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 열여덟 번째 이야기
친구들은 우리 가족을 모던족 집시라고들 부른다. 이탈리안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세비야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과 이탈리아에서 태어나자마자 열흘도 안되어 우리 가족의 트란스 포머 그린 벤에 몸이 실려 포르투갈로 온 둘째 딸.("트란스 포머 그린 벤" https://brunch.co.kr/@anachoi/45 참조) 우리 가족은 일 년에 보통 2-3 나라의 집에서 살아가며, 또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곤 했었다. 국적이나 전통문화나 인습에 얽매이기보다, 조금 더 나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의 트란스 포머 그린 벤처럼 트란스 포머 패밀리로 살아가고 있다. 어릴 적부터 여행이란 이 아이들에게 숨 쉬는 것마냥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리고 이 여행 속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진짜 세계와 마주한다.
우리는 여행가기 전부터 갈 곳의 지도들을 보는 것을 즐긴다. 또한, 가다가 지도만 보면 발을 멈추고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본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첫째 아이 율이는 해적선의 보물찾기 지도를 그리기 시작하더니, 요즈음은 자신이 상상하는 마을의 지도를 만드는 데까지 이어진다. 가끔 여행 중 작은 동네 식당의 테이블에 그 지역의 지도가 인쇄된 지도가 놓여 있으면 나와 우리 아이들은 신이 나서 그 위에 색다른 이야기들을 담기 시작한다.
만 7살인 첫째 아들 율이는 1년 전부터 유난히 군용 전투기나 무기들, 군함선, 탱크, 폭탄, 전쟁들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런 폭력적인 전쟁놀이에 왜 그토록 관심을 두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로서는 그냥 뒤에서 아이를 지켜보고, 열심히 책들을 뒤지며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어릴 적에 율이 마냥 자신도 이런 전쟁놀이들을 좋아했었다며 남편이 대신 아들과 전쟁놀이를 하거나 다큐멘터리 등을 함께 보아주었다. 물론 진짜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들을 초래하는지, 왜 이토록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잔인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아이의 속 안에서는 만화나 상상세계에서나 있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굉장한 군용 전투기나 군함, 최신 무기들에 끌리는 것이 어쩔 수 없나 보다. 끊임없이 그려지는 전쟁 이야기와 함께 발전해나가는 이 아이의 그림은 꽤 흥미진진했고, 나름 진지했다. 또한 내가 알 수도 조차 없는 세계 군용 전투기들의 이름들을 줄줄 읊었다. 그러다 보니, 나 또한 색안경을 끼고 이를 바라 보기보다, 진정 아이가 왜 그렇게, 무엇을 그토록 흥미로워 하는지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전쟁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이로써 옛날 전쟁에서 요새를 지키기 위해 고안된 고성들에 가보는 것은, 옛 전쟁의 흔적들을 직접 살펴보고, 그 현장에서 온갖 전쟁놀이들을 펼치며 진짜 세계와 환상의 세계의 교차점에 서게 됨을 의미한다. 옛 고성에 남겨진 대포들, 요새를 지키기 위해 고안된 작은 창들, 성을 에워싼 높은 성벽들, 성에 들어가기 위해 입구에 놓인 다리를 직적 건너며 책들과 다큐멘터리들에서 보아오던 성을 직접 가서 오감으로 느끼고 경험한 것들은 몇 년이 지나서도 아이의 기억 속에 뚜렷이 새겨진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유명한 Castelo del Monte는 꽤 어린 나이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성의 특이한 8각구조 덕분인지 아직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로마의 콜로세움을 보며 그 당시 공연이란 이름 아래 누가 누구와 여기서 싸우다 죽어갔으며, 이들의 무기들은 어떤 것들이었고, 노예란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한, 어린이용 로마시대의 갑옷과 헬멧, 검을 가지고 약 2천 년 전 로마인들이 가로지르며 다니던 곳들을 직접 발로 밟아가며,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듯 아이들은 환상의 세계 속에서 이미 기사가 되어 있었다. 콜로세움의 아치형 구조를 발명한 로마인들의 뛰어난 건축들과 이 건축물들이 남겨진 세계 여러 곳들의 분포들을 지도에서 보며 로마인들이 어디까지 발을 넓혀 갔었는지를 눈여겨보기도 했다. 만화책 Asterix e Obelix를 보면서 만나게 된 역사적 인물인 로마인의 황제였던 세사르와 군사들의 공격과 방어전략 등을 접하게 되었고, 그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 역사적인 장소에 함께 서보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서 한참 후에는 이 세사르의 군대를 구슬로 재현하고 그들의 방어 기술인 방패로 사방을 에워싸는 방식을 종이테이프로 재현해 보기도 했다. 한 순간에 온 마을이 화산재에 뒤덮여 버렸었던 나폴리의 폼페이는 너무 어릴 적에 가서 이해는 못해도, 나폴리의 폼페이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책, 여행 중에 찍었었던 폼페이에서의 사진들을 함께 들쳐보기도 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모든 옛 유물들을 발굴하는 고고학자들에 깊은 관심을 갖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평소 여행에서 아이들이 챙겨가는 물건들은 고고학자들의 가방 못지않다. 카메라, 수첩과 펜, 작은 망치, 돋보기, 줄, 망원경, 분류해서 넣을 통, 간식, 물통 등등,,, 숲이나 바다에 갈 때면 어김없이 챙겨서 가는 것들이다.
