나 데굴데굴 굴러서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남편이나 나나 아이들과 같은 마음으로 초자연이 주는 새로운 감각을 만끽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우리 가족들은 날뛰는 개처럼 그렇게 뛰어놀았다. 


아찔한 모래 경사에서 미끄럼틀처럼 미끄러져 내리고, 굴러 내려가고, 뛰어내리고, 점프하며 끝장보게 노는 아이들. Almograve, Alentejo, Portugal


이처럼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계획해놓은 대로 가지 않고 딴 길로 세는 수가 있다. 아무리 시간을 내서 공들여서 쌓아 올린들, 지금 현재 나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소용 있겠는가? 우리는 어릴 적부터 너무 많이 참고 인내하라고 배우며 살았다. 그러면 나중에 다 괜찮아질 거라고. 인내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그래서 꽃처럼 활짝 피어나는 십대라는 꽃 같은 나이를  하늘을 올려다볼 시간도 없이 학원이며 독서실에 처박혀서 보냈다. 그렇게 참아내서 대학에 가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듯이. 모든 청춘을 담보로 내어주고 들어가게 된 대학에서의 주체할 수 없고 책임지기 어려울만치 넘치는 자유를 우리는 방탕과 맞바꿔 썼으며, 졸업하기도 전에 이미 돈 벌 곳을 찾기 위해 또다시 그 귀한 자유를 미래 보증금과 맞바꿨다. 나는 원체 성격이 남을 부러워하기보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나에게 집중하는 성격인지라, 누구를 특별히 많이 부러워하거나, 배 아파하거나, 내 처지를 한탄하며 살아가지는 않았었다. 나름의 내 정의대로 내 의지와 나의 열정에 집중해서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가는데 바빴으니까. 


"I'M A FUCKING PRINCESS"


그런 내가 유럽에 살면서 바라보는 청소년들을 보며 그렇게 부럽고 이뻐 보일 수가 없다. 물론 유럽 안에서도 우리가 부러워하는 북유럽의 환상적인 교육 여건들이나 남유럽의 느리게 가는 흐름에도 불구하고, 각 나라마다 안고 있는 문제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유럽에는 방과 후에 가는 학원이나 독서실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중, 고등학교 아이들은 보통 오후 1시에서 늦어도 2시 30분 전에는 모든 수업들이 끝난다. 그렇다면 그 이후 이들은 어디로 갈까? 각자 친구들과 모여 숙제도 하고, 도서관에도 가고, 원하는 악기를 배우러 간다든가, 춤을 배우거나, 스포츠 등 나름의 취미 생활들을 즐긴다. 


방과 후면 매일같이 진지하게 춤을 추는 Sahra (오른쪽 끝), Milan, Italy
Earth day에 부모님들과 친구들과 함께 뜻을 모아 집회에 나온 Sofia (오른쪽 사진에서 왼쪽 끝) Duomo, Milan, Italy


내가 다니던 시절처럼 머리카락이 귀 밑으로 5센티미터 이상인지, 교복 치마 길이가 무릎 위로 올라가진 않는지 단속하는 무서운 선생님들이 교문에서 기다리지도 않고, 자신을 한껏 표현하거나 발견해나가야 할 나이에 획일적으로 입혀버리는 유니폼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부모님 허락하에 타투, 피어싱, 머리 염색을 하며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밟아간다. 이런 황금 같은 조건들이 너무도 당연한 권리로 인정받고 있는 이들 사회 속에 살아가는 이 청춘남녀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입가에 미소가 뗘지고 부러워서 못 견뎌지며, 나의 선택의 여지조차 있는 줄 모르고 무지하게 살아온 갑갑하고 지옥 같던 나의 십 대에 가슴속 깊이부터 끓어오르는 분노와 슬픔, 연민들로 내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금발로 머리 염색하고 피어싱에 타투를 했다고 해서 공부를 안 하고 반항하는 문제아일까? 유럽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Hey! It's the Party Time! 
친구들과 함께 여행 중인 Lisa. 이때 그녀의 나이는 만 15세

만약 내게도 이러한 기회들이 있었다면, 저 멀리 다른 세계에는 나처럼 갑갑하게 살아가지 않고도 충분히 즐겁게 공부할 수 있고, 굳이 대학을 가는 게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보여주는 사회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 어쩌면 또 다른 20대를 보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설프(surf)타기에 미쳐서 온종일 바다에서 살아갔을지도 모르고, 이집트 유물을 찾거나 연구하기 위해서 사막을 하염없이 뒤지고 다녔을지도 모르며, 은근히 해보고 싶었지만 용기를 내지 못했던 뮤지컬에 도전해보았을지도 모른다. 마냥 어릴 적부터 그림과 만화를 유독 잘 그리고 좋아하니까 그냥 곰처럼 한 길만 가다가 느지막이 플라멩코 춤을 추면서 몇몇 스페인 현지의 스승들에게 재능이 있다는 진심 어린 말을 들었을 때에는 한쪽 가슴으론 정말 뿌듯하고 기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른이 되어서 이렇게 뒤늦게 알게 된 재능은 사람을 더 아프게 했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꿈꾼다. 최소한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 세상은 다 그렇다거나, 참고 견뎌 내야지만 한다던가, 견뎌 내면 나중에 모두 보답받을 거라던가, 이 경쟁의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남을 짓밟고 일어나야지만 된다던가, 이런 달콤하면서도 잔인한 거짓말들로 나의 아이들을 세상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과 틀에 맞추어서 살아가라고 얘기하고 싶지 않다. 나의 아이들이 세상이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관례나 고정관념, 전통이란 이름으로 만들어진 낡은 감옥들에서부터 자유롭기를. 자주적으로 생각하고 어떤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자신의 눈으로 독립적으로 필터 없이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기를. 그리고 엄마처럼 아파했던 상처 받은 많은 영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기를.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하루를 채워간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순간순간 빨리도 자라 버리는 내 아이들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것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공유한다. 즐거운 산책을 하고, 바닷가나 숲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함께 춤도 추고,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읽고, 일기를 쓰고, 드로잉을 하며, 남편 레스토랑에 필요한 로고 디자인부터 인테리어, 드로잉 작업등을 제작한다. 시간이 허락하면 명상과 요가도 한다.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엄마가 행복한 게 아이들에게도 느껴진다. 아이들에게 일부러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함으로써 아이들과 내가 서로 닮아져 가는 것이다. 시간을 돌려 내 청춘을 돌릴 수는 없지만, 지금 현재 내가 행복하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지 나 자신에게 물어볼 수는 있다. 지금 현재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것.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게 하는 일을 하는 것. 이것이 내가 이 아이들에게, 그리고 유럽의 꽃 청춘들에게서 배운 것이다. 


꽃처럼 빛나는 만 15세 발랄 소녀 Lisa (맨 왼쪽)와 그녀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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