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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Aug 04. 2019

영원한 이방인의 5번째, 3 나라 거주 허가증 따기

#015 열다섯 번째 이야기

며칠 뒤면 드디어 포르투갈 거주 허가증이 나온다. 약 4개월간의 불법체류를 면하고(서류 처리가 늦은 유럽에선 번번이 일어나는 일이다.) 당당하게 비행기 타고 다른 나라에 날아갈 수 있게 된다. 그래도 여태 근 10년간 3개국에서 밟아온 거주 허가증 절차 중에선 커다란 어려움 없이 거주 허가증이 내 손안에 들어올 수 있다고는 꿈에도 상상 못 해보았다.


약 10년 전 한 여름, 스페인에 처음 떨어졌을 때, 나는 문법만 2개월 한국에서 급히 배우고 온, 말도 못 하고, 다른 이들의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른바, 벙어리이자 난청이었다. 정신머리 똑바로 박히고, 사지 멀쩡한데도 불구하고, 현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말 못 한다는 것은 나라는 사람을 꽤 바닥에 깔아놓고 시작하게 만들었다.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하거나, 말을 못 알아듣기에 누구보다도 더 낮게 취급받기도 했다. 그냥 내가 그 나라 언어만 못할 뿐이지, 생각을 못한다거나, 능력이 떨어지는 게 아닌데도, 나라는 사람의 능력의 20프로 정도로 밖에 취급받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못 알아듣고, 오해해 버림으로써 쉽게 한 번에 할 수 있는 일도, 여러 번 반복하게 되었고, 모든 절차들이 길게 늘어지게 마련이었다.


스페인에 첫발을 내딛은 날, Madrid, Spain


이런 벙어리이자, 난청이인 상태로 세비야 Sevilla에서 거주 허가증을 받기 위해 준비된 모든 서류들을 가지고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섰다. 스페인 광장 Plaza de España에 도착한 시간은 6시 20분. 내 앞으로 이미 17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8시 30분을 기점으로 나누어주는 번호표는 딱 내 앞에서 끊어졌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받는다고,,,,내일 다시오란다!!! 그래서 그다음 날 새벽 6시에 도착한 나는 번호표 14번을 받아 겨우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었다. 말이 대기실이지, 화장실도 보이지 않고 의자라곤 10개 남짓이 있는 낡은 복도였다. 번호표를 받자 어떤 사람들은 잠깐 밖에 나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나처럼 엉덩이 붙이고 진득이 기다렸었다. 말도 잘 못 알아듣기에, 혹여나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봐 걱정도 되었고, 도저히 물어볼 자신도, 알아들을 자신도 없었다. 그렇게 기다리는데, 화장실조차도 안 보이는 그 복도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30분, 1시간, 2시간을 넘어가며 너무도 황당하고 어이없고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었다. 아직 유럽 남부의 천천히 흘러가는 행정처리에 익숙치 않고, 스페인 남부의 시에스타 Siesta 시간에 모든 업무가 정지되는 시스템이 무지 불편하게 느끼던 초반이었다. 한국에서였다면 이미 30분 이상 기다리는 것조차도 상상을 못하고, 관계 부서의 책임자를 불렀을 텐데,,, 하고 얼굴이 화끈거리면서도 말발이 안 되는 내가 너무도 무능하게 느껴졌고, 원망스럽고 짜증이 났었다. 기어코 기다리고 기다려서 서류를 넣고 바라본 시계는 오후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고작 서류 넣는데만 7시간을 화장실도 못하고 기다렸던 것이다. 그 뒤로 2-3달 뒤에 모든 서류가 오케이면 허가증에 들어갈 지문을 찍으러 가는 날짜를 받고, 최종적으로 거주 허가증을 받게 되는 것은 약 3달 정도 뒤였다. (이 정도면 꽤 짧게 걸렸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6개월은 걸렸다고 한다. 총 스페인 거주 기간이 6개월이었는데, 떠나갈 때가 다 되어서야 거주 허가증이 나왔으니,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그리하여 두 번째 거주 허가증을 다시 신청할 때에는 약 2개월 전에 미리 신청이 가능하다고 하여, 미리 신청하고 또 다시 1년짜리 학생 신분의 거주 허가증을 받았었다. 2번째 신청하는 거주 허가증은 "연장"이란 의미를 담기에 처음으로 신청했을 때보다 절차가 조금 더 간단했고, 사무실도 바뀌어서 모든 시스템들이 모던하게 바뀌고, 대기실의 좌석수가 100석 정도로 늘고, 화장실도 딸리고, 깔끔하고 채광 등도 꽤 밝은 좋은 환경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렇게 짧은 거주 허가증을 받을 때에는 만료일을 확인하며 씁쓸한 가슴을 끌어안는다. 내 손에 들어온 거주 허가증에서 이미 1달 이상이 이미 지나가 있기 때문이다.


