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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Jul 29. 2019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015  열다섯 번째 이야기

다문화 가정 세계에서 자라게 되는 아이들이 갖는 자아 정체성이란, 나처럼 두 부모님이 모두 한 언어와 동일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가정과 동일한 사회에서 자란 것과는 전혀 다른 눈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유럽이 가진 여러 특징 중 하나로, 지리적으로 여러 나라들이 붙어있다 보니 유럽권 사람들끼리의 왕래가 쉽고, 이는 양쪽 부모가 다른 국적을 가지고 있거나, 여기에 덧붙여서 부모가 자란 나라가 아닌, 다른 곳에서 아이들이 태어나서 자라는 경우도 꽤 많이 볼 수가 있다. 그러다 보니, 이 아이들에겐 사물 하나도 여러 가지로 불려질 수 있다는 걸 그냥 알고 태어나고, 너와 나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외모적으로 보나, 언어적으로 봐도 확연하게 알고 있다. 모국어가 2개 이상인 이 아이들은 어떤 것은 엄마 언어로 생각하는 게 편하고, 다른 것은 아빠 언어로 자연히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친구들과 교류하는 언어에 따라 각기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스타일이 좀 다르다. 나의 아이들을 예로 들면, 친구들과 한국어로 이야기할 때와 이탈리아어로 이야기할 때, 스페인어로 이야기할 때, 나의 아이들은 각기 조금 다른 모습들을 보여준다. 쓰는 표현의 방식이 다르다 보니, 이로써 말하는 스타일 또한 달라지는 것 같다. 한국어로 할 때는 조금 더 차분하거나 예의 바른 것 같은데, 이탈리아어로 얘기할 때에는 조금 더 자유분방함과 유머러스함, 쾌활함이 돋보이고, 스페인어로 얘기할 때에는 아직은 조금 서투른 표현에 자기가 할 말은 정확히 하지만 말로 주구장창 설명하고도 남을 성격에, 이를 몸의 언어로 얘기하는 경우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아무리 부모들과 자연스럽게 부모의 언어로 대화를 나눌지언정,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국어를 자기가 편한 언어로 선택하기 마련인 것 같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형제나 자매들과 나누는 언어가 부모와 함께 나누는 언어와 다르기도 하다. 


세상 모든 곳이 집인 아이들, 율과 가이아, Armacao de pera, Algarve, Portugal


이 아이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여러 문화들이 들려주는 조언들을 들으면서 세상에 태어날 준비를 했다. 나의 첫째 아들 율이가 내 뱃속에 있을 때 우리는 스페인 Spain의 남부 도시 세비야 Sevilla에서 살고 있었다. 한국인 엄마에, 이탈리안 아빠가 스페인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한국과 이탈리안 가족들과 친구들의 조언들과 책과 정보들에 더불어, 스페인 의사의 조언과 임신 프로그램 교육을 받고, 스페인 지인들의 경험들을 공유함을 의미했다. 이렇게 사방팔방에서 모여지는 정보들은 어떨 때에는 같은 주제에 대해 전혀 상반되는 이야기를 하거나, 여기서는 허용하는 일이 다른 곳에서는 금기시되기도 했다. 이런 정보의 잉여 속에서 우리가 깨닫게 된 것은 우리 부모가 가슴속 깊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어쩌면 지금은 잃어버린 본능에 따라서 올바른 판단을 하고 배워가며 정보를 걸러내는 것이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문화적, 전통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무엇이 진정 나와 나의 가족, 사회 공동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인지를 자문해 보았다.


예를 들어, 한국에선 절대 허용치 않는 술과 커피가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선, 하루에 한잔 정도는 괜찮다고, 이런 것으로 임산부가 스트레스받느니 차라리 하루에 한잔 정도는 하는 게 낫다고 허용한다. 여러 나라에서 금기시하는 생고기에 대해서 스페인에서 임산부가 하몽 Jamong을 먹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어려서부터 먹어왔기 때문에 면역력의 부분에 있어서도 강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아이를 낳고 나서 산후조리를 하기 위해 남편과 떨어져서 산후조리원에 가는 문화는 세상에 한국만이 존재하며, 산후조리를 위해 가족의 도움을 받기 위해 가족에게 가는 남미나 아프리카의 문화가 존재한다. 산후조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북미 문화나 유럽의 문화들은, 산모가 아이를 낳자마자 샤워를 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며, 제왕 절계 수술을 하지 않는 이상 이틀 정도면 병원에서 퇴원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 일상생활로 돌아간다. 


