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사 크리스티 - 봄에 나는 없었다
"난 알고 싶지 않아!"
조앤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녀는 그 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녀가 알고 싶지 않은 것이 뭘까?
이건 싸움이야.
나는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하고 있어.
조앤은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를 상대로?
무엇을 상대로?
신경 꺼.
난 알고 싶지 않아…….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붙들고 늘어져라.
그것은 좋은 문구였다.
누군가 그녀와 같이 걷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잘 아는 사람이.
고개를 돌리면…….
조앤은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어느 누구도 없었다.
추리 소설 작가들 중에서는 아가사 크리스티가 단연 최고라고 생각한다. 나와 마찬가지로 크리스티를 좋아하는 친구가 이 책을 추천해주었는데 제목과 표지부터가 과거에 봤던 크리스티의 소설과는 뭔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크리스티가 로맨스도 썼나? 하고 의문을 가진 것도 잠시, 나는 이 소설에 푹 빠지고 말았다.
사실 읽으면서 무척이나 불안에 떨어야 했다.
친구의 말로는 결말이 괜찮다고 했지만, 이런 식으로 답답함을 느끼게 만드는 소설은 선호하지 않아서.
무려 주인공인 조앤이 답답함과 짜증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썩 유쾌한 기분으로 읽지는 않았다. 주위 사람들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고. 왜 딱 부러지게 말을 못 해주나 싶기도 했다.
나중에 가서야, 아, 이 여자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전해지지가 않겠구나. 하고 깨달았다. 가족들은 말하기를 포기한 것이구나. 하고. 혹은,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데도 조앤이 고의적으로 안 들었을 수도.
조앤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썩 행복한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착하게 잘 자란 아이들과 자신만을 사랑해주는 남편, 잘 꾸며진 화목한 집안.
그녀는 아픈 딸아이에게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과거에 아름다웠던 동창을 만난다. 그녀는 조앤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만약 혼자 남는다면 네가 무엇을 알게 될지 궁금한 걸." 하고 말을 하지만 조앤은 그저 한 귀로 흘려버린다.
조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가 끊겨 사막에서 고립이 되고 장장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을 태양빛 아래에서 머무른다. 본의 아니게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 조앤은 과거에 있었던 추억을 떠올리던 와중 의식 깊숙한 곳에 감춰두었던 진실을 하나 둘 마주하게 된다.
참, 징 하게도 외면한다 싶었다.
그녀는 일말의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아니야.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 라는 말로 억지로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려 한다. 그런 그녀를 경멸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한 없이 가련하게 느껴졌다. 그 가련함을 깨부수고 강제로 고개를 돌려 진실을 마주 보게 하고 싶은 가학 심 또한.
마치 소꿉놀이를 하듯 잘 꾸며놓은 인형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배제한 채 혼자서만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정작 소중한 가족들의 마음은 철저히 무시한 채로.
나였다면, 지독한 말을 퍼부으며 혹독한 진실을 보여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가족들도 조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라서. 그렇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서야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가족들은 줄곧 조앤을, 조앤이 이루어 놓은 환경을 조롱했던 거다. 그것은 벌이다. 조앤은 죽는 그 날까지, 아니 죽어서도 눈치 채지 못하겠지만 그것은 가족들이 내리는 벌이었다.
마지막 장에서 로드니가 중얼거린 말에 소름이 쫙 돋았다. 비웃음 가득 담긴 그 말에.
당신은 외톨이고 앞으로도 죽 그럴 거야. 하지만 부디 당신이 그 사실을 모르길 바라.
이토록 체념 섞인 조롱이 어디 있을까.
지금까지 짜증나던 여자가 한 순간에 불쌍하게 느껴졌다.
아마 그건 어머니라는, 아내라는 사람에게 인생을 저당 잡힌 가족들이 선사하는, 일종의 지독한 복수가 아니었을까.
문이 열리고 로드니가 들어왔다.
그는 놀라서 멈춰 섰다.
조앤은 얼른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는 곧바로 남편의 얼굴을 보지는 않았다.
로드니에게 잠시 시간을 주자.
이 사람에게 시간을 줘야 해…….
그녀는 명랑하게 말했다.
"나 왔어요, 로드니……. 집에 돌아왔어요……."