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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Jul 02. 2019

왜 내 아들은 학교를 가지 않는가

#014 열네 번째 이야기

첫째 아이가 만 6세가 되자, 주변에서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이제 학교 가겠네요?"라는 질문 아닌 결론적인 멘트를 건네곤 했다. 유럽에서는 보통 만 6세가 되면 학교에 들어간다. 물론 이 질문이란 모르는 사람끼리 친해지기 위해서 공통의 소재거리를 찾기 위해서라든가,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한 첫마디에 불과한 것이기는 하다. 보통 예전에 남자들끼리 “담배 피우세요”라는 말로 말을 트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가볍게 건네는 말일진대, 내게는 그닥 가볍게 대답하기에는 조금 조심스러운 질문이기도 하다.


처음 대면하는 이들에게 저희는 “홈스쿨링 Home schooling, 언스쿨링 Unschooling, 월드 스쿨링 World schooling(세계 곳곳을 여행 다니면서, 혹은 살아가면서 살아있는 현장에서 배우며 성장하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고 얘기하기엔 너무도 당돌하거나, 무언의 비판적인 멘트가 될까 봐 조금은 조심스러웠다. 특히, 질문을 한 상대방이 자녀를 가지고 있고, 더욱이, 이 자녀가 학교를 다니고 있을 경우에 더욱더 조심스러워진다. 이탈리아에서 이미 학교를 다니고 있는 자녀들을 가진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면 언스쿨링 Unschooling에 대한 우리의 결정을 얘기할 때, 조금 조심스럽기는 하더라도, 이미 우리가 밟아가고 있는 대안적 교육 방식과 대안적 삶의 형태를 오랫동안 바라보았기에 수긍하며 별말 안 하는 친구들도 있고, 자신이 도저히 할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는 우리를 마음속으로 응원해 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포르투갈로 옮겨왔을 당시, 이제 포르투갈에서 지낼 거라는 이야기 끝에 항상 이어지는 “학교”에 대한 레퍼토리는 여기저기에서 많이 듣게 되었었다. 굳이 다른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주눅 들게 하거나 언짢게 할 생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언스쿨링 Unschooling을 할 것이라는 대답은 언스쿨링 Unschooling을 하지 않는 대다수의 부모들에게 알게 모르게 불편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아직 잘 모르는 초면에는 약간은 얼버 부리며,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생각해 보고 있다고,,,,이 정도로 대답하고 넘어가곤 했었다. 왜냐하면 이 사람과 다시 몇 번이나 대화를 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이보다 조금 더 안면이 튼 사람들에게는 이 언스쿨링 Unschooling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은 길게 풀어서 이야기해 주며, 단순한 공교육에 대한 불신 때문이 아닌, 우리 가족들의 삶의 선택의 일부분임을 분명히 얘기해서, 그들이 가질지도 모르는 이질감이나 죄책감들을 가볍게 해주었다. 왜냐하면, 내가 다른 이와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이를 비난받는 것도, 비판하는 것에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이에게는 자신의 처지와 나름의 삶의 철학이 있을 테니까.  


나스카라인에 관련된 책과 도큐멘터리를 본 뒤, 어느날 갑자기 미친듯이 커다란 그림을 그리더니, 하늘에서 본 것처럼 위에서 보고싶었다고 한다. 이 바닷가는 위에서 내려볼 수 있는구조


내가 언스쿨링 Unschooling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첫째 아이가 태어날 무렵부터 이어져 온 것이기에, 이미 6년 동안 생각하고 준비해 온 것이었다. 아이가 태어나 조금씩 자라나며 자신의 리듬과 자신의 시간대로 배우고 성장해 나가는 순간순간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이 모든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 아이가 자라나며 끊임없이 호기심 넘치는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걸어가는데 옆에서 함께 걸어가고 싶었다. 또한, 내가 받은 헛되고 보잘것없는 지식들을 버려 버리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새롭게 알아가는 세상은, 나로 하여금 배움의 참 맛을 알게 해 준다.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배워가고 함께 성장해가는 순간순간이, 나는 즐겁고, 가슴이 두근거리게 한다.


이탈리아 알파벳 "C"를 가지고 함께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을 만들며, 숫자를 세며 글자를 배워가는 과정과 그 결과물의 책과 인형인 개 "COCO"
율과 엄마가 함께 만들어내는 과정내내 옆에서 보던 만3살 가이아는 개 인형 "COCO"를 아주 좋아한다. 서당개 3년이면 글을 읊은다더니,,아무것도 안가르쳐줬는데,,,글자를 쓰다
예기치 못한 어느 순간, 어떤 글씨를 따라 쓰는 것도 아니고, 그냥 스스로 처음으로 써버리는 글자.


그럼 왜 우리 가족은 언스쿨링 Unschooling을 선택하였는가?  


