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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앤롸이언 Jun 29. 2016

오모테산도 커피, 홍콩 완차이

실패한 이치고 이치에 (一期一会)

카페 탐방을 하겠다는 정확한 목적을 가지고 도쿄를 방문했던 2016년 1월. 순조롭게 도쿄 23구 안을 휘젓던 나를 가장 당황하게 했던 것이 오모테산도 커피의 폐점이었다.


이미 3년 전, 2013년에도 방문 계획을 잡았다가 스케줄이 맞지 않아 가지 못했다. Nozy와 오모테산도를 놓고 고민하다가 Nozy를 선택했었다. 이번에는 꼭 마시고 말겠다, 각오를 다지고 아침 일찍부터 오모테산도로 향했다.

도준카이 아파트

도쿄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 도준카이 아파트의 흔적. 아파트 뒤로 들어가면 조용한 주택가가 나온다. 오모테산도 커피는 그 안에서 오래된 가옥 한 채를 빌려 영업했었다. 낡았지만 고즈넉한 느낌의 외부는 살리고, 내부만 콘셉트에 맞게 개조해서 사용했다.


도쿄 오모테산도 커피 외관
도쿄 오모테산도 커피 내관

오너 바리스타인 에이치 쿠니모토 씨가 Sprudge.com과 한 인터뷰에 따르면 애초에 1년만 하려던 팝업 스토어 개념의 카페였다고 한다. 재건축 일정을 잡아 놓은 낡은 주택 빌려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그러다가 점차 유명해져 5년이나 지속됐고, 건물 안전 상 그리고 계약 상 더 있을 수 없기에 폐점했다 한다.


하지만 내가 그걸 알리가 없지. 카페가 있어야만 했던 곳은 포클레인 한 대가 무쌍을 펼치고 있었다. 에이 설마 하며 같은 블록을 몇 번이나 돌았는지 모르겠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혹시나 싶어 공사장 앞에 향했다. 잔해 사이로 덩그러니 서있던 기둥 앞에 하얀 A4용지가 붙어 있었다. '오모테산도 커피다. 우리 폐점해.'


아 나 원 참; 1월 20일에 방문했는데 폐점은 12월 31일. 3주만 일찍 왔어도... 벌써 두 번이나 실패했으니 인연이 없는 커피인가 싶었는데....


5월, 홍콩에 새로 문을 연다는 것이다. 마침 그때 홍콩 여행이 잡혀 있었다. 이번에는 꼭!!



이번 여행에서 완차이에 굳이 갈 일이 없는데도 이 커피 하나 마시겠다고 방문. 고급 주택가의 상점가인 Lee Tung Avenue 안에 있었다. 역시나 이름값을 하는지 끊임없이 사람이 들어갔다. 홍콩에 있지만 엑스테리어의 폰트나 디자인이 일본 일본스러웠다.



입구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카운터가 있다. 테이크아웃인지, 실내에서 먹을지 말해주고 커피를 주문, 계산까지 이곳에서 마친다. 음료를 받는 곳은 두 곳. 테이크아웃은 뒤로 돌면 바로 보이는 바에서 음료 받고 나가면 된다.



여기가 테이크아웃 바. 이곳조차도 라마르조코 스트라다 3구를 사용한다. 어차피 1대 1 접대가 기본으로 알고 있는데 굳이 3구를 쓸 필요가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홍콩 오모테산도

실내에서 마시는 사람은 카운터 옆 계단을 통해 반층 위로 올라간다. 큐브 안에 실내 담당 바가 있고, 이곳에서 커피를 받아 자유롭게 원하는 자리에 앉는다. 


후지 로열 그라인더. 서울에서는 이제 보기 어렵지만 홍콩에서는 아직까지 드립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역시나 스트라다 3구.

보조해주는 사람이 옆에 붙어있다.


오모테산도 커피의 콘셉트를 알고서 갔기에 홍콩 지점 서비스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일본 다도의 정신을 따와 만드는 사람과 마시는 사람이 마주 보며 '마신다'는 경험을 최대한 공유하는 것이 원칙으로 알고 있다. 다실이 아니기에 마시는 것을 끝까지 지켜볼 수는 없어도 만드는 과정에서 함께하는 느낌을 주려한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일본 오모테산도는 들어가는 입구를 좁히고 1대 1로 고객 응대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었다. 만드는 곳과 마시는 곳을 독립시켜 함께 공유하는 만드는 과정이 끝나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 개인만의 마시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했다.


