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어떤 관계의 의미가 그 끝에 달려 있는 거라면,
안 좋게 끝날 관계는 아예 시작도 말아야 하는 걸까?
그 끝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과정이 아름답고 행복하더라도?
문득 문득 느껴지는 답답함 속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사회의 이슈가 되는 왕따 문제, 피해자와 가해자, 분노와 증오, 그리고 용서.
항상 용서라는 것에 대해 가늠해 보려고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두리뭉술한 조각일 뿐이다. 누군가를 용서하기도 전에 먼저 분노를 하고 그것을 표출해서 상대방을 상처 입히는 방향으로 생각은 맹렬하게 소용돌이친다.
여기에 교도소에서 출소한 한 남자가 있다. 그는 한 때 왕따 피해자였으나 단 한 번의 실수로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모하고 사람을 죽였다는 죄의 낙인이 찍힌다. 과거에 남자가 죽인 동급생의 어머니는 죄의 올가미가 되어 그의 뒤를 쫓는다. 그녀는 그가 살인자라고 폭로해 하는 일마다 방해를 하고 겉으로는 남자를 자신의 두번째 아들로 생각한다며 그의 정신을 서서히 좀먹어 간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왕따 가해자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필사적으로 주장을 한다.
남자는 그녀가 하는 행동에 조금의 의의도 가지지 않고 그저 죄인처럼 끌려 다닐 뿐.
이 소설이 속죄와 용서에 관한 글이냐고 한다면……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사실, 마지막 장을 덮고 이렇게 되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담담한 태도를 취하니 오히려 바라보는 사람이 눈물이 날 정도로 슬퍼졌다.
그는 자신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사람들을 위한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용서 또는 속죄가, 그가 세상을 기억하는 방식이, 쓸쓸하고 안타까웠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모든 거짓말들은 다 잊더라도,
이 말만은 기억해줬으면 해.
널 만나서 정말 기뻤어.
너와의 시간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들이었어.
난 그걸 절대로 후회하지 않아.
고마워.
진심으로.
그에 반해 어머니라는 사람은, 자신의 아들이 저질렀던 죄의 대가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한다. 아무리 진실을 들려줘도 "그게 아니라……." 하는 변명밖에는 하지 않는다.
왜 항상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에 관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쉽게 자신하는 것일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도.
결국 그녀는 용서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를 끝까지 저버리고 끝내 자신이 바라는 사실만을 마주한다. 어떤 면에서는 그것 자체가 그녀에게 행하는 일종의 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지옥이 있다면, 용서하지 못한 죄로 영원히 지옥불에 달구어지기를!
가끔씩 뉴스에서 피해자가 뒤바뀌는 상황을 보고는 한다. 그럴 때면 누구에게로 증오의 화살을 돌려야하는지조차 불분명해진다. 그렇게 되기 전에 미연에 방지할 수는 없었던 걸까. 꼭 비극이 벌어진 뒤에야 사람들은 관심을 보인다.
어린 아이들은 점차 자라면서 빠른 속도로 무관심을 배운다. 어쩌면 그게 현명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 뒤쪽에서는 새로운 피해자와 가해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나는 여전히 제대로 된 용서를 할 줄도 모르고 복수하는 것이 내 마음을 더 편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언젠가는 나도 이 남자처럼 용서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과거와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재만 보는 사람이 더 유리할 때도 있어.
여자가 말했다.
과거를 잊을 수 있으니까.
과거를 잊을 수 있기 때문에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어.
그러니까, 내가 널 지켜줄게.
과거로부터, 너를, 지켜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