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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Aug 13. 2019

달콤한 이방인

#016 열여섯 번째 이야기

어릴 적부터 나는 조금 이국적인 외모로 다른 주변 아이들에게 다르게 취급받았었다. 새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에 햇볕에 비치면 밝은 갈색으로 변하는 머리카락,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인으로선 나오기 힘든 높은 콧대. 이런 외모가 그들과 나를 구분 짓게 했고, 다르게 취급하였다. 그나마 눈은 한국 토종답게 아주 작고 웃으면 실눈이 되지만, 모두들 조상 중 누군가가 외국 피가 섞였을 거라고 장담 아닌 장담을 했었다. 아주 어릴 적에는 그닥 말수가 없었고, 나중에 뒤늦게 만난 수다쟁이 단짝으로 인해 그나마 꽤 말수가 많아졌지만, 트고 지내는 사이가 아니면 그닥 먼저 말을 거는 성격은 아니었다. 남들이 다 하니까 걸쳐 입는 옷이나 음악 같은 유행에 꽤 뒤처졌고, 특이한 성격은 잘 아는 친구들이나 알아보게끔 평범함 속에 잘 숨겨 다니곤 했었다. 그러다가 법적으로 성인이 되고 나서는 나의 외적, 내적인 이질감이 불러일으킨 그들의 은근한 기대에 부흥해서 제멋대로 패션을 감행했고, 전방 100미터에서도 훤히 나를 알아보게끔 걸치고 다녔었다. 남들 시선 따윈 별로 신경 쓰고 살지는 않았고, 나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마치 대항하듯 더 특이하고, 더 요란하게 하고 다녔었다. 마치 이렇게 달라져야 성이 풀리는 것처럼,,,,,그들은 내가 남과 다르길 기대했고, 나는 점점 더 그들과 멀어져 갔다.


내 나라를 떠나 머나먼 유럽 땅에 뚝 떨어졌던 초창기 시절의 나는, 내가 아무리 창백한 하얀 얼굴과 높은 콧대, 동양인 답지 않은 글래머러스한 몸매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에 나는 한낮 동양인에 불과했다. 더욱이, 지금은 유럽 남부 바닷가의 뜨거운 햇살에 그을린 피부와 더 이상은 갈색같이 보이지 않는 머리카락과(이곳의 갈색머리와 금발머리와 함께 섞여 있으면, 내 머리는 그냥 검은 머리로 간주된다. 특히, 내 배에서 나온 딸내미가 금발머리이므로, 내 머리카락은 그냥 검게 보일 뿐이다.) 나의 콧날과 글래머러스한 몸매가 이곳에서는 그닥 특이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냥 나는 다른 중국인이나 한국인, 일본인 중에 하나로 보일 뿐이다. 그럼으로써 또 이곳 유럽 사람들에게 나는 외국인으로 취급된다. 내 나라에서도, 다른 나라에서도 나는 언제나 이방인이다.


중국인이란 소리듯는 첫째 아들과 동양인 엄마에게서 태어난 금발머리 둘째, 그리고 영락없는 동양인 엄마, Roma, Italy


첫째 아들 율이가 만 3살이 조금 안되었을 때였다. 남편의 여름 시즌 일을 끝내고 이탈리아에서 겨울을 보내던 때였다. 아들과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2미터 전방에서 어떤 이탈리안 할머니가 손녀를 자동차에 태우는 중이었다. 그 할머니의 손녀는 율이와 동갑 정도 되는 나이었는데, 이 두 아이의 시선이 얽히고, 율이도 이 아이도 움직이지 않는 짧은 순간이 있었다. 그 정적을 깬 건 다름 아닌 그 아이의 할머니였는데, 자신의 손녀를 자동차에 들이밀면서 "중국인이야. è Cinese."라고 하는 게 아닌가! 너무 충격이 커서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고,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그 할머니는 자동차 문을 닫아버렸다. 나의 어린 아들이 그 할망구의 말을 못 들었기를 기도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이렇게 대꾸했어야 했는데, 소리라도 질렀어야 했는데, 말 한마디도 못하고, 화도 못 낸 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럽고 울분이 터졌다. 그렇게 한껏 구겨진 얼굴로 집에 들어서자, 나의 이탈리안 남편은 무슨 일 있었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한껏 웃으면서,


그냥 웃으며 넘겨. 태어나서 한번도 동양인을 못 본 할머니한테 뭘 기대하냐, 뭘 그렇게 신경 쓰냐


는 것이다. 그 말은 나에게 도화선에 불을 지르는 것과도 같은 효과를 주었고, 그로 인해 나는


그건 인종차별이야! 어떻게 아이가 보는 앞에서 그렇게 행동할 수가 있느데! 말도 안돼! 무슨 자격으로 내 아들을 그렇게 무시하고 짓뭉갤 수가 있느데!