도쿄 오모테산도

도쿄 오모테산도 커피 - 오른쪽에 턱으로 커피를 받는 곳과 마시는 곳이 독립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은 Sprudge.com)


홍콩의 경우에는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커피를 받는 곳과 마시는 곳이 구분되어 있지 않다. 1대 1로 응대하는 것이 아닌, 계산한 영수증을 다량으로 받아 제조, 공급하는 느낌을 받았다. 거기다 사람도 워낙 많아서 더 그렇다. 스텝도 확실히 일본인이 아닌 홍콩인이기에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은 없었다. 뭐 굳이 불친절하기로 유명한 홍콩에서 그런 걸 기대하는 게 잘못된 거지만.


오모테산도 커피가 추구하는 서비스는 사라진 게 아닐까.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어줬던 두 가지, 서비스와 맛에서 서비스가 사라졌다. 남은 건 커피 맛 밖에 없네.



두근대는 가슴을 붙잡고 카푸치노와 아이스 라테를 받아 왔다. 조심스레 한 모금 마셨다. 어? 한 모금 더. 뭐야, 이건. 진짜 엄청나게 실망하고 왔다. 신맛 이외에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들은 이곳 커피의 특징은 잘 잡힌 밸런스였는데, 밸런스는 둘째치고 신맛 이외에 아무것도 없는 잡스런 커피였다.


혹시 에스프레소 잘못 내린 걸 마셨나 싶어 싱글 에스프레소를 추가.

역시 그럴 리가 없지. 앞의 커피가 잘못된 거였기는 뭐가 잘못... 니미 이것도 마시라고 준 거냐. 뱉어버리고 싶었다. 만약 이 맛이 기본이라면 여기는 유명해질 수가 없는 곳인데...


애초에 들었던 특징과 너무 다른 커피가 나와서 정말 당황스러웠다. 오래 기다린 만큼 실망도 컸다. 이런 걸 먹으러 굳이 여기까지 왔나 싶은 마음에 울컥. 그리고 물도 안 줘!!! 에스프레소를 시켰는데 왜 물을 안 주는 거냐!!


굳이 분석해보자면

1. 문 연지 얼마 되지 않아서 홍콩 바리스타들이 맛을 못 잡았다.

2. 기계가 바뀌어서 맛의 표현이 달라졌다.

(도쿄와 홍콩 사진을 보면 머신이 다르다)


뭐가 됐든 간에 엄청 실망했다. 퀄리티 컨트롤이 안 되는 마당에 무슨 지점을 내고 한다는 말인가. 커피가 별로니 독특하다고 느낀 인테리어나 장인 정신을 표현한다며 입은 유니폼도 허세처럼 보였다. 나중에 맛이 좋아질 수도 있겠지만 또 언제 홍콩에 오고, 왔다고 해서 굳이 방문할 이유가 없는 거지.


It was a moment in time shared between barista and customer. The Japanese call it “Ichigo Ichie “: Once in a lifetime. “This one cup, for this one person, might be the last coffee they ever drink,” “So we want to make the best coffee we can for that particular person every time. Each moment is important, and we might never meet that customer again. 

그 순간 바리스타와 고객이 교감합니다. 일본에서는 이치고 이치에, 일생 단 한 번이라는 뜻이죠. 이 한 잔이 이 사람에게는 일생에서 마실 마지막 커피일 수 있거든요. 그렇기에 항상 지금 이 사람을 최고의 커피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매 순간이 중요합니다. 이 손님을 접대하는 게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으니까요.

- sprudge.com 오너 인터뷰 중 -

나의 이치고 이치에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도쿄에서도 이랬으려나, 못 가본 게 아쉬울 뿐. 토라노몬에 지점이 있다고 하는데 거기 가보면 확실해지려나. 


#홍콩 #카페 #홍콩카페 #홍콩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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