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 열여섯 번째 이야기
작년 연말에는 시끌벅적한 여러 파티들을 피해서 포르투갈의 남쪽 바닷가 집에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이했었던 것에 반해("포르투갈, 첫 발을 들여놓자마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참고 https://brunch.co.kr/@anachoi/28), 올해 연말에는 따스한 포르투갈 남쪽 바닷가 집을 떠나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는 이탈리아 밀라노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리는 이렇게 자신이 있는 곳에서 무언가 떠날 이유를 달아 여행가방을 챙기는 것 같다.
언제나 첫째 아들 율은 이탈리아에 돌아가는 것 (이탈리아로 떠나는 것?)을 열광한다. 가장 큰 이유로는 4년간 함께해온 숲 속 유치원을 함께 했었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그곳에 가면 자신처럼 이탈리아어를 쓰는 사람들로 주변이 가득 채워진다는 것이다. 낯선 사람들에게도 말 거는걸 마다치 않는 이 아이의 성격에, 스페인 말도 아닌(스페인어는 좀 한다.) 포르투갈어나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많은 포르투갈의 남부 바닷가 관광지에서 지내다가 이탈리아에 가게 되니, 어련하겠는가! 이런 아들과 가족들과 모두 함께 이번 크리스마스와 연말, 새해를 이탈리아에서 보내면서 예상치 못한 말을 듣게 되었다. 아들이 "Armacao de Pera에 노스탤지어, 향수병에 걸렸다"는게 아닌가! 그것도 가장 좋아하는 친구인 Gio네 집에서 3박 4일 동안 지내는 기간에 말이다! 믿을 수가 없어서 제차 물었다. "아들, Armacao de Pera가 그리워?" 돌아오는 대답이 "응, 내 장난감도, 방도 그립고, 바다도 그리워." 아들의 대답에 묘하게 안심과 흥분이 교차했다. 그렇게 시간과 함께 이 아이에게 포르투갈의 집도 마음의 집으로 정착이 되기 시작하는가 보다.
우리는 세계 어디를 가도 너의 집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하곤 한다. 가족 모두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스페인이든, 이탈리아든, 포르투갈이든, 심지어 우리가 애장 하는 "트란스 포머 그린 벤"이든("트란스 포머 그린 벤" 참조 https://brunch.co.kr/@anachoi/45), 그곳이 우리의 집인 것이다.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참조 https://brunch.co.kr/@anachoi/67) 이렇게 기억 속의 집, 마음의 집에 대한 생각은 자연스레 내가 좋아하는 이탈리안 가수인 Daniele Silvestri의 "La mia casa (나의 집)"를 떠올리게 하였다. 이 곡은 최근에 내놓은 노래로, 집이란 소재를 메타포로 삼아, 인종차별 비판과 평화주의를, 여행자가 세상 여기저기를 머무른 그 모든 곳들 속에 마음의 집을 만들어 놓듯이, 이를 크게 보았을 때, 세상 모든 곳이 우리 모두의 집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리스본, 마라케시, 베를린, 런던, 로마, 파리 등 자신이 길게 혹은 짧게 머물렀던 집들을 물리적, 심층적 의미에서 풀어서 부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kP-zk9sqfGc
3년 반 전 크게 발목을 다친 사고 이후로 더 이상 스케이트를 탈 엄두를 내지 못하였었다. ("플라멩코에 미쳤던 여자" 참고 https://brunch.co.kr/@anachoi/1) 처음 스케이트를 타보는 둘째 딸인 가이아의 손을 잡아주고 싶어서 포르투갈에서 열흘 전 처음으로 시도해보았으나, 초보처럼 보조 썰매의 손잡이에서 손 조차 떼지도 못하고 후들후들 떨었었다. 그렇기에 이번 이탈리아에서 2번째로 스케이트 타는 것을 시도해보는 둘째 딸의 손을 잡아주지도 못하고 나는 링크장 밖에서 속절없이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는 고작 초보로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을 위한 펭귄이나 동물 모양의 보조 썰매 위에 앉아서 큰 친구들이 밀어주는 데로, 말 그대로 "썰매를 탄 것"에 불과했었다. 그런 가이아가 보조 썰매에서 일어나 보조 썰매 손잡이를 잡고 자신보다 커다란 곰돌이를 힘겹게 밀기 시작했다. 미끄러운 얼음판 위를 위태롭게 서서 조금씩 조금씩 발을 떼었다. 그러다가 엉덩방아를 찧고, 뒤뚱뒤뚱, 허우적거리는 이 아이를 나는 그냥 바라보며 힘을 불어넣어주고, 응원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수없이 넘어지니 포기하겠거니 싶었건만, (이미 첫째 아들 율이는 곧잘 요령을 터득해서 잘 타나 싶었으나, 이내 싫증이 났는지 30분 정도 지나자 이미 스케이트를 홀랑 벗어던졌다.) 자신을 지탱하던 곰돌이를 버려버렸다. 꽤 위태위태하게 서 있는 이 아이에게 "정말 필요 없겠냐"는 나의 질문에, 아이는 흔들림 없이 무언가 굳은 결심을 한 마냥, "싫어! 안 쓸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홀로 아이스 링크장에 섰다. 내가 있는 곳을 기점으로 50cm 정도 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그다음에는 1m 정도 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2m, 3m, 5m,,,,,이렇게 가이아는 자신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갔다. 그리고 어김없이 나에게로 돌아왔다.
가이아가 점점 멀어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이 경이적인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렇게 이 아이는 나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헤쳐나가는구나!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서고, 아프면 조금 울다가 그치고 다시 도전하고, 그렇게 삶을 배워나가는구나.
부모란 이렇게 아이스링크 밖에서 이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을 그저 믿고 바라봐 주고, 기다려주고, 간간히 쉬러 왔다가 다시 에너지를 얻어 또다시 떠나는 것을 그저 바라보겠구나.
그렇게 이 아이에게 나는 세상에 새겨질 여러 집들 중에 하나가 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 심장이 두근거리고 설레었다.
이렇게 우리는 누군가에게 "집"이 되어지기도 하고, "나그네"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