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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Aug 23. 2019

그가 말하는 방식&내가 건네는 방식

#017 열일곱 번째 이야기

그는 유럽 땅, 이탈리아에서 태어났고, 나는 아시아 땅,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그는 남자로 태어났고, 나는 여자로 태어났다.

그는 군대에 가야 했었고(결국 일주일 만에 돌아왔으나), 나는 군대 면제 대상이었다.

그는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었었고, 나는 스스로 학교에 돌아왔었다.

그는 첫눈에 내게 반했었고, 나는 천천히 그에게 빠져들었었다.


일란성쌍둥이 조차도 확연히 다른 인격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주 이들의 공통점을 찾아내 한데 묶으려고 하고, 다른 점을 무슨 예외의 부분인 마냥 취급하기도 한다. 다행히 이렇게 밑바닥부터 철저하게 다르게 태어나 자란 그와 나는, 서로가 다른 존재임을 순간순간 확인하며 살아가고 존중한다. 그가 내게 말을 건네는 방식과 내가 그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에서부터, 우리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서로의 이면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솔직히, 나는 그닥 말주변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렇기에 잘 아는 지인들 간의 속 깊은 대화라든가, 나에 대한 이야기라면 자연스레 술술 풀어가지만, 가령 무언가에 대해서 설명을 요구받거나 잘 모르는 이와의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 때에는,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에서부터 생각들이 공중에서 윙윙 날아다니는 것만 같기도 하다. 게다가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보아야 안다"라는 말처럼, 언제나 중요한 결론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나는 횡설수설 뒷배경이 되는 정보들을 주저리주저리 설명해 버리곤 한다. 그렇기에, 나와는 달리, 결론부터 먼저 얘기하고 말을 시작하는 직설적인 그로써는, 나의 주변머리 설명들을 다 듣다가 보면 이미 집중력이 흐려지고,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 건지 대체 알 수 없어져 버리게 되어 미로의 수렁텅이에 빠져 버리곤 한다. 그러다 보니, 나 또한 설명하다가 그의 눈빛이 흐려지는 걸 감지하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나의 자질 구리 한 설명을 입 밖에서 토해내면서, 얼른 결론에 도달해야 하는데!!! 혹은, 얼른 결론을 먼저 얘기해 버려야 하는데!!! 하는 압박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에게 그림 하나를 그리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진땀을 뻘뻘 흘리며 도달한, 진정한 깨달음이었다.) 그와 내가 말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이 그림은, 달라도 근본부터 다른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중심에서부터 밖으로 다가서고, 나는 밖에서부터 주변을 맴돌며 그에게 다가선다.


우리가 말하는 방식은 한 문장 안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가령, 그가 말하는 방식을 스페인식과 이탈리안식으로 써보자면, 주어(그 당시 우리는 스페인어를 사용했고, 현재는 이탈리아어를 사용 중이다.)는 거의 생략이 가능하고, (동사를 보면 주어가 가늠이 되므로) 그 뒤로 바로 동사가 나오므로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이미 가늠이 간다.

(주어) + 동사 + 목적어 : 스페인식, 이탈리안식

(Yo) quiero comer pizza!

(Io) voglio mangare pizza!


그에 반해, 내가 말하는 방식을 한국어로 풀어놓으면 다음과 같다. 주어는 꼭 얘기해주지 않으면 누구 얘기인지 가늠하기가 불가능하며, 목적어까지 듣고서도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가늠하기 힘들다. 말하자면, 문장을 끝까지 들어보지 않고선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주어 +목적어 + 동사

나는 피자를 먹고 싶어!


이렇듯, 한 문장에서도 드러나는 이 차이가 한 주제에 대한 대화로 이어지면 더욱더 커지고, 이런 나의 한국어 말하는 방식은 스페인어나 이탈리아어를 씀에도 불구하고 어찌할바 없이 그대로 묻어져 나온다. 그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을 아주 직접적이고 적나라하게 대놓고 이야기하고, 부연 설명들을 붙여 준다. 그에 반해, 나는 너무 직접적이고 노골적이지 않게 돌고 돌고 돌아서 힘겹게 결론에 도달하곤 한다. 어떨 때에는, 그는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해 내 말을 중간에 끊으며 "그래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데? 결론부터 얘기하면 안 돼?"라고 나를 닦달하기도 한다.


그와 함께 살아간 지 언 8년이 다 되어간다. 말이 8년이지, 우린 거의 하루 24시간을 붙어서 지내기에 심적으론 이미 20년도 더 된 부부 같은 심정이다. 그 오래된 시간 동안 나는 그의 직설적인 표현에 더 이상 상처 받거나 오버해서 생각하지 않게 되었고, 그는 나의 미로 같은 이야기를 참고 들어줄 수 있는 작은 인내심이 생겼다. 그리고 요즈음처럼, 한창 바쁜 여름 시즌, 일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와 지친 몸을 내게 기대어 마사지를 받으며 쉬는 그에게 나는 또 조근조근 이야기를 꺼낸다. 그리고 나의 알 수 없고, 정처 없이 이어지는 천일 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잠이 들곤 한다.


처음으로 포르투갈로 함께 여행 떠났을때, 곤히 잠든 그를 드로잉 하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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