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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chroid Jun 27. 2015

늙는다는 것

 늙음은 갑자기, 한꺼번에 온다. 사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기는 하다. 매일 늙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어느날 갑자기 전구가 나가듯, 무언가 갑자기 고장난다. 사람도 결국 한 순간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 늙음은 기계와 마찬가지로 대개 병으로 찾아온다.


 마흔이 된 늦봄 나는 갑자기 허리가 아팠고 30분 내에 길거리에서 구토를 할 지경이 되었다. 시청 앞에서는 간호사가 50대 남자인 허름한 비뇨기과가 유일한 대안이었다. 60대로 보이는 의사는 내게 "요로결석인 거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건 제가 병원에 오자마자 한 말이잖아요?"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서지도 못하는 나에게 그는 두 알씩 먹으라며 진통제를 처방해주었다. 늙는다는 건 공평한 거다. 그 의사도 나도 결국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어떤 병원은 스마트폰만도 못한 세상이 되었다.


 마흔 다섯의 봄에는 더 복합적인 고장이 찾아왔다. 담낭을 가득 채우고 있던 돌들이 언젠가 극심한 고통을 줄 것이고, 그 때 응급실을 찾아가서 담낭을 제거하면 된다던 검진의들의 무덤덤한 진단은 현실에서는 전혀 무덤덤하지 않았다. 견디다 못해 스스로 응급실을 찾아갔지만 강남성모병원의 응급실은 마치 월드컵 경기라도 열린 현장 같았다. 환자들은 앉을 의자가 없었고 아무데서나 수액병을 차고 끙끙 거렸다. 종합병원은 일단 무작정 대기와 다양한 검사로 포문을 열었다. 밤 12시에 도착해서 사람을 살리라던 나에게 응급실 당직이 새벽 6시에 알려준 결과는 아침 8시에 다시 병원으로 나오라는 진단이었다. "음... 검사결과를 선생님이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아직 담낭결석으로 인한 문제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간호사를 붙들고 더 강한 진통제를 달라고 소리를 친 덕분에 나는 갑자기 멀쩡해진 채로 집으로 돌아왔고 다음 날 아산병원에서 간 전문의에게 정기검진을 받았다. 그는 말했다. "그런 통증은 결석 때문이 아닙니다. 식중독이에요." 과연 그랬을까? 2달 만에 나는 다시 밤새 배를 잡고 뒹굴다 오전에 강남성모병원 응급실을 다시 찾아갔다. "드디어 담낭의 결석들이 문제가 된 게 아닐까요?" 병원에서 환자의 추측은 무의미했고 의학적 방법론은 완고하고 엄격했다. 두 달 전에 했던 모든 검사를 다시 진행하고 4시간이 지난 후 그들은 드디어 내게 담낭을 제거해야 한다는 결론을 들려주었다.


 사경을 해매는 환자들이 이동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옮겨지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습관적으로 복도 천장의 형광등이 지나가는 시점쇼트를 잡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런 느낌인가? 복강경으로 1시간이면 끝날 수 있지만 장폐색이 올 수 있고, 수술 도중 개복으로 전환할 수 있고, 그리고 결국 당신은 평생 수술 후유증에 시달리거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서류에 싸인을 하라는 설명을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오히려 잘 된 일일지도 몰라. 한번 죽는 인생인데 마취상태에서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가 아닌가. 쓸개 빠진 인생 쯤이야 뭐가 대수인가. 마취가 시작되자 급기야 행복한 기대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강남성모병원의 의료진은 '수술 중 각성 현상'까지 대비하고 나를 멀쩡히 회복실로 되돌려놨다. 생각보다 춥지도 않았고, 아프지도 않았다. 돌이켜보면 인생의 다른 이벤트들도 마찬가지였다. 결정적인 것 같았던 일들은 모두 예상보다 별거 없었고, 진정한 문제들은 도둑 고양이처럼 소리없이 찾아오는 식이었다.