3번째 거주 허가증은 지금의 남편과 결혼 신청을 하려다, 최소 6개월 이상은 걸린다고 하여서 이 보다는 좀 더 빨리 나온다는, 결혼과 같은 법적 권위를 갖는 Pareja de Hecho라는 것을 신청하였다. 모든 서류들과 함께, 우리 커플이 진짜 커플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커플 각자가 다른 공간에서 상대 커플의 신상조사에 대한 질문에 답을 적어야 했다. 지금의 나의 남편은 내 생년월일의 일자를 잘못 적었고, 나의 부모님의 이름을 전혀 몰라서 빈칸으로 남겼었다. 솔직히 부모님들을 이름이 아닌, 엄마, 아빠로 부르는 우리 문화로써, 그가 우리 부모님의 이름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 경우 또한, 그의 어머니가 그가 17세에 세상을 떠나셨기에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그냥 엄마라고 하지 이름을 들을 기회가 없었기에 주구장창 설명을 덧붙이며 그의 어머니 이름을 채워 넣지는 못했으며, 그의 아버지 또한 모든 이들이 닉네임으로 부르기에 그의 공식적인 실제 이름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엉터리 엉망징창의 상대 커플의 신상조사 테스트는 임신으로 불룩 나온 배 덕에 심사인들이 의심하기는 좀 힘들었을 것이다. (고맙다. 첫째 아들 율아!) 그렇게 신청하고, 약속 잡히는 데에도 이미 3개월은 족히 걸렸고, 그 이후로 서류가 진행되는 기간과 카드가 나오기까지 총 약 6개월 이상 걸렸었다. (결혼 신청을 하나, Pareja de Hecho을 하나 그게 그거였을거란 결론이 나왔었다.) 그럼으로써 나는 약 5개월간 불법체류자로 스페인에서 조용히 지냈다. 그래도 스페인에서의 Pareja de Hecho로 받은 거주 허가증은 유효기간이 5년짜리였다. 그럼으로써 5년 동안은 비록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에 왔다 갔다 하며 살아도 바꿀 필요 없이 서류상 스페인 거주인으로 살았다.


그렇게 편히 5년짜리 거주 허가증의 평온한 시절이 끝나갔다. 스페인 거주 허가증이 만료되기 전에 미리 이탈리아에서 다시 4번째 거주 허가증 신청을 시작했다. 스페인에서 신청했을 때와 달리, (스페인에서 그는 레스토랑의  요리사이자 주인이었다.) 이탈리아에서 남편은 실업자로 나오므로, (이탈리아에선, 해외에서 일한다고 할 경우, 세금을 2중, 3중으로 먹인다.) 직장을 가지고 있는 이탈리안 남편(세금을 어마어마하게 내는)을 가진 것과는 다르게 무지 불편하고 긴 절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당시에 이미 우리는 이탈리아에서 정식으로 법적으로 결혼한 상태였고, 우리 사이에 2명의 아이들이 있었으며, 이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이탈리아인으로 여권과 신분증이 발급되는데 반해, 정작 이 아이들을 낳은 외국인 엄마는 이탈리아에서 거주 허가증을 받는 데에도 많은 것들을 요구했다. 이들은 내 이름의 통장에 5000유로 이상이 들어있는 통장 내역을 요구했었고, 1년짜리 보험 서류를 요구했으며, 남편 이름으로 10000유로 이상이 들어있는 통장 내역이 있으면 일처리가 더 쉽다고 했다. 즉, 돈이 없으면 유럽인이 아닌 외국인과는 살기도 힘들다는 걸 의미했다.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계약 결혼해서 돈 주고 거주 허가증을 사기 위한 방편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태어나는 나라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살고 싶은 나라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다니,,,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자는 어딜 가도 계속 가난한 나라 출신의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모든 서류를 갖추어서 간 이민센터에서는 정해진 약속 날짜와 시간에 맞추어서 오는 이는 바보 천치다. (그렇다. 나는 이 바보 천치에 해당되었었고, 약속시간보다 15분 일찍인 10시 30분에 도착했었다.) 추운 겨울, 6시 반 새벽부터 줄 서서 아침 8시 30분이나 되어야 받을 수 있는 번호표를 받기 위해 밖에서 대기하고, 드디어 번호표를 받아서 들어오면 고작 기다리면서 앉을 수 있는 좌석이라곤 30개 정도밖에 없었다. 또한, 번호표를 받았다고 안심하고 나가는 건 금물! 11시 30분 정도가 되자 안쪽에서 문을 걸어잠가서 번호표를 받아도 밖에 나가 있는 경우 들어갈 수가 없게 된다. 안에서 안내해 주는 사람조차도 무슨 범죄자들 취급하듯 불친절하고, 이탈리아어를 알아듣지 못하면 사람 취급을 안해주었다. 호되게 한번 경험하고 나서 다시 정신 바짝 차리고 아이 둘을 데리고 어렵게 번호표를 받고 들어가자, 실제 안에서 산더미처럼 많은 외국인들을 위해 일처리를 하는 사람이라곤 달랑 2명밖에 안되었다. 그래도 남편이 이탈리아 사람이라고,,,,내 경우에는 어렵지만, 그래도 겨우겨우 달랑 2년밖에 안되는 거주 허가증을 받았었다. 카드가 도착해서 유효하게 쓸 수 있는 기간으로 치면 1년 9개월 정도밖에 안되었고, 갱신하기 위해서 또 준비절차를 밟기 시작하면, 쉽게 말해, 1년 반 이후에 다시 또 갱신 신청을 해야 함을 의미했다.