꽤 오래전부터 군함이나 낚싯배들을 그리기 시작하던 이 아이의 그림이 여행으로 인한 직접 경험으로 놀라우리만치 달라지는 것을 옆에서 보게된다. 남편이 새로운 레스토랑을 보기 위해 한 레스토랑 주인과의 약속을 잡아 2박 3일간 다른 곳 바닷가로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그 레스토랑 주인이 한때 어부였고, 몇십 년 동안 어부로 배를 타고 나가서 겪은 흥미진진한 모험과 자세한 배의 구조들에 대한 이야기를 돌아와서 남편은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에 감동과 자극을 받았는지 백지장 종이에 그 이야기를 담기 시작하였다. 그러고서 여행에서 돌아와선 도서관에선 옛날 배의 속 구조를 자세히 보여주는 그림 책을 빌려와 조그만 그림 하나하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5일 뒤에 떠난 10일간의 여행 속에서 우연히 예전에 배 병원으로 사용했던 배를 박물관으로 만들어 내부를 모두 공개한 배 속을 탐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커다란 배 속에 직접 발을 들여놓고, 눈으로 직접 본 그다음 날, 성격상 모든지 크게 크게 대충대충 슥슥 그리거나 생략해서 심플함을 자랑하던 율이의 스타일에서 벗어나, 팬 끝을 새워 배의 내부를 차분히 촘촘히 그려나가는 게 아닌가! 그 그림 속에는 여태 자신이 접한 모든 배에 대한 정보가 조합되어서 그려졌다.
유럽의 꽁무니에 위치한 포르투갈 남부 바닷가에 살고 있는 우리로썬 거대한 파도가 바다 저 멀리서부터 몰려와 부서지는 것을 자주 볼 수가 있다. 특히, 여기 포르투갈에는 Nazare라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약 30미터 높이의 파도가 일어나서 유명해진 곳이 리스본에서 북쪽으로 1시간가량 가면 나온다. 이곳에서 세계적인 Surfist들이 목숨을 걸고 그 높은 파도 위에서 surf를 타기 위해 모터보트를 타고 도전한다. 그 파도 위에서 surf를 하겠다는 이들도 그렇지만, 이들을 파도 위로 옮겨주거나 이들이 실패해서 그 어마어마한 파도 속 안에 잡아먹혔을 때 살리기 위해서 모토 배를 끌고 바다에 뛰어드는 이들을 보는것 모두가 말이 필요 없는 장관이다. 우리 가족들은 이 숨 막하게 높은 파도를 보기 위해 Nazare에서 며칠 머물었으나, 그런 파도가 언제나 있는 것은 아닌 법. 결국 잔잔한 파도만 마냥 쳐다보다 돌아왔었다. 하지만 대서양 쪽으로 나있는 서쪽을 끼고 있는 바닷가에 갈 때면, Nazare만큼 높지는 않아도 바로 내 얼굴에 부서지는 파도를 느끼며 거대한 대자연의 파도를 접할 수 있는 곳들이 많이 있다. 이런 곳에서는 자연스럽게 옆에서 surfist들이 surf 하는 모습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surfist 후예처럼 겁 없는 4살짜리 금발머리 둘째 딸은 surfist들을 보며 언젠가 자기도 surf를 할 것이라고 얘기하곤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p63NEdTbaCM
어쩌면 보통 만 1살 반에서 만 4살까지가 폭발적으로 동물들에 관심을 가지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둘째 딸 가이아가 처음으로 말과 사랑에 빠진 그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운이 좋게도 우리에겐 가족과도 같은 친구 Chicca에게는 Ucalisso라는 말이 있어서 가이아가 아기띠에 안겨있던 아기 시절에도 가끔 말을 보러 갔었었다. 그러다가 가이아가 만 1살 9개월이었을 때, 우리 가족은 우리들의 친구들과 아이들의 친구들을 만나러 벨기에에 갔었었다. 벨기에의 11월 말에는 예고 없는 폭설이 내렸고, 이렇게 하얗게 눈으로 온 세상이 뒤덮인 곳을 산책하다 우연히 갈색에 콧등이 하얀 말 한 마리와 마주치게 되었었다. 가이아는 그곳을 지나치지 못하고 이 말을 한참을 응시했었다. 그러고서 돌아온 이탈리아에서 아이들이 다녔었던 숲 속 유치원의 숲 속 루트 중 한 곳에는 마야 Maya라는 말이 산다. 그곳을 지나칠 때면 우리의 간식거리 중 하나인 사과를 주거나, 먹기 좋은 풀잎들을 꺾어서 마야 Maya의 입 근처에 가져다주곤 했었다. 마야 Maya에게 가기 위해선 무서운 개가 크게 짖어대는 담장이 있는 좁은 길을 지나가야 하는데도, 항상 가이아는 마야 Maya에게 들리길 원했다. 가끔 다른 그룹의 아이들이 다른 루트를 선택해도 굳이 혼자서라도 마야 Maya를 보고야 말아야 했었다. 이렇게 말과 가이아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연결의 끈이 이어졌다.