 수술한 날부터 40도에 가까운 고열에 시달렸지만 당직의사의 조언은 한결 같았다. "걸으셔야 한다니깐요. 자, 보세요. 아줌마, 아저씨들이 저렇게 열심히 복도를 걷는 이유가 다 그거라니깐요." 나는 기가 막혔다. "저는 수술 직후부터 벌써 이 큰 병원의 복도를 40바퀴나 돌았는데요?" 그는 링거약을 추가로 처방하고는 말없이 병실을 나갔다. 1인 병실의 대접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하룻밤에 36만원을 낸다고 해서 살가운 대접을 해주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결국 3일만에 퇴원했다가 그날 밤 다시 응급실에 갔고 다음 날 열이 떨어져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왜 계속 열이 난 것일까? 병원에서 의문을 품는 것은 소용 없는 일이었다. 병원의 의사들은 환자의 의문에 답을 해줄 의무가 없었다. 일주일 뒤 만난 집도의는 밝게 웃었다. "정말 왜 그랬을까요? 왜 그렇게 열이 난 걸까요? 하지만 지금은 너무 예후가 좋습니다. 가끔 쓸개가 없다고 너무 불안해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몸이란 다 적응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쓸개가 없어진 생활은 맥아리도 함께 없어졌다. 술을 마실 수 없었고, 뱃속엔 늘 엄청난 가스가 찼다. 우레 같은 굉음을 내는 방귀를 자주 뀌어야 했던 나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하루종일 사무실을 들락날락 거리느라 통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쓸개 빠진' 삶이란 정말로 그랬다. 매일 밤 12시에 퇴근했지만 일은 엉망진창이었고 방귀는 멈추지 않았다. 쓸개를 떼낸 후 좋아진 건 수술 때문에 했던 금식과 떨어진 입맛 덕분에 들어간 뱃살이 전부였다. 그리고 퇴근하던 어느날 밤, 피곤한 눈을 찡그리다 왼쪽 눈이 완전히 감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야근 후에는 반드시 법인카드로 술을 마셔야 한다는 직원들을 따라 술자리에 앉아서 콜라를 마시던 나는 시간이 갈수록 왼쪽 얼굴 전체를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맙소사. 이게 바로 그 '구안와사' 아닌가? 사람들은 웃었다. 이제 팀장님도 건강을 생각하실 나이라니깐요.


 사람들은 한결같이 당장 한의원에 가서 '봉침'을 맞아야 한다고 노래를 불렀다. 자기가 아는 사람 누구도 입이 돌아갔는데 봉침을 맞고 돌아왔다는 식이었다. 나는 떠밀리듯 한의원에 갔다. 50대 한의사는 내 설명을 한참 듣더니 친절하고 신중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헤르페스 아시죠? 그게 얼굴로 온 겁니다. 바이러스가 신경을 훼손시킨 거죠." 아무런 검사도 없이 그는 마치 신들린 무당처럼 자신만만했다. "검사도 안 하고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죠?" 그가 늘어놓은 얼굴신경마비에 대한 설명은 내가 네이버에서 찾은 내용과 완전히 동일한 것이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한의사의 의학적 방법론은 무엇인가? 네이버인가?


 대개의 한의사들은 우선 약값을 먼저 밝힌다. 약값은 2주일치에 20만원이 넘는다. 물론 친절한 사족도 잊지 않는다. "이런 걸로 이 앞의 정형외과에 가시면 검사다 물리치료다 해서 50만원도 넘게 듭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일단 침을 맞되 약을 먹어야 하며, 그 약값은 25만원이었다. "그럼 봉침을 맞는 건가요?" 한의사는 단호했다. "아뇨. 봉침은 얼굴이 완전히 돌아간 경우에 주로 놓기 때문에 환자분에게는 필요가 없습니다." 간호사의 설명은 더욱 가관이었다. "선생님들마다 침 놓는 방법이 다 다르세요." 과학에 각기 다른 방법이 있다니. 한의사는 얼굴에 2개, 양팔에 각각 2개 그리고 왼쪽 발목에 2개의 침을 놓은 후 30분 뒤에 다시 얼굴을 찡그려보라고 주문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회복에는 2달에서 6달 정도 걸립니다. 그동안 약 드시고 꾸준히 침을 맞으세요." 이쯤 되면 이런 작태를 법으로 허가해준 국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나는 다시 네이버와 다음에 매달렸다. 신중하게 골라낸 어떤 체험기의 결론은 확고했다. 한 시간이라도 빨리 스테로이드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청 앞의 의료환경은 신경과를 찾아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서울대 로고를 내건 30대 내과의사는 나의 증상을 듣고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갑자기 책장에서 잡지 같은 것을 꺼내 들춰보더니 '안면마비의 경우 스테로이드를 처방하는 것이 좋다고 되어 있네요.'라는 황당한 인용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나는 찡그려지지 않는 얼굴 때문에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신해철 사건의 본말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어떤 의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생사가 오갈 수 있다는 소리가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의사는 지루하지만 당당한 표정으로 교과서 같지도 않는 책을 다시 책꽂이에 꽂더니 말했다. "저는 이런 질환에 대한 충분한 임상경험이 없기 때문에 진단이나 처방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신경과를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솔직하고 소박한 내과 개원의의 차별성은 다른 데 있었다. 그는 과학적으로 모르는 것에 대해 모른다고 대답하고 오히려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 근처에 신경과가 없죠. 음... 잠시만요..." 그는 다시 책장에서 주소록 같은 책을 꺼내서 뒤적이기 시작했다. "아, 여기 있네요. 명동에 있는 중앙우체국 지하에 가면 신경과가 있습니다. 여기서 걸어서 한 15분 쯤?"


 스테로이드를 먹자 5분에 한번씩 인공눈물을 넣어야 했던 눈이 편안해지고 왼쪽 얼굴이 찡그려지기 시작했다. 불과 석달 전에 한쪽 눈이 움직이지 않아 입원한 아버지를 찾아가 스테로이드의 무서운 부작용을 들었던 나는 이제 스테로이드 장기복용으로 팔다리가 마치 순두부처럼 말랑말랑해지고 있는 중이다. 인생은 결국 지루한 반복이고 뻔한 전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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