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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chroid Jun 27. 2015

진짜 재미

 표절은 아무리 애를 써도 없앨 수 없는 매춘이나 거짓말 같은 문제다. 80년대 한국 가요는 일본 가요를 그대로 번안해놓고도 걱정이 없었으며, 90년대에는 미국의 샘플링 음원과 리듬을 그대로 써먹고도 당당했었다. 심지어 박진영을 비롯한 숱한 대중음악 작곡가들의 표절은 아예 법정에서 손해액이 산정되었지만 그들은 지금 하나 같이 안녕하며, 학위논문을 표절했던 수많은 인사들은 교수가 되고 정치인이 되어 사람들에게 훈계를 일삼는다.

       

 신경숙이 아니라 누구라도 표절을 할 수 있고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리고 온 세상이 자신을 비난할 때, '아몰랑'이나 '유체이탈', 또는 수사학의 써커스로 자신과 세상을 동시에 속이려 들 수 있다. 가뜩이나 신경숙의 작품을 하나도 읽어보지 않은 나는 소위 '신경숙 사태'에 세상이 이토록 법석을 떠는 게 이상하다. 그렇다면 법원에서 표절임이 확정된 '박진영 사태'는 왜 그냥 넘어간 걸까? 문학이 대중음악보다 더 윤리적이거나 신성한 게 아니라면 두 사태는 완전히 동일한 취급을 받아야 마땅하다.

       

 나는 슬슬 다른 게 궁금해진다. 요즘 유행인 '내재적 접근'으로 이응준이 되어보자. 잘 나가는 어떤 작가가 스타 평론가와 결혼을 하고 작품마다 대박을 낸다. 그런데 몇 작품이 표절인 게 분명하다. 여러 차례 그런 문제제기가 흐지부지 되는 것이 못마땅하다. 그래서 15년간 참았다가 인터넷 매체에 그 사실을 폭로한다. 이응준은 자신의 주장대로 스스로 문단의 왕따를 자임하면서 무엇을 기대했을까? 신경숙이 부도덕한 작가라는 사실을, 문단권력이 썩어서 신경숙을 보호하기 위해 쉬쉬 한다는 것을, 이미 15년이나 된 일을, 아니, 한때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혼성모방'이니, '오마주'니 하며 베끼기를 우스개로 치부하던 우리 사회의 표절에 대한 헐렁한 윤리를 온라인 매체에 고발하여 썩어빠진 한국문단과 문단권력을 정화한다는 원대한 기획이었을까? 정말 그럴까? 너무 구태의연한 나머지 수상한 이 난리법석의 진짜 재미는 다른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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