하고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내 남편이 하는 말,


그렇게 화내는 너야말로 인종차별 아냐? 중국인이라고 얘기한 것에 왜 그렇게 열을 올리는데?


라는 것이다. (유럽에서 일본인이라고 하면 긍정적 의미를 띠고, 중국인이라고 하면 조금은 부정적인 의미를 띤다. 한국인의 분포는 일본인이나 중국인에 비해 현저하게 낮기에 물어보는 경향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


그런 말 따위는 그냥 무시하면 되지, 마음에 상처 받지마. 어차피 우리 아들은 외모적으로 동양인에 가깝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있을 거야,,,,그런 거에 일일이 신경 쓰고, 마음 쓰는 건 에너지 낭비야,,, 그런 사람들의 말에 상처 받지 않도록 강하고 넓은 마음을 가진 아이로 키우면 돼.


그 당시에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같이 화내주고, 마음 쓸어주기를 기대했기에, 그의 말이 이성적으로 와 닿지 않았지만, (언제나 나의 남편은 내가 무언가 얘기를 털어놓으면 무언가 해결해줘야 한다고 생각해버리는 경향이 짙다.) 시간이 좀 지나고 다시 곱씹으면서, 어쩌면 나 또한 그 할망구처럼 알게 모르게 인종 차별적 행동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그딴 인종적 차별 따위 가차 없이 무시하고 "하하하" 웃을 수 있는 경지까지 올라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바란다.


델핀 쿨랭의 웰컴 삼바


그러고서 우연히 프랑스 작가인 델핀 쿨랭의 "웰컴, 삼바" 책을 만났었다. 프랑스에서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뒤로 몇 년 뒤, 영화로도 개봉을 했었는데, 예고편을 보고 너무 가볍고 달콤하게 설탕으로 발라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영화는 보지 않았다.) 자신의 존재를 최대한 가려야 하고 유령처럼, 없는 존재마냥 살아야 하는 그들이 이야기. 남의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의 이름을 기꺼이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그들의 처절하게 가난하고, 탄압받고, 차별받으면서도 자유를 꿈꾸는 이방인이자 외국인 노동자의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록 내 나라는 가난한 나라가 아니어서 다른 나라에 체류 허가증을 받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고, 굶을 것을 걱정하면서 살아본 적은 없었지만, 그가 살아가는 여정과 남들이 그를 바라보는 냉담하고 가시 돋친 시선, 인간의 최소한의 존엄성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그들의 삶, 남의 나라에서 살아가며 겪는 그들의 고독하고 시린 삶에서 나를 반추하게 만들었다. 나 또한 그들과 같은 외국인이고 이방인인 것을......  


누군가는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고 했건만, 우리는 결코 이 말처럼 평등하지 않은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자유라는 달콤한 말로 자신의 이기심을 두둔하고, 내 자유와 이익을 위해서 가난한 자, 무지한 자,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힘없는 자들이 미디어의 화려함에 가려져 눈 가리고 아웅 하듯 우리는 애써 보지 않으려고 한다. 내 삶이 각박하고 힘드니까, 나보다 더 화려하게 보이는 헐리우드 배우들이나 화려한 사람들의 일회용적 달콤함에 젖어 그들과 나를 잠시나마 동일시하며 냉정한 현실을 애써 잊고 지내려고 한다. 내가 살아가고 싶은 나라도 마음대로 그냥 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게 컨트롤되는 시스템 안에서 남에게 튀지 않고 어나니머스 Anonymous(익명)처럼 살아가야 하는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무엇이 평등이고 무엇이 자유일까?


나는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자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올려다 보기 보다, 나보다 덜 가진 자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내가 가진 시간과 음식과 삶을 나누고 싶다. 그럼으로써, 내가 가진 것들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나눌 줄 알고, 감사할 줄 알기를 오늘도 나에게 다짐해 본다. 사회 속에서 언제나 이방인으로써, 집단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이방인으로써의 존재가 다양성과 다채로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언젠간 이 사회에서 이방인이란 게 냉장고에서 썩어가는 보이지 않는 음식물이 아닌, 달콤하면서도 새콤하게 톡 쏘는 레모네이드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언제나 달콤한 이방인이기를,,,,나는 꿈꾼다.


그간 내가 만난 용기있는 이방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만들어진 나의 자화상이자 그녀들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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