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 열일곱 번째 이야기
1990년대 영국의 젊은 작가들 그룹인 YBA(Young British Artists)의 멤버였던 트레이시 에민 Tracy Emin은 1997년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 1963-1995 (Everyone I have ever sleep with 1963-1995)"이란 작품을 선보였었다. 그녀의 작품은 텐트 속 안에 그녀가 태어나서 1995년까지 함께 "잔" 사람들의 이름들이 바느질되어있는 것이었다. 이 작업의 제목만 읽었을 때에는 섣불리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102명이나 되는 무수한 이름들이 수놓아져 있기에, "아니, 대체 이 여자는 몇 명이나 되는 남자(혹은 여자?)랑 잠을 잔 거야? 섹스를 한 거야?"라고 되물을 수도 일을 테니까. 하지만 자세히 그녀가 바느질 해 놓은 이름들을 보면, 그녀의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들, 친구들, 연인들과 비록 태어나지 못하고 유산 및 낙태한 아이의 이름까지도 새겨져 있다. 말인즉슨, 그녀와 말 그대로 "잠을 잔" 사람들을 얘기하는 것이다. 불륜 관계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에민 Emin은 어머니의 애인들에게 수차례 성학대를 받았고, 13살에 강간을 당한 후 집을 나와 방황하며 술, 담배, 약, 우울증과 자살기도로까지 이어졌었다. 그런 그녀의 깊은 상처를 예술로 담담히 담아낸 그녀의 작품은 "잔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나는 어릴 적에 밤에 혼자 쉽게 잠을 자지 못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몰라도 부모님과 방을 따로 썼었다. 등불이 꺼진 어두운 방 속에서 유일하게 부여잡을 수 있었던 것은 도널드 인형뿐이었다. 몸집이 작았을 때에는 가슴 가득 차게 껴안을 수 있었던 그 인형을 나는 무려 10년 가까이 침대 켠에 두었었다. 이 도널드 인형이 내겐 유일한 동반자였다. 혼자 잠이 든다는 것이 어릴 적에 얼마나 무서웠는지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래서일까? 현재 우리 가족들은 모두가 한 방에서 함께 잠을 잔다. 보통 서양 사람들이면 아이들과 함께 자는 문화가 익숙지 않다. 이들은 보통 아기가 태어나면 한 침대에서 자다 아기를 짓누르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는다. 그렇기에 한 방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침대 옆에 아기의 침대를 따로 장만해서 부부 침대 옆에 붙여 놓는다. 흥미롭게도 이들의 아기에 대한 육아법은 10년에 한 번씩 유행이 바뀌어졌다.
1950년대 영국에서는 엄격한 일과표에 따라 정해진 시간에 먹이고 재우는 육아법으로, 아기들을 따로 재우고, 밤에 아기들이 아무리 울어도 가서 안아주면 안 된다고 교육했었다. 아기들은 아주 영리하기 때문에 밤마다 운다고 가서 안아주면 버릇이 나빠진다는 것이었다. 울면 부모가 와준다는 것을 알아채고, 계속 밤마다 울 것이고, 이로써 부모들은 잠을 못 잘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부모가 밤에 잠을 설치지 않기 위해서(아기들을 위한 게 아닌) 아기들을 "수면 교육"을 시켰다. 며칠, 혹은 몇 주 이렇게 하다 보면, 아기들도 울고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들고, 결국 시간이 지나면 체념해 버린다고 주장했다.
1960년대에는 자율적인 육아법이 유행을 했었는데, 50년대의 육아법과는 대조적으로, 부모는 자신의 의지대로 아기를 기를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얘기했다. 부모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옳으니, 마음이 가는 대로 하기를 권유했다. 그럼으로써, 규칙이나 규율을 정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부모의 처지와 상황에 따라서 육아를 해나가는 것이 해답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대가족에서 소가족으로 변화하면서 육아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가운데에서 자신의 아기를 처음으로 품에 안은 현대 부모들에게는 백지장 육아서를 읽는 것과 비슷했다. 무언가 규칙이나 법칙이 없는 광범위한 육아 조언이었지만, 자유를 외치던 그 당시의 부모들에게는 더 많은 선택의 자유가 생겼고, 간혹은 이 자유가 방종이나 이기적인 선택이 되기도 하였다.
