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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람 Aug 05. 2015

죽음, 이별, 그 이후

시게마츠 키요시 - 너를 떠나보낸 후

"후회되는 것도 너무 많아. 반성도 하고 있고,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하고, 사과하고 싶은 사람도 많이 있고."

"누구나 다 그래."

"당신도 그런 게 있어?"

"내게도, 요코에게도 있어."

"그래……."

미에코는 얼굴을 들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눈 밑에 기미가 끼어 있다.

목이 혈관이 불거지고 상당히 가늘었다.

"후회없는 인생이란 없어."

미에코에게 말했다.

요코에게도 말하고 싶었다.

아스카도, 언젠가는 알았으면 좋겠다.

그렇구나, 하고 미에코는 미소를 지으며 우산을 다른 손으로 바꿔 쥐더니 어깨에 우산의 손잡이를 걸쳐 지탱시켰다.

"후회 없는 인생도 없지만 의미 없는 인생도 없지 않을까?"


한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온 모든 것을 함께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사람과 함께 걷던 거리, 봤던 영화, 그 사람의 버릇,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추억들.

아마 사람들은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그를 떠나보내는 것이 슬프다기보다는 더 이상 그와 어떤 것도 쌓을 수 없다는 것이 슬픈 게 아닐까. 추억은 언젠가 빛이 바래기 마련이고 슬펐던 감정들조차 미미한 아픔으로 남는다.


그러나 만약 이 세상에 살다간 시간이 너무 짧아서 그 추억조차 건질 것이 없다면 어떨까.


이 책은 한 남자의 여행기다.

서장부터,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이야기 내내 남자는 어딘가로 떠돌아 다닌다.


주인공인 세키네 씨는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전부인과 이혼을 하고 자신의 아이, 아스카를 빼앗긴 경험이 있다. 그리고 재혼을 하고 그 사이에서 아들을 하나 얻는다. 그러나 그 아들마저 돌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아 심장에 문제가 생겨서 세상을 떠나고 만다. 부부는 아이가 아플 때 아무것도 몰랐던 자신들을 탓하며 또는 서로를 탓하며 계속 유키야와의 얼마 안되는 추억을 되새김질 한다.


서로 함께 있으면 그 날의 일이 떠오르는 탓에 요코는 집에, 세키네는 전국을 여행하며 각자만의 방식으로 유키야를 기억하려 한다.

한 편, 아스카의 엄마이자 세키네의 전 부인인 미에코는 10년이 지나는 사이에 암에 걸려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된다. 세키네는 그 사실을 듣고 미에코를 만나려 한다. 그러나 미에코의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대신 아스카가 온다. 부녀는 10년만에 재회를 한다. 그리고 투병 중인 엄마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는 아스카는 세키네를 졸라 두 사람은 함께 여행을 하게 된다.


아스카에게 가슴 싸한 안쓰러움을 느꼈다. 만약 아스카가 성인이었더라면 그 성격이 참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스카는 15~6세의 반성인이고 아직 어린나이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차갑고 무관심한 것은 슬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아스카로써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아빠인 세키네는 이미 다른 여자의 한 아이의 아버지다. 엄마가 죽는다고 해도 아빠가 자신을 데려갈 수 없다는 것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혼자 서는 법을 터득해야 했겠지.


그러나 한 번만이라도 아빠라고 부르며 눈물을 펑펑 쏟을만한데 뭐가 그리 고집이 센지……. 마지막까지 아빠라고 부르지 않는 것에서 오히려 내 마음이 더 먹먹해졌다. 답답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 마음이 이해가 가서 너무 안쓰러웠다.


소설은 잔잔하게, 일본 특유의 분위기를 품고 써내려 간다.

여행길에 만나는 사람들은 전부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들. 그럼에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추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어쩌면 잘 살고 있는 것은 아닐 지도 모른다. 가끔씩은 떠나간 사람이 생각나 가슴이 먹먹하게 달아오를 때도 있을 것이다. 색이 바래기는 해도 완전히 잊히지 않는 추억을 안고서.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내내 사람들의 아련함에 눈물도 엄청 쏟았고 마음도 아팠다. 그러나 '죽음'이란 다소 무거울 법한 소재를 다뤘음에도 오히려 마음을 치유해주는 듯한 느낌을 가진 소설이었다.

"고마워." 하고 말했다.
머리로 한 말이 아니었다.
파도소리에 이끌려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다.
"고마워."
한번 더 말하고 미에코의 무릎 위에 가만히 머리를 올려놓았다.
아주 오래전, 나는 이렇게 미에코의 뱃속에 있는 아스카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다.
"고마워."
미에코의 음성이 희미하게 흔들리며 내 말에 겹쳤다.
내 머리를 미에코의 손가락이 가만히 쓸어주었다.
얼굴을 비스듬히 기울이고 있어서인지 순간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졌다.
파란 하늘 색깔인지, 파란 바다 색깔인지, 수평선에 선명한 파란색의 형체가 떠올랐다.
'아아, 미에코. 당신은 그곳을 향해 여행을 떠나려 하는군.'
하고 생각한 순간 그 섬의 모습은 눈물에 어리어 스러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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