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전략가가 있기는 한 걸까?
내가 만난 '제대로 된' 전략가들은 확실히 달랐다. 막연히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 '결정권자가 이를 감안하여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식의 애매한 훈수를 두지 않았다.
전략분석가. Strategy Analyst
'전략분석가라..'
부서원의 자리를 표식 하는 직책 표지판은 은색 철판에 검은 페인트로 글씨가 쓰여 있다. 내가 앉을 책상에 새겨진 직책 이름이 바로 전략분석가 Strategy Analyst이다. 13년 만에 이 자리에 앉았다. 한편으로 전략분석가 타이틀이 이렇게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이었을까? 놀랍기도 했다. 다행인지 몰라도 생각보다 인기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앉아 있게 된 걸지도 모른다.
작전-Operation, 운영?
우리나라 군대에서는 Operation으로 명칭 된 자리에 많은 장교들이 몰린다. 물론 이 단어를 한글로 번역할 때 '운영'으로 할지 '작전'으로 할지에 따라 그 반응이 현저하게 달라진다. '작전'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직책에는 많은 이들이 줄 선다. 하지만 '운영'이라는 단어에는 그렇지 않다. 더구나 '전략'에는 줄 서는 것 자체를 주저한다.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생소하다는 것은 약점이 많다. 이해해주고 지지해줄 선배들도 극히 적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전략'이 나를 매료시켰다. 어쩌면 내가 처음 개척해야 하는 길일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말이다.
전략의 단어 하나가 작전의 전부를 바꾼다.
시사프로그램이나 월간지, 언론에서 다루던 '작전계획 5027', '작전계획 5015'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언론에서 다루는 내용을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전쟁계획이라는 정도는 알 것이다. 내게도 이런 작전계획은 누가, 어떻게 만들까? 막연히 궁금해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직접 겪어보면서 작전계획을 만드는데 매력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전략부서에서 단어 하나를 바꾸면 작전부서는 100페이지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져 넣어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전략부서에 있는 동안 작전부서의 동료들을 만날 때면 이런 농담을 던졌다. 정말 재미없고 재수 없기까지 한 농담이지만 진실이긴 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전략 콘셉트가 조금(?) 바뀌면, 그들이 작전계획이라고 부르는 운영 프로그램은 요동칠 수밖에 없다. 운영 프로그램을 어떻게 짜야할지도 이미 계산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미 정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꼴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브레인들은 어디에 포진해야 할까? 운영 프로그램일까? 전략 디자인일까?
'전략'이라는 거인의 어깨에 오르다.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 곁눈질이라도 하며 현실세계에서 작용하는 전략의 신비를 엿볼 수 있기를 고대하며 군 생활을 시작했던 때가 떠올랐다. 이 자리까지 가는데 최소 20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운이 좋았다. 꿈을 가지고 있다면 작은 궤적이라도 그 꿈을 향한 흔적이 존재한다.
그 직전의 교육과정에서의 성적
전략에 관련된 경력을 증명해야 할 때 전략을 전공으로 하는 석사과정
대위 때 집필했던 '전략가들의 혜안'에 대한 책
이 자리에 오기 위해 어필했다. 그렇게 해서 이 책상에 앉아보니 내 앞에도 많은 이들이 거쳐갔고 나 이후에도 많은 이들이 거쳐갈 자리라는 것이 보였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이 자리가 주는 의미가 무엇이고 얼마나 값진지? 알고 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그저 협업이라는 미명 하에, 우리의 동반자들이 만들어 주는 전략을 적당히 번역만 해서 보고하는 자리로 놔둘 것인가? 고민하는데서 시작했다. 그리고 내 선택의 결과는 한없이 연약한 우리나라 전략분야의 처지를 통감하며, 전략 디자인의 기본기를 만들어줄 스토리를 책 한 권에 담는 쪽으로 향했다.
전략 디자이너에 대한 책을 시작한 이유.
전략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정작 전략을 정의하길 망설인다. 작전이 중요하지만 운영을 잘하는 사람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전략가는 찾기 어렵고 양성하기 어렵다. 대응이라는 컨셉을 가장 먼저 내세우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 자체가 한계다. 내가 전략 디자인에 대한 책을 쓴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전략을 정의하는데 도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둘째, 운영 영역과 다른 전략 영역을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셋째, '대응'에 사로잡힌 사고 체계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