1970년대에는 지금 현재 많이 유행하고 있는 애착형 육아가 유행했었는데, 이는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 The Continuum Concept"의 저자인 진 리들로프 Jean Liedloff 가 남미의 원시부족 예콰이어족과 함께 지내면서 관찰하게 된 경험을 통해서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인간 본성을 찾아서 부모가 어떻게 아기를 키워야 할지를 얘기해 줬다. 그녀에 따르면, 갓 태어난 아기는 새로 나온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선 엄마의 뱃속에 있듯 안전함을 먼저 찾기에, 한시도 아기를 품에서 떼어내지 않을 것을 주장했다. 아주 갓 태어난 아기에게는 부모가 아닌 다른 누군가여도, 따스한 품에 안김으로써 바깥세상으로부터 안전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럼으로써, 예전에 한국 어머님들이 포대기에 아기를 업고 집안일을 하거나 밭일을 했듯이, 부모들이 아기를 아기띠로 두르고 일상생활을 계속하기를 권했다. 또한 이들은 아기와 함께 잠자는 것을 권하는데, 이는 1950년대 육아법을 지속해오던 문화에서는 가히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아기와 함께 잔다는 것이 주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 첫째 아들 율이는 나와 나의 남편 사이에서 3년을 보냈다.(둘째가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엄마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아이가 잠들 때면, 그 작디작은 발을 언제나 나의 배나 나의 다리에 얹어놓았고, 잠을 자면서도 나의 존재를 언제나 확인하려고 하였었다. 그리고 배가 고파서 들썩거리기 시작하면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아이가 먹는 동안에도 나는 잠이 들었었다. 깊은 숙면을 취하지는 못했더라도, 우유를 주기 위해서 아기를 들었다가 놨다가 한다던가, 이미 저 멀리서 배가 고파서 울고 있는 아기가 있는 방에 가기 위해서 안 떠지는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날 필요가 없었었다. 또한, 아기가 깊은 숙면을 취하면서 자는 규칙적인 숨소리는 내게 또 다른 안도감과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만 4살이 다 되어가는 둘째 딸 가이아는 율이처럼 잠을 자면서도 나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 온 몸을 사용한다. 이 아이는 엄마가 아무 데도 가지 못하게 하려는 듯, 팔베개를 해주지 않으면 안 되고, 자다가 깨어 엄마의 팔베개가 없으면, 엄마의 팔을 기어이 자신의 목 밑에 끼워 넣고서야 잠이 들곤 한다. 그러다가 내가 등이라도 돌리고 자면, 엉덩이와 등을 엄마와 착 붙여야 직성이 풀리고, 내가 조금 편하자고 옆으로 비켜서면 우리 둘 사이에 생긴 공간만큼 데구르르 굴러와서 다시 몸을 밀착시켜버린다. 가끔 한밤중에 일어나면 그 작디작은 팔로 나를 찾아 머리를 내 가슴에 기대고 금방 잠이 들어버리곤 한다.
남편과 단 둘이었을 때, 여행을 다니다 보면 가끔 여느 호텔에서는 더블 사이즈 침대가 아닌, 싱글 침대 2개를 붙인 침대가 마련되어 있을 때도 있었다. 북유럽 사람들이 꽤 많이 선호하는 형태이다. 독일 뮌헨에서 근 20년 동안 살고 있는 남편의 여동생 부부 또한 2개의 싱글 침대에 각자의 이불을 사용한다. 여느 이들은 이것이 각자가 숙면을 취하기에 아주 이상적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이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침대 형태이다. 일단, 감성적인 측면에서 너무 차갑다는 느낌이 든다. 각자 침대에서 잠을 잘 바에 왜 같은 방을 쓰는 거지? 그럴 거면 각방을 쓰지? 하는 의문이 든다. 더욱이, 나는 육체적으로 직접적인 접촉을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남편과도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서로가 꼭 껴안은 채로 잠이 드는 것이다. 그러다가 좀 불편하거나 자세를 바꾸고 싶으면 조금 떨어지지만 그래도 손이나 다리, 발가락 같은 부분이 서로 붙어 있는 경우가 보통이다. 또한, 싱글 침대들은 이들 사이에 홈이 있어서, 서로 붙어 있으면 꽤 불편하다. 싱글 이불 또한 서로가 함께 붙어서 자다 보면, 이불과 이불 사이로 둘 중 누군가의 다리가 밖으로 나와 추워진다. 그렇다고 해서 싱글 이불 하나로 둘이 덥고 자는 것도 시도해 보았으나 크기가 작아 누군가의 어깨나 등이 추워지는 유쾌하지 못한 일들이 생긴다.
이런 나와 남편이 함께 잠이 든다는 것은,
이 사람의 살내음을 맡으면서 자는 것을 의미하고,
그의 콧소리를 줄이기 위해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의미하고,
먼저 잠이 들어버리는 내게 그가 어김없이 뽀뽀를 해주고 껴안아 주는 것을 의미하고,
둘만의 내밀한 이야기를 조근조근 서로의 귓가에 속삭이는 것을 의미하며,
둘 중에 누군가가 악몽을 꾸었을 때 옆에서 꼭 껴안아주고 안심시켜 주는 것을 의미하며,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의 마음의 집이 되어줌을 의미하며,
서로가 서로를 껴안고 잠이 들었다가 서로의 육체를 어루만지고, 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눔을 의미한다.
아이들이 곧 만 7살과 4살이 되어가도록 우리는 같은 방에 킹사이즈 침대와 싱글 침대를 같은 높이에 맞추어서 함께 잠을 잔다. 자다가 악몽을 꾸고 일어나면 어김없이 이 아이들 옆에서 엄마, 아빠가 자리를 지켜준다. 어쩌다가 아파서 콜록거리거나 열이 있으면, 함께 잠을 자면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 바로 옆에서 세세히 챙겨준다.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주고 불을 끄고 나란히 누워서도 가끔은 조금 더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둘째 아이에 비해서 감정적인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는 첫째 아이가 처음으로 "죽음"이란 것을 실감하고 눈물을 흘렸을 때, 옆에서 손 잡아주고 꼭 껴안아 줄 수 있었다. 자다 보면 알 수 없이 두 아이의 자리가 바뀌어 있는 것을 보고 어이없이 웃기도 한다. 모유 수유가 끝나고서도 아이들에게는 좋은 향이 나서 함께 잠을 청하면 마음속 깊이부터 오는 안정감에 숙면을 취하게 된다. 솔직히, 이 두 아이들에게 안정감과 보호감을 내가 주는 것인지 받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어릴 적 잠들지 못하던 여러 밤들이. 혼자 잠이 든다는 것이 어릴 적에 얼마나 무서웠는지,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나의 남편과 아이들과 침대를 함께 나누고, 이불을 함께 나누며 뒤엉켜 자는 하루하루가 내게는 하나의 테라피일지도 모른다. 가슴속 깊은 상처들을 나의 가족들과 살아가면서 치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