1년 반이란 시간은 그냥 산들바람이 불듯이 그냥 사~악하고 지나가 버렸다. 다시 추운 그 겨울에 갱신 신청을 하려고 갔는데, 스페인에서와는 달리, 갱신 신청의 절차가 처음 거주 허가증을 신청했을때와 똑같다는 것이다! 게다가 갱신 신청은 유효 말기 되기 60일 전부터 신청이 가능하며, 카드증까지 나오는데 대략 5개월 정도가 걸린다는 것이다. 말인 즉슨, 3개월 동안 이도 뭐도 없이 불법체류가 되고, 본인 국가 이외에 어느 다른 나라에도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남편이 다시 새벽에 줄을 서서 어렵게 번호표를 받아서 남편의 일 관계로 포르투갈에 가야 하는데, 뭔가 빨리 나올 수 있는 조치라던가, 미리 신청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문의를 해보았으나, 재수 없고 인정머리 없는 관계자는 "그냥 그건 니 사정이지 내 알바 아냐"라고 하더란다. 안 그래도 마자막으로 이탈리아에 돌아온 작년 겨울은 이래저래 복잡하고 힘든 해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포르투갈로 옮겨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럼으로써, 남편이 먼저 거주 국가를 이탈리아에서 포르투갈로 바꾸고, 나를 위해 포르투갈에서의 5번째 거주 허가증에 필요한 모든 서류들을 만들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의 거주 허가증 발급 과정과는 달리, 포르투갈에서의 거주 허가증 발급 과정의 커다란 차이점은, 모든 서류들을 갖춘 뒤, 약속 날짜를 잡는데,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는 금방 약속 날짜를 잡아주고 이 날짜에 모든 서류를 내고 서류 검토가 확인이 되면(서류가 괜찮은지 어떤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 말인즉슨, 빠진 서류가 있을 경우 더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5개월 정도 뒤에 거주증을 받을 수 있는 반면에, 포르투갈은 약속 날짜를 대략 5개월  뒤에 잡아주고, 이 약속 날짜에 모든 서류를 가지고 오면,

바로 그 자리에서 서류들을 검토하고 약 2주 뒤에 바로 체류 허가증 카드가 집으로 도착되게끔 되어있었다.


또 다른 차이점은, 이탈리아에선 2명의 직원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받는데 반해, 포르투갈 알가르베에서는 5명의 직원이 일을 처리한다. 기다리는 좌석 또한 약 100석은 되었고, 지루하게 기다릴 아이들을 위해 작게나마 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번호가 뜨는 전광판의 반이 만화가 나오고 있었다. 에어컨과 난방시설, 깨끗한 화장실은 기본이고, 가장 커다란 차이점은 이민자들을 위해 일하는 이 5명의 직원들이 이민자들을 대하는 자세였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친절하게 천천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해주고, 메모지에 적어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메시지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포르투갈 남부에서 이루어지는 걸 보며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포르투갈의 이민 센터, Portimao, Algarve, Portugal


어떤 부자 나라들은 이민자들 때문에 일자리들을 빼앗긴다며, 이민자들을 제한하려고 하고, 반대 운동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포르투갈은 많은 이민자들이 유럽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의 문으로 삼고 들어온다. 이들은 가난한 나라의 이민자들까지 자신의 품 안으로 감싸 안는다. 아직도 나는 왜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에 살기 위해  이렇게도 많은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하며, 검증과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는 말로는 자유 국가를 외치지만, 정작 각자의 이기심과 자기 이득을 위해서 인간의 존엄성을 자유 시장에 내다 팔고, 나와 똑같이 심장과 피와 뼈로 만들어진 이들, 이른바 이방인, 이민자들을 다른 계층이나 종족으로 치부하며 눈짓을 찌푸리며 거만한 눈빛으로 내려다본다. 내 자신에게도 반문해 본다. 내가 이들과 과연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하는지,,,,나 또한 이들과 똑같은 이민자이고 이방인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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