태어나서 몇 개월에는 몸무게는 몇에 키는 얼마여야 하고, 몇 시에 모유를 먹여야 하며, 몇 시간씩 낮잠과 밤잠을 자야 하고, 몇 살에는 무엇을 배워야 하고, 무엇을 언제까지는 익혀서 알아햐 한다고,,,,대체 감히 누가 정하는 것일까? 비판적 사고 없이 우리가 받아들이는 엄청난 육아 정보들은 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컨트롤되며, 어떻게 검증된 것일까?  몇 살까지는 무엇을 배워야 하고, 이 나이에는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동기 없는 형식적인 커리큘럼에서 벗어나, 자기 고유의 리듬대로, 삶에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공간적, 시간적으로 열려있는 자유로운 형태에서 주도적으로 자신의 흥미를 따라서 삶을 알아가는 교육 형식을 우리는 추구한다. 자유로운 사고와 창의성, 독립되고 주도적인 배움이란 결국 자신이 좋아하고 흥미로워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책상 앞에 앉아서 배우는 지식적인 배움이 아닌, 자신의 발로 직접 뛰고, 손으로 직접 만들고, 여행을 통해 접하는 다양한 문화, 역사, 음식, 사람들을 통해서 직,간접적으로 만나지는 세상의 모든 이들이 자신의 마에스트로 Maestro, 스승이 될 수 있는 살아 숨 쉬는 뜨끈뜨끈한 배움을 열망한다.


스페인 바닷가 레스토랑의 Pizzaiolo(피자 만드는 사람)인 Fabio 삼촌을 따라 혼자서 자신이 먹을 피자를 만드는 율.
자연 머드팩을 하비Javi 삼촌과 함께 만드는 율,  Bolonia, Spain (스페인 남부의 바닷가)


예를 들어, 첫째인 율이는 숫자에 관심이 없어도 너무 없으셨다. 만 3살이 될 때까지 10까지 막힘없이 세는 날이 드물었다. 하긴 한국의 2가지 숫자를 세는 방식과 이탈리아식 숫자까지 합쳐서 3가지를 모두 알아야 했으니... 숫자에 관심도 없는 아이가 이 모든 걸 알아내기엔 뭔가 너무 많았다. 만 5살이 조금 안되었을 때에도 항상 숫자 10을 헷갈려하는 이 첫째 오빠에게 아무도 안 가르쳐 주었는데 그냥 숫자 10까지를 주르룩 읊던 만 21개월 된 여동생이 있었으니. 당당히 여동생이게 9 다음 막히면 부끄럼 없이 그 다음이 뭐냐 묻던 내 아들! 만 6세가 되던 어느 날 아침, 혼자서 숫자 관련된 도구들을 바닥에 주르르 널려 놓더니, 숫자판 놀이를 하고, 숫자 메카니즘을 이해한듯 숫자 30까지 막힘없이 주르르 읊어나갔다. 이에 리듬 맞추어 은근히 건네준 숫자놀이 책을 하루 종일 섬렵했다. 이렇게 아이들은 자기의 시간과 속도로 성장한다.


숫자에는 전혀 관심없던 율이 어느날 아침 숫자 교구들을 다 꺼내놓고 놀더니, 처음으로 숫자 30까지 세던 날, 가이아도 신나서 덩달아 숫자를 써본다.


또한, 나이의 제한을 두지 않고 모든 연령대의 아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지낼때 서로에게 주고받는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이들은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알게 모르게 채워주고, 서로가 가지지 않은 기질을 서로에게 주면서 함께 성장해 나간다. 큰 아이들은 작은 아이들을 돌보고 함께 놀면서도 자신의 힘과 능력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게되고, 작은 아이들은 자신보다 큰 아이들을 보며 자극받고 이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보며 많은 것들을 배운다. 학교란 곳에서는 자신과 같은 또래 나이의 아이들만을 접할 기회가 많은 반면, 언스쿨링 Unschooling의 장점은 나이의 장벽을 넘어서 누구든 친구, 스승이 될 수가 있다. 비록 그게 1살 반이거나 3살짜리 동생이거나 혹은 성인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율, 가이아, 마티스가 도서관에서 함께 책을 보는 장면(왼쪽), 해시계를 두고 그림자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왜 움직이는지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중앙), 요리하기(오른쪽)