또한, 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할 무렵 스페인 소아과 의사의 자기 문화 우월 주위 의식에서 나온 오만한 언급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보통 스페인에서 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할 때에는 옥수수 가루나 감자를 으깬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한국의 문화에서 대부분이 우리의 기본 주식이 쌀인 만큼, 쌀을 갈아서 만든 이유식을 기본으로 야채들을 하나씩 첨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설명하며, 괜찮은지 살짝 의견을 물어보았었다. 하지만 스페인에서 자라서 자기 나라의 문화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 오만한 소아과 의사님께서는 나에게 "당신은 한국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스페인에 살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나의 문화를 깔아뭉개버렸다. 나의 썩어가는 얼굴을 바라보며 나의 남편은 대충대충 그와의 진료시간을 서둘러 마쳤다. 그러고서 나오자마자 나에게 해준 한마디는,


 " 저 의사가 뭐라고 그러든 말든, 자기가 생각하기에 최고라 생각되는 대로 해나가. 쌀로 먼저 시작하든 감자로 시작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가 세상의 음식들을 조금씩 알아가는 첫 단계라고 생각하면 돼. 자신의 이론과 문화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남의 문화를 깔 아뭉게는 저런 속좁고 생각 없는 의사랑은 더 이상 볼 필요 없을 거 같아."


내가 한마디도 하기 전에 나 대신 이렇게 먼저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나의 남편이 고마웠다. 아니면 내 입만 드럽게 만들었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틀 속에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려고들 한다. 그리고 어떤 공통점을 굳이 찾기 위해 애쓰곤 한다. 하지만, 진정 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게 감히, 그 사람의 출신, 가족력, 학력, 직업, 취미들 따위로 그려질 수 있을까?



오래전에 본 일본 영화 "GO"가 생각이 난다. 조총련계 재일 동포 출신으로 일본에서 태어난 청년의 이야기로, 부모님이 하와이로 여행 가기 위해서 기꺼이, 어이없이, 너무나도 쉽게 국적을 홀랑 한국으로 바꿔 버리는 그냥 웃어 넘기기엔 아주 진지한 이야기. 이렇게 코믹스럽게 그려지는 그의 아버지는 예전에 꽤 잘 나가던 권투 선수로, 권투를 비유해서 삶을 이야기해주는 장면이 있었다. 세상을 향해서 주먹을 뻗었을 때, 이 주먹을 한 바퀴 돌렸을 때 그려지는 원의 크기가 안정적인 나의 세상이라고, 하지만 한 발짝 발을 뻗어 주먹을 날렸을 땐 이미 나의 안전지대에서 벗어나서 모험을 하는 것이고, 이로써 밖에서 여러 펀치들이 날아올 것이라고. 맞아도 아프고, 때려도 아픈 것,,,,그것이 삶이라고,,,,마지막 즈음에 목에 핏발을 세우며 몸서리치며 주인공이 얘기한 말을 그대로 담아본다. 


난 무슨 사람이지!

난 무슨 사람이냐고! 

뭐냐고!

대답해! 난 누구지!

......

재일 한국인

.....

그렇게 함부로 "재일" 소리를 하지!

그 뜻은 언젠가 이 나라를 떠날 사람! 즉 외지인이란 뜻이야!

난 너희 일본 놈들 죄다 죽여버리고 싶어!

우리가 두렵지? 이름 붙여 차별하지 않으면 불안해 미치겠지?!

오기만 해 봐... 동맥을 콱 물어뜯어 죽일 거야...

마음대로 불러봐! 살모사, 전갈, 외계인, 다 좋아....

그렇지만 난 인정 못해! 난 재일 외국인도 외계인도 아냐!

난 나라구! 아니, 나 조차도 버리겠어... 정체불명이라고! 물음표야, 수수께끼야! 어때? 오싹하지?!

왜 가만있어? 젠장,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그래서 어쩌라고, 제기랄!


내 나라에 살 때에도, 남의 나라에서 사는 지금도 언제나 나는 이방인이었고, 이방인이다. 그런 내게 이 영화가 주는 의미는 정말 컸었다. 무언가 남과 다르다는 게 비판받을 일이거나, 숨겨야 한다던가, 얕잡아 보일 필요가 없는데, 그냥 나는 나일뿐인데, 무언가로 명명되는 그 순간, 진실은 신기루 마냥 사라지고 만다. 그렇게 나 또한 무언가의 이름 뒤로 사라지곤 했었다. 


"이름이란 뭐지? 장미라 부르는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그 향기는 변함이 없는 것인데".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중


이 영화의 첫 장면에서 나왔던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중의 한 글귀였다. 


영화 "GO"에서의 한 장면


며칠 전, 내 아들에게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나는 조금은 이탈리아 사람, 조금은 한국 사람, 조금은 스페인 사람이야. 왜냐하면, 엄마는 한국 사람이고, 아빠는 이탈리아 사람이고, 나는 세비야, 스페인에서 태어났으니까." 


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포르투갈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느 나라 사람인지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세상을 꿈꾼다. 대체, 나라라는 경계는 감히 누가 만들었으며, 국경을 넘어가서 살기 위해 여권, 비자나 허가증이라는 카드나 종이 쪼가리가 없이는 쉽게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한 것은 대체 누구인가!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것인가! 언젠가 나의 아이들이 성장해서 스스로 살기 위해서 떠나는 나라는 또 어떤 나라들일까? 그때에는 부디 이 아이들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가 정말 중요치 않은, 국경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서로가 다름을 존중해주며, 서로를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줄 수 있는, 그런 미래를 나는 꿈 꾼다. 


유럽의 땅 끝인 Sagre, Algarve, Portug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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