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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를 수 없는 전략 디자이너의 롤모델, 애드류 마셜

42년간 8명의 대통령을 지켜 온, 존재 자체가 유니크한 전략가 


올바른 물음에 적당히 답하는 것이  상관없는 물음에 정확히 답하는 것보다 낫다.      

                                                                                                      앤드류 마셜




42년간 총괄평가국의 국장으로 8명의 대통령을 보좌한 전략가, 앤드류 마셜


 미국에는 42년간 미국의 대통령 8명이 바뀔 동안, 13명의 국방장관이 바뀌는 동안 그들을 보조하며 총괄평가국(Office of Net Assessment) 국장으로 재직한 인물이 있다. 대단하지 않은가? 무려 42년 간이다. 민주당, 공화당 양당의 정권이 교체될 때 물갈이되지 않고 무려 42년간 미국의 모든 국방 군사전략을 설계했다는 점이 무척 고무적이다. 


 그의 이름은 앤드류 마셜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도 앤드류 마셜은 낯설다. 그가 대외적으로 잘 나서지 않는 성향이었을 뿐 아니라 총괄평가국의 업무 특성 역시 외부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었지만 전략의 세계에서는 매우 유명했다. 미국과 유럽에선 영화 스타워즈의 '요다', 옛 소련에서는 '펜타곤의 추기경', 중국에선 '은둔의 제갈량'으로 불렸다. 각국 정보부서의 고위직들은 자국의 앤드류 마셜과 같은 인물이 없음을 한탄할 정도였다고 한다. 미국의 대통령, 국방장관들은 그에게 예산을 지원하며 최상의 외교 안보전략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송희영 칼럼 8명의 대통령도 안 바꾼 음지의 전략가 <조선일보>, 2017.7.2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7/01/2016070103006.html


 

앤드류 마셜은 어떻게 42년간 재직하며 단지 24편의 보고서만  8명의 대통령이 교체되는 동안 어떻게 잘리지 않고 자리를 지켰을까? 최소 두 가지가 충족해야 한다.


 □ 존재 자체가 대체 불가능한 유니크함 그 자체이어야 한다.

 □ 그의 존재 가치를 알아차리고 특별한 예외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앤드류 마셜의 총괄평가 개념 


 마셜의 핵심 역량은 1970년대 초반 냉전체제 때 처음 등장했던 총괄평가 개념이다. 미국의 무기체계와 전력, 군수 등 국방의 모든 영역을 경쟁국이 가지고 있는 체계와 철저히 비교한다. 이러한 경쟁체계에서 미국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파악한다. 그리고 미래에는 무엇이 이슈가 될지? 어떤 위기가 초래될지? 그때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 현재 당면한 문제보다 미래의 문제를 전망하고 미국이 가질 수 있는 전략적 이익을 예견하는 것이 총괄평가의 목표였다. 그 구체적인 내용의 단서는 가토 요코의 <왜 전쟁까지>에서 찾을 수 있었다. 


 미국 국방전략에서 마셜이 공헌한 것은 국방 전략평가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었다.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전투력 지수를 계산하여 양측이 교전했을 때 승패를 가늠해 보는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시스템이다. 전쟁의 승패가 사단과 전차의 수에 의해 결정된다는 생각에 기초한 공식으로 전투력을 계산하여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A를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미국이 구 소련과 전쟁을 앞두고 있을 때 이 프로그램 A의 결과가 매번 승리로 나왔다는 이유로 전쟁을 하는 쪽으로 결정할 수 있는가?  란 민감한 질문에 까지 도달한다. 


 이때 2가지 딜레마가 떠오른다. 하나는 그 시뮬레이션 결과는 단지 참고일 뿐이라는 발언을 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두 번째는 단지 참고하기 위함일 뿐이라면 이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에 시간과 비용과 노력을 왜 낭비하고 있는가?라는 비판자의 모습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치부할 것이다. 뭐라도 하는 게 노력이라고 생각하는 멍청이들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데 마셜을 달랐다. 