예를 들어, 율이는 나이를 초월해서 나이가 자신보다 많거나 아주 적어도 그들이 좋아하는 놀이가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캐치해서 함께 노는 데에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숲 속 유치원을 다니던 4년 동안, 비록 일 년에 약 5개월 정도씩 밖에 함께하지 않았지만, 이 숲 속 유치원의 친구들 사이에서 율이의 존재감과 영향력은 엄청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갓난아기나 이제 막 걷기 시작하는 만 1살 반 정도 된 아기들에게 관심을 갖거나, 돌보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 말인즉슨, 동생인 가이아가 태어나서 만 1살 반이 되어 뛰어다니기 전까지는, 자신의 동생 조차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율이가 만 6세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런 율이가 겨우 한 살 반 밖에 안된 친구 아들인 마티스 Mathis를 챙기고 손까지 잡아주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정말 경이적이다. 도서관에서 함께 책을 보면서 설명해 주기도 하고, 자전거 타는 법을 보여 주거나, 바닷가에서 함께 공 놀이를 하거나, 수레에 태워서 밀어 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율이가 만 5살때 Yellow Storn National Park의 검은 늑대에 대한 도큐멘터리를 보고 자기 방식으로 풀어낸 그림책을 동생들과 함께 보고있다.
율이가 만 5살 때 Yellow Storn National Park의 검은 늑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자기 방식으로 풀어낸 그림책을 동생들과 함께 보고 있다.


이렇게 개인에서부터 성장해오는 호기심과 배움은 개인에서 끝나지는 게 아니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작은 사회 공동체로, 더 나아가 나라들, 지구 전체를 생각할 수 있게 된다. 한 예로, 첫째 아들 율이가 만 5살이 아직 안되었을 때였다. 우리와 한 가족처럼 지내는 친구 Chicca의 집에 저녁식사를 초대받았었다. Chicca의 이미 성인이 된 자녀들과 일찍 아이를 갖게 된 그녀의 딸의 아들까지, 우리는 대략 12명 정도였다. 대 인원을 감안해서 그녀가 내어놓은 일회용 플라스틱 접시를 보고, 율이가 얘기한다. "Chicca, 왜 플라스틱 접시가 있어? 이것은 지구를 아프게 해." 이 한마디에 Chicca는 많이 부끄러웠고, 다시는 일회용 플라스틱 접시를 구입하지 않게 되었으며, 이 일화를 여러 친구들에게 얘기하곤 한다고 한다. 또 한 예로는, 거의 매일같이 가는 바닷가를 갈 때면, 우리는 눈에 띄는 쓰레기들을 줒어담을 봉투를 하나 마련해간다. 또한, 길을 걸어가더라도 아주 조그마한 쓰레기를 보면, 만 3살이 조금 넘은 둘째 딸 가이아는 고사리처럼 작은 손으로 쓰레기들을 줒어서 나의 손에 쥐어준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매일같이 실천하는 행동이 세상을 변화시켜갈 것이라고 믿으면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글로벌 사회에서 우리처럼 홈스쿨링 Homeshooling, 언스쿨링 Unschooling, 월드 스쿨링 Worldschooling을 하는 가족들이 함께하는 커뮤니티들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찾을 수가 있다. 이들과 함께 교류하면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아이들의 교육 교구나 책들을 나누고,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 에너지를 전해준다.    


학교란,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여성들도 일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고, 이로써 더 많은 학교들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보니, 학교의 시간표는 직장을 가진 부모들의 보편적인 시간표를 따라갈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로써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학교라는 곳에서 보내게 되었다. 6개월만 일하고, 6개월을 쉬는 우리 가족에게 이런 학교의 시간표는 여러 가지 제약을 가지고 온다. 남편이 한창 일을 해야 하는 여름 시즌에 학교는 약 2개월가량 방학을 하고, 우리 가족이 온전히 함께 보낼 수 있는 가을에서부터 초 봄 사이에는 약간의 겨울 방학이 있을 뿐, 아이를 학교에 온종일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이와 같은 시간표는 몸에 걸맞지 않은 불편한 옷과도 같은 것이다. 언스쿨링 Unschooling을 선택함으로써, 우리 가족의 생활 패턴과 리듬에 따라, 가족 모두가 귀중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충실한 하루하루가 쌓이며 함께 배워가는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가족이 모두 함께하는 귀중한  6개월의 휴식과 여행


우리가 하는 작은 선택들 하나하나가 모여서 삶을 이룬다. 만약 내가 아이들을 돌보는 일 대신 밖에 나가 일하고, 나의 남편이 6개월이 아니라 1년 내내 일한다면, 우리들의 수입은 지금 수입의 2배는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진정 행복해지는 길일까? 무엇을 위해서 돈이란 걸 버는 걸까?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 더 많은 것들을 소비하기 위해서? 우리 가족은 함께 시간과 공간과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었고, 살아갈 환경을 바꾸었고(아직도 바뀌어지고 있고, 또한 바꿀 것이다.), 언스쿨링 Unschooling을 선택했다. 우리가 선택한 이 길이 언젠가는 사회 속에서 유별나거나 공교육과 대립되는 방편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닌, 다채로운 교육방식과 삶의 방식들 중에 하나로 자리 잡히는 미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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