만 5살이 되어갈 즈음 율이는 우연히 숲 속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함께 읽은 그리스 로마 신화 중 미노타우로스 Minotauro 이야기를 계기로 신화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를 기점으로 우리는 6권이 넘는 약 350페이지가 넘는 책들을 섬렵하고, 북유럽 신화에까지 손을 뻗치게 되었었다. 이로써, 많은 명화들과 조각상들을 눈여겨보게 되었고, 그리스 로마 신화를 테마로 한 테이블 게임을 즐기고, 작년에는 신화의 본고장인 그리스로 여행을 떠났다. 신들이 산다는 올림프스 산을 멀리서 바라보고, 신화에 나오는 신들로 구성된 체스에 눈독을 들이기도 했다. 지도를 펼쳐놓고 신들이 산다던 올림프스 산이 어디 있으며, 아테네 여신의 신전이 있는 아테네는 어디에 있고, 트로이 전쟁이 일어난 곳은 어디였는지를 표시해 보기도 했다. 여행 중 장시간 자동차로 움직일 때에는 영화로도 상영을 했던 실화 이야기인 300을 오디오 북으로 들으면서 그리스인들의 정기를 오감으로 체감했다. 좁고도 높은 에피루스 다리를 직접 건너며 로마인들이 만든 역사적인 다리에 감탄을 한다. 이 다리 바로 옆에는 보통 요즈음 제작하는 현대식 콘크리트로 만든 다리가 놓여 있고, 자동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소리가 굉장히 났다. 이를 보며, 몇십 년밖에 안된 현대인이 만든 콘크리트 다리와 몇쳔년전에 돌로 만든 이 다리 사이의 간극을 느끼는 건 나만은 아니겠지? 싶었다. 아이들은 이 다리 밑으로 내려가 널려져 있는 이곳 특유의 납작한 바위들을 이용해서 탑을 쌓기 시작했다.
그리스에 있는 이 에피루스의 그리스 전통 다리에 가기 위해서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그냥 언듯 산책길 옆을 바라보는데, 큼직한 버섯들이 보이는 게 아닌가! 나의 이탈리안 시아버지는 버섯을 캐기 시작한 지 이미 65년 된 버섯 박사이시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나의 남편은 아버님만치는 아니어도 아는 버섯(먹을 수 있는 버섯)들만 집중적으로 쏙쏙 잘도 찾아낸다. 이탈리아에서라면 이미 사람들이 속속들이 다 뽑아갔겠건만, 이곳은 고개를 돌리는 데마다 버섯들이 보였고, 에피루스의 다리에 가는 것도 잊어버리고 우리 가족들은 한참을 버섯 캐는데 혈안이 되었었다. 아이들에게도 그닥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버섯들은 마치 보물 찾기를 하듯 흥분되고 신나는 일이었다. 더욱이 엄마, 아빠가 자기들보다도 더 흥분해있었으니.... B&B (Bed and Breakfast)에 묶고 있었던 우리는 영어로도 말이 안 통하는 주인 아주머니께 부탁해서 버섯을 검증받고, 그녀의 부엌에서 나의 이탈리안 셰프 남편이 간단한 버섯요리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 그날의 저녁식사 식탁에 우리가 가지고 온 버섯이 올라왔다. 우리 가족이 직접 손으로 손수 따온 버섯이었기에 더욱 특별한 식사였다.
