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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람 Aug 06. 2015

죽음과 삶 그리고 책

함정임 - 저녁 식사가 끝난 뒤

강선생과 헤어져 오피스텔로 돌아와 처음으로 아코디언을 가슴에 안아들었다.

쿵작쿵작.

공기주름통이 가슴에 닿자 마치 사람처럼 체온이 느껴졌다.

나비야, 나비야.

맥시코 삼촌이 무등을 태워주기 위해 나를 번쩍 들어올렸던 그날처럼, 춘아 고모가 뼈가 으스러지도록 껴안아주던 그날들처럼, 나는 아코디언을 안은 채 전율을 느꼈다.


표지 디자인, 제목, 내용.

내가 책을 고르는 거의 대부분의 기준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이다. 이 책 또한 예정에 없던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표지 디자인이 너무 예뻐서, 그리고 제목이 마음에 쏙 들어서 충동적으로 구매한 책이다. 결론적으로 사기를 아주 잘 했다고 생각하는 책 중 하나.


단편집이나 소설집은 조금 부담스러워하는 내가 읽기에도 어딘가 편안한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사실 내가 읽은 단편 소설들은 끝이 애매모호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됐다는 거야? 하는 식의 답답함을 불러왔다. 그런 애매모호함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런 유의 소설은 내게 공허로 다가오는 경우가 허다해서 단편 소설을 읽을 때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만 했다.

나에게 있어 단편 소설 = 공허함 그 자체였다. 그것도 약간의 우울함을 동반한.


이 소설은 그러지 않아서 좋았다. 완벽하게 깔끔한 뒷맛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련한 여운을 남기는 책도 아니라서…… 나름 가벼운 기분으로 죽 읽어 내려간 것 같다.


나는 죽음을 다루는 글들을 읽을 때면 으레 마음 한 구석이 경직되고는 한다. 죽음을 과도할 정도로 두려워하는 나머지, 결국에는 내가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소설을 접하면 한없이 불안정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어느 부분인가부터 아, 이 책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구나. 하고 깨달았다.

죽는다는 것, 또한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차분한 어조 때문인지 불안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토록 많은 죽음이 등장하는 소설이 내게 아무렇지도 않다니. 죽음마저 일상으로 끌어들인 탓일까. 누군가 내 어깨를 감싸 안고 가만히 다독이는 것 같았다.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이야기는 「어떤 여름」이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두 남녀의 이야기. 여자는 스탕달을 읽고 있었고 남자는 그런 여자에게 호기심을 보인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함께 여행을 다닌다. 자못 쓸쓸하면서도 이 또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구나 싶은 여운이 마음 한 구석을 가만히 맴돌았다.


끝이 없어 보이는 어둠이 두려워 잠 못 이루는 날, 이 책이 많은 위로가 될 것 같다.

그날 이후 박은 날마다 유리문을 밀치고 들어가 같은 자리에 앉았고, 소녀는 눈을 내리깐 채 꼬치를 굽는 모습 그대로 한결같았다.
그리고 스물여섯 살의 그가 서른 살이 되도록 소녀와 그의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그사이 소녀는 그녀가 되었고, 그는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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