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여 사라질까 문득 애틋한 것들이 있다: 누군가와 새워야 했던 겨울밤의 GS25 더 진한 커피우유, 만년필용 벨럼 페이퍼 노트들, 백산안경점 린디브로우와 도레이씨 안경닦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푸라무네토의 책 집게. 싸지만 몽블랑, 펠리칸이 부럽지 않은 펜텔 에너겔, 제브라 블렌, 미쯔비시 유니 제트스트림 같은 경이로운 필기구들. 아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게 희미하게 빛나는 요긴한 물건들. 이런 물건들은 관념과 기억의 너머에 그대로 방치된 시간의 실체를 재현한다. 머릿속으로 꾸며낸 기억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애틋한 것들. 늙어갈수록 세월은 묘연해지고 사람들은 홀연히 제 갈 길들을 간다. 사람은 가고 물건은 남는 법. 인생은 마침내 끊어진 인연처럼 천천히 고독해지는 것. 우두커니 물건들을 바라보다 문득 물건 너머로 말갛게 어른거리는 사람에게 마음이 가닿으면, 관계는 끝남으로써 완성되고 지나간 시간은 천천히 굳어 물건으로 육화된다. 우연히 뽑아든 책에서 발견한 북클립처럼, 기약할 수 없는 소식들이 이렇게 폭삭 늙으면 우리는 어느새 사람보다 물건이 좋아진 고자누룩한 노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