올해 2월 중순에 우리 가족들은 북부 포르투갈을 여행 중, 브라가 Braga에서 며칠 머물었었다. 우연히 보게 된 거리 공연은 우리에게 새로운 자극과 즐거움, 활력을 안겨주었다. 그 당시 중국과 한국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심상치 않고, 이탈리아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가 서서히 제기되며 거리에 사람들이 다니는 것도 꺼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특히, 롬바르디아 지방) 그래서일까? 이곳 브라가 Braga에서 보여지는 평온함과 3달 내내 비가 내렸다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우리가 머물던 여행기간 동안에는 햇볕이 쨍쨍하고 사람들이 피크닉을 즐기고, 거리공연을 즐기는 게, 이게 문화적 충족이란 것일까. 역시 사람은 예술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감히 느끼게 해 주었다. 우연히 보게 된 거리 공연은 여러 젊은이들이 함께 전통 포르투갈 음악을 연주하며 노래와 춤을 선보였고, 이는 우리에게 새로운 자극과 즐거움, 활력을 안겨주었다. 특히, 춤을 추기 위해 태어난 마냥 이제 만 4살이 된 둘째 딸 가이아는 자신의 앞에서 펼쳐지는 모든 공연들을 온몸으로 흡입하는 것만 같았다.
또한, 며칠 전에는 캠핑족인 친구들 가족들과 만나기 위해 우리의 트란스 포머 그린 벤에 몸을 실었었다. 몇몇은 이미 안면이 트인 친구들이었고, 새롭게 만나지는 가족들도 있었다. 자고 일어나서 캠핑카 문만 열면 펼쳐지는 자연 속에서 한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아이들이 9명이나 모여졌다. 이 아이들은 어른들의 지시나 지나친 보호에서 벗어나 스스로 아이들끼리 놀이들을 만들어내고 문제가 생기면 서로가 논쟁하며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구축해나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한없이 각자가 자기 스스로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나간다. 친구들과 만나기 전날 다른 친구들이 텐트를 치고 부모님 없이(부모님들은 바로 옆의 캠핑카에서 자고) 아이들끼리 자는 것을 시도해 보았고, 몇몇은 그대로 텐트에서 잠을 청했고, 어떤 아이는 베개를 다시 들고 캠핑카 문을 두드렸다고 하는 말을 언지시 들었었다. 그것에 무언가 자극을 받았는지, 첫째 아들 율이는 집에 돌아와서 자기 방에서 혼자 자겠다고 선포를 했었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가 한 방에서 다 같이 함께 잠을 자고, 아이들이 언젠가 혼자 잘 준비가 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놀이방에 아이들을 위한 이층 침대가 말 그대로 놀이 침대로 쓰이고 있었다.) 몇 번이고 제차 진심이냐고 묻고 (첫째 아들은 둘째 딸보다 평소 겁이 많다.) 잠이 들 때까지 함께 있어주기로 했었다. 용감하게도 바로 옆에 안 있어도 되고, 밑에 침대에서 잠들 때까지 있어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아들은 혼자 이층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아이를 재우고 우리 침대방에 돌아온 나는 비어있는 아들의 침대를 바라보며 무언가 알 수 없는 묘한 상실감과 함께 아들에게서 아주 커다란 변화가 소리 없이 또 이루어지고 있음을 감지했다. 나는 이탈리안 남편 곁에 누워 숨죽이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율이가 자기 방에서 혼자 자게 될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어. 정말 멋진 일이긴 한데, 좀 슬퍼. 이제 우리랑 안 잔다고 생각하니까."
남편의 대답이,
"응, 나도 그래. 그래도 여행 다니거나 우리 집에 손님들이 와서 묶을 경우, 함께 잘 거니까 괜찮아."
남편의 대답이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비록 방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지만, 마음은 미쳐 준비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떤 여행은 아이들의 기억 속에 또렷이 아로새기듯 남기도하고, 어떤 여행은 곧바로 눈에 띄게 보이지는 않지만 아이들의 내면 깊숙이 작은 씨앗을 심어주는 여행들도 있다. 아이와 함께한 그 수많은 여행들 가운데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아이는 순간순간 진짜 세계와 자신의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아이의 방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길을 구축해 가는 것이다.
또한, 여행은 간혹 우리들을 시인으로 만든다. 만 4살 반인 아들 율이가 새벽 5시, 우리의 여행의 마지막 길에 침대로 만들어 놓은 우리 트란스 포머 그린 벤에 누워서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었었다.
엄마, 내 손이 나뭇가지가 되었어.
,,,,,아니, 엄마,,,, 얼음 돌이 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