 그가 초점을 맞춘 것은 1940년 5-6월 서유럽에 대한 독일의 전격전이었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보면, 독일이 압승을 거둔 결정적 이유가 명확하지 않았다. 당시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군인, 사단, 전차 수에서 독일 올 앞질렀기 때문이었다.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A의 계산법에 따르면 1940년 5월에 있었던 독일의 전격전은 실패했어야 하고 영국 프랑스 연합국이 승리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잘 알고 있다시피 독일의 전격전은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런 논리적 계산법을 베이스로 하여 개발된 프로그램 A를 냉전기 미국의 전력 평가 시스템으로 구축된다면 어떻게 될까? 1940년 5월에 있었던 서유럽에서의 독일의 전격전의 결과를 맞추지도 못하는 시스템으로, 그 보다 더 복잡해진 냉전기의 소련과 미국이 치르게 될 전쟁 결과는 맞추겠다는 엉터리 짓을 하고 있는 꼴이 될 것이다. 이런 현실의 적당주의형 멍청이들이 만들어 놓은 먹통 문제와 씨름한 사람이 바로 마셜이었다.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A에 과거의 전쟁 데이터를 넣었을 때,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의 전쟁 결과를 산출하는가?라는 단순한 확인을 통해 전력 평가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마셜은 전격전의 교훈을 바탕으로 냉전기 미국의 대-소련 전략평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관심을 쏟았다. 냉전기 미국에서는 서유럽의 동맹군인 나토군과 동유럽의 동맹군인 바르샤바조약기구 군의 전력을 비교하기 위해 데이터베이스를 아주 꼼꼼하게 작성했다. 동원 가능한 총인원, 대공화기, 지대지 미사일, 전술항공기 수 등을 입력하고 무기 체계의 질적 차이에도 대응할 수 있는 전력 평가지표를 만들고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B를 만들었다.


 이 전력 평가 시스템 B가 과연 유용한가를 판단하기 위해 독일의 전격전 당시 독일군과 영 -프 연합군의 수치 데이터를 입력해보고 그 결과가 실제 전쟁사의 결과와 비교해보았다. 만약 똑같다면 펜타곤이 작성한 전력 평가 시스템은 쓸만한 지표라는 말이 된다. 하지만 전력 평가 시스템 B에서는 독일군의 압도적 승리라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이는 곧 전력 평가 시스템 B에 다른 요소가 더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앤드류 마셜의 주도로, 기만과 기습, 전술, 제공권, 지휘통제, 지형,장갑 시스템과 대 장갑 시스템 등의 요소를 시스템에 적용해서, 냉전기의 미국의 전력 평가 프로그램에 40년의 독일 전격전 수치를 입력했을 때, 독일군의 압도적 승리를 예측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부단히 개량되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앤드류 마셜은 국방부의 마스터 요다로 불리게 되었다.     


참고-가토 요코왜 전쟁까지일본 제국주의의 논리와 세계의 길 사이에서사계절, 2018. 241-242.



42년간 내놓은 고작 24편의 보고서, 그리고 그 '고작'이 만든 세계


 앤드류 마셜이 ONA 국장으로 일하는 동안 고작 24편의 보고서만 제출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세계사를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구 소련과 중국 등 미국의 라이벌 국가들은 앤드류 마셜이 내놓은 보고서를 어떻게든 입수하여 한 자도 빼놓지 않고 번역하고 연구했다고 전해진다. 

 마셜은 닉슨 행정부 시절인 1973년 국방부 '내부 연구소'인 ONA(총괄평가국) 국장으로 취임한 후 42년간 미국에 위협이 되는 국가의 군사력을 평가하고 이에 기반해 미국의 장기적 군사전략을 수립해 왔다. 마셜은 보고서의 질이 우선이라고 주장해왔다. 질 좋은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제출 시한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으며, 외부 간섭이 없는 환경에서 10명 내외의 소수정예로 운영되었다. 


 언론에 보도된 앤드류 마셜이 작성했다고 알려진 보고서의 내용을 모아 보았다.

    

□ 소련의 군사력 평가, 대(對) 소련 전략으로 미국이 강점을 가진 군사 부문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소련이 국력을 초과하는 군사지출을 하도록 유도해 소련 붕괴를 재촉하는 전략을 세웠다.


□ 조지 W 부시 정권 시절 미군 군사계획의 초점을 유럽에서 태평양 지역으로 전환하고 외국 군사기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대신 장거리 전투능력 제고로 방향을 튼 것도 그의 작품이다.


□ 냉전 체계가 무너진 뒤에는 이슬람 테러 세력의 등장을 예고했다.


□ 오바마 행정부가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 국방전략을 채택하게 된 데도 중국의 부상과 중국의 군사력 위협을 강조해 온 그의 역할이 컸다.


□ 군사 분야의 기술혁명(RMA) 예측, 1980년대에 이미 최첨단 센서와 정밀 유도폭탄, 컴퓨터 네트워크에 기반한 무기의 도래를 예고했다.


□ 미국의 새로운 전쟁계획, '공해전(空海戰)' 미국의 '신냉전 전쟁 계획'으로 일컬어지는 공해전 개념은 미 공군, 해군, 해병대가 합동 전력을 구축해 중국의 거부 전략을 무력화하고자 고안된 것이다.     


마샬의 ONA에서 내놓은 이런 보고서들은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앤드류 마셜은 어떻게 42년간 재직하며 단지 24편의 보고서만  8명의 대통령이 교체되는 동안 어떻게 잘리지 않고 자리를 지켰을까? 최소 두 가지가 충족해야 한다.


 □ 존재 자체가 대체 불가능한 유니크함 그 자체이어야 한다.

 □ 그의 존재 가치를 알아차리고 특별한 예외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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