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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앤롸이언 Feb 03. 2019

지난밤

차를 샀고 낚시를 갔다

지난 목요일(7일)에 차가 나왔다. 스바루 아웃백 2010년형. 싸게 샀지만 손해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요상 야릇한 구매였다. 재고 떨이 세일로 원래 시세보다 3~4천 불 정도 싼 가격에 추가 할인을 더해주겠다고 딜러가 설레발을 쳤다. 올커니, 계약을 하려는데 사인 직전에 추가 할인이 어렵단다. 이유는 광고에 Fixed price라고 명시했기 때문이란다. 회사 정책이라나 뭐라나. 뭔가 그렇게 어버어버 하다가 아무것도 혜택 못 받고 구매. 다시 팔아도 산 가격보다 비싸게 팔 수 있을 정도의 구매인데도 딜러한테 받은 게 없는 데다가 추가 할인을 못 받았더니 비싸게 싼 것 같은 느낌. 역시 고관여제품은 어떻게 사도 찝찝한 느낌이 남는다. 거기다 원래 수요일에 나오는 건데 이 딜러 놈이 그나마 해준다는 선팅 작업을 까먹었다며 하루만 더 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하~ 양놈들이란. 원래 이 정도면 뭔가 더 딜을 쳐야 하는데 나나 동생이나 둘 다 이런 거에 젬병인지라... 그러고 보니 연료탱크 가득 채워준다는 약속도 안 지켰네... 하~쌍노무 새끼. 그래도 시세보다 훨씬 싸게 샀으니 뭐 참 뭐라기도 그렇고... 그냥 말자. 


그렇게 차를 사고 제일 처음 한 일은 낚시용품 사러 가기. 전 여자 친구 aka 쓰레기가 헤어지면서 차를 가져가 몇 달 동안 뚜벅이로 살았던 동생은 차를 보자 낚시 갈 생각에 나보다 더 신이 났다. 거대 아웃도어 매장에 가서 내 낚싯대를 고르고 찌, 추, 줄, 미끼 그리고 구명조끼와 헤드라이트까지 풀세트로 구매했다. 그리고는 마트에 가서 물과 먹을 것을 사서 차에 실었다. 매매 계약서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차는 이미 짐으로 한가득. 


집에 와서 옷이며 세면도구, 카메라들을 더 챙기고 길을 나섰다. 이미 밖은 어둑해져 있었고 도착 예정시간은 네 시간 후인 자정이었다. 한 시간 정도 달리자 도시의 불빛은 조금씩 옅어지고 말 그대로 순수하게 까만 밤이 더더욱 진해졌다. 지난 과거에 대한 후회와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에 대해 동생과 멈추지 않는 대화를 나누며 길을 달렸다. 도착하기 한 시간 전이되자 자연 속 이물질은 우리 밖에 없었다. 몇십 년을 자랐을까, 수많은 나무 사이로 캥거루의 눈이 번쩍였고, 부엉이는 잘 날아가다 대체 왜 자동차 라이트에 봐서 잠깐 눈이 멀었는지 도로 한가운데 착륙해 우리를 식겁하게 했다.


도착하기 직전 기대하라며 씩 웃는 동생. 설레발인가, 아무 말 않고 앉아있었다. 잠시 후 도착했다는 말에 문을 열고 내렸다. 설레발이 아니었다. 차 시동을 끄니 인공적인 불빛 하나 없이 새까만 밤을 밝히는 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들 뿐이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하늘만 바라봤다. 거대한 나무 아래에 서있는 느낌이랄까. 촘촘하게 박혀있는 별빛이 나뭇잎 같았다. 그렇게 멍하니 얼마나 있었을까. 귀 옆을 때리는 파도 소리에 정신을 차렸고, 꼭 사진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학 때 사진을 배워서 다행이었다. 좋은 카메라가 없어서 슬펐다. 카메라 렌즈를 조이고, 노출을 늘려가며 어떻게든 하찮은 미물이 만든 기계로 자연을 담아보겠다며 끙끙거렸다. 몇 장을 찍었을까, 조금이라도 기록할 수 있어 기쁜 마음과 점점 크게 다가오는 능력과 기계의 한계에 슬퍼지는 마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이제부터 사람에게 사진빨 안 받는다는 말은 다시 안 하련다. 사진으로는 눈으로 본 것의 일도 못 담았다. 그나마 싼 카메라라 다행인가, 비싼 카메라로도 만족할 사진은 못 뽑아내면 더 슬펐겠지.


좋지?


동생이 짧게 던지는 말에는 참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좋다.


자신의 문제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사느라 긴 시간을 허비했던지라 더 깊게 박혔다. 그냥 한걸음 뒤에서 별거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원래 이렇게 태어난 인간이라 며칠 지나 이 글 쓰는 지금도 다시금 제 문제에 매몰되어가고 있지만, 이렇게 한 번 머리끄덩이를 부여잡고 억지로라도 다른 세상과 시선이 있고, 어쩌면 별 거 아닐 수도 있다는 힌트만 던져줘도 조금은 숨을 쉴 수 있는데 말이다. 


밤이 가고 해가 뜨면 다시 현실이지만, 힘들 땐 갈 수 있고, 볼 수 있는 별이 있다고 알려준 지난밤이 있으니 살짝 괜찮다


차도 잘 샀고